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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Dec 30. 2022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1)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7 "지출의 고통이 느껴지게 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7 "지출의 고통이 느껴지게 하라"



#지출의 고통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머그컵을 선물로 나눠주고서 그 컵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한다면 얼마를 받아야 하는 지를 물어봤습니다. 자신이 받은 머그컵이 마음에 든 사람이라면 높은 가격에 머크컵을 판매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실험의 목적은 단순히 머그컵의 판매 가격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험의 진짜 목적은 진통제가 제품 판매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이었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은 실험 시작 전에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먹었습니다. 진통제를 먹은 참가자들과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의 판매 가격을 비교해 보니, 진통제를 먹은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머그컵을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가진 머그컵을 판매하려고 한 것이죠.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뇌가 느끼는 고통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을 내어줄 때 뇌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뇌는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그런데 타이레놀과 같은 진통제가 뇌로 하여금 고통을 덜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은 참가자들은 더 쉽게 자신의 소유물을 포기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낮은 가격에 머그컵을 판매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물론 '돈'입니다. 그래서 돈을 쓸 때에도 뇌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돈을 쓸 때 뇌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지출의 고통 pain of paying’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뇌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합니다. 고통이 발생하는 일을 피하려고 하죠. 그래서 지출의 고통은 소비의 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합니다. 지출의 고통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가지고 싶은 제품이 있어도 스스로 지출을 제어하게 되고, 지출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비를 제어하지 못하고 헤프게 돈을 쓰게 됩니다. 소비를 제어하는 능력이 사실은 지출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출의 고통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소비를 제어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까요? 과거에는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전자결제가 사람의 뇌로 하여금 지출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번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서 지불할 때 뇌는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소중한 소유물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현금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지문을 인식하거나 비밀번호롤 입력하는 것만으로 결제가 끝납니다. 돈이 은행 잔고에서 바로 빠져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월말에 자신이 설정해 놓은 결제일이 되어서야 여러 지출들이 구분되지 않고 한데 섞여서 나가게 됩니다. 이런 전자결제 시스템 하에서는 뇌가 돈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뇌 속에 존재하던 브레이크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게임 머니나 포인트와 같은 전자화폐들도 지출의 고통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요즘 많은 게임에서는 현금이 아닌 게임 머니를 화폐 대신에 사용합니다. 로블록스에서는 로벅스를 사용하고, 포트나이트에는 V벅스를 사용합니다. 이런 게임 머니들은 현금과의 교환 비율이 10 배수나 100 배수처럼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로벅스는 10달러(정확히는 9.99달러)를 내면 1000 로벅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800 로벅스를 줍니다. 사용하는 플랫폼(가령, PC 혹은 모바일)에 따라서 다른 교환 비율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환 비율이 단순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은 게임 머니의 현금적 가치를 쉽게 가능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만큼 지출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 되죠. 쇼핑앱이 제공하는 포인트나 마일리지도 게임 머니와 비슷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플랫폼과 모바일 매장들은 지출액에 비례해서 일정 금액을 포인트나 마일리지로 돌려줍니다. 환불금액을 포인트로 돌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포인트들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현금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현금과 1:1 교환 비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돈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돈이지만 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 돈보다 훨씬 쉽게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뇌의 브레이크를 만들어라


지출의 고통을 느끼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출의 고통은 소비를 제어하게 해주는 뇌의 브레이크입니다. 이 브레이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다 보니 소비를 제어하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전자결제가 일반화된 지금 시대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지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매일 손으로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신용카드와 연결되어 있는 전자결제를 이용하면 매달 일정한 시점에 은행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갑니다.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에 돈이 나가지 않고, 나중에 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지출의 고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여러 지출액이 하나로 합쳐져서 뭉텅이로 돈이 나가기 때문에 어떤 구매가 지출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지도 잘 모르게 됩니다. 지출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제를 하는 순간에 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뇌가 인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은 아직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지만 뇌로 하여금 돈이 나갔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가계부입니다. 가계부는 옛날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지금같이 최첨단 모바일 결제와 폰뱅킹 시대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야말로 가계부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예전처럼 굳이 종이 가계부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엑셀 파일을 사용해도 되고,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사용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구매를 할 때마다 자신이 직접 결제한 금액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매 시점과 돈이 인출되는 시점 사이의 차이를 없애서 지출의 고통을 높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어려운, 그렇지만 더 효과가 좋은 방법은, 아예 돈을 쓰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신용카드 또는 전자결제와 연동되어 있는 은행 계좌에는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생필품 구입비에 해당하는 금액만 넣어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생필품 구입비 예산을 미리 정해놓고서 그 금액만 계좌에 넣어놓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생필품이 아닌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다른 계좌에서 생필품 계좌로 필요한 금액만큼 송금을 해야 합니다. 이런 불편함을 만들어 놓으면 뇌가 지출의 고통을 느끼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최소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바로 현금화하기 어렵거나 현금화 과정에서 많은 번거로움이 따르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기 수중에 가진 돈이 없게 되면 매달 카드 결제일이 올 때마다 돈 걱정을 하게 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게 됩니다. 계획에 없는 지출이 생기면 마음속에 커다란 고통이 오게 됩니다. 현금화 과정에서 큰 불편함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비를 제어하게 됩니다. 물론 살다 보면 갑작스레 큰돈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대비해서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투자금과 장기적으로 묻어둘 수 있는 투자금을 구분해서 관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핵심은 돈을 쓰는데 많은 불편함이 생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사용하거나 현금화하기 어렵게 만들면 뇌 속에는 자연스럽게 지출의 브레이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11 지출의 고통이 느껴지게 하라


몸이 느끼는 고통은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돈을 쓸 때 느끼는 지출의 고통은 소비를 억제하는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출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 쓰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어라.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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