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3 "사회적 욕구를 이해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사회적 욕구는 소비를 불러온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그 물건이 제공하는 기능 때문입니다. 손목시계를 구입하는 이유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시간을 확인하는 것만이 소비의 목적이라면, 2, 3만 원 정도만 투자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2, 3만 원짜리 전자시계들도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미국에서 교수를 할 때 아마존에서 2만 원에 구입한 카시오 전자시계를 차고 다니고는 했습니다(지금은 몇 해전 미국 아웃렛에서 15만 원에 구입한 스위스 S사의 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하지만 시계 구입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단지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소득이 적어도 고가의 명품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사람들은 제품 구입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사회적 욕구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사회적 욕구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사회적 욕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근본적인 욕구이며,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정신 건강이나 신체 건강을 해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적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면 우울증이 생길 위험이 크고, 관상동맥 질환과 같은 질병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해주거나 좋아해 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제품을 소지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이나 존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이 사람들이 제품 구입에 많은 돈을 쓰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 소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만 만족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높은 위상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느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고가의 제품을 구입해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높은 위상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제품을 구입해도 자신보다 더 좋은 제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면 높은 위상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더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게 됩니다. 과소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사회적 욕구를 위한 소비의 두 번째 유형은 집단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망하거나 소속되고 싶은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욕구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제품을 구입하게 됩니다. 이 제품이 집단 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증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특정 브랜드가 크게 유행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인기가 있는 브랜드가 그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이죠. 그런데 때때로 평범한 청소년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 브랜드가 유행하는 일이 생기고는 합니다. 자신의 친구들이 모두 구입하는 고가 브랜드 제품을 자신만 구입하지 않는 것은 집단에서 배척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져오고 자존감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무리해서라도 고가 제품을 구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이런 소비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에서 배척되는 것만큼 두렵고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세 번째 유형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소비입니다. 사회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태도를 달리합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은 존중하거나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고는 합니다. 직업상 매장 구경을 자주 다니고는 하는데, 고급 매장의 직원들이 제 겉모습을 보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고는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은 일상적으로 이런 경험들을 했습니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는 동료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저는 그냥 영어 발음도 이상하고 돈도 없어 보이는 외국인일 뿐입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내 앞사람에게는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제게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일이 많았고, 은행에서도 돈을 입금하거나 찾을 때 돈이 어디서 났는 지를 취조하듯이 물어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기분이 썩 좋지 못한 경험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겉모습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 소비를 늘리게 됩니다.
# 자신의 소비가 사회적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세 가지 소비 유형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는 사실 부정적인 소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늘 서로 존중해주고 눈에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런 소비를 할 필요조차 없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겉모습에 근거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고 태도를 달리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만한 장치 정도를 갖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비하는 이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실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큰돈을 쓰고 있는 것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 제품의 기능이나 품질이 자신에게 꼭 필요하서 구입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삶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을 구입하는데 많은 돈을 낭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제품이 유행할 때마다 새 제품을 구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지금 소중한 돈을 쓰는 이유가 그 제품이 정말로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를 하기 전에 소비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낭비되는 돈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무리해서 고가의 이어폰을 구입하는 청소년이라면 자신이 소비를 하는 이유가 이어폰의 성능이나 품질 때문이 아니라 또래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회적 욕구 때문에 소비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보다 현명하게 소비를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겉모습에 따라서 자신을 차별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해도 무방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습니다. 가령, 자신의 겉모습 때문에 사업이나 업무에 지장이 생기거나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를 잃게 되는 상황이라면 소비를 통해서 이런 일을 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방문한 매장이나 식당에서 불친절이나 차별을 경험하는 일은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빠져도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앞으로 그 매장이나 식당을 방문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많은 돈을 써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중요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잘 구분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돈이 낭비되는 것을 최대한 피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자신의 겉모습에 따라서 다른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불필요한 불이익을 받는 일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최소의 비용으로 불이익을 피하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돈을 쓰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이 제품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시선 때문에 구입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소비를 통해서 자신을 지켜낼 필요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겠죠. 자신의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라고 인정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겉모습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게 됩니다. 굳이 소비를 통해서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죠. 검소한 모습이 그 사람의 실력과 전문성을 더 돋보이게 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소비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