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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Jan 02. 2023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6)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2 "제품 구경의 즐거움을 멀리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2 "제품 구경의 즐거움을 멀리하라"



#상상은 소비 욕구를 불러온다


인간은 뛰어난 상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실제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은 소비에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입하지 않은 옷을 구입해서 입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자신에게 없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합니다. 이런 상상은 너무 생생해서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게 됩니다.


상상은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무엇을 상상하던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의미죠. 그런데 소비에 있어서 만큼은 상상은 자유가 아닙니다. 상상의 소비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소비를 상상할 때 뇌 속에는 다양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선, 감정적 반응이 생겨납니다. 제품을 그저 정보로만 인식할 때 뇌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폰 14라는 제품은 애플이라는 회사에서 만들고, 6.1인치 크기의 화면을 가졌으며, 128GB의 메모리를 가진 125만 원짜리 전자기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순간 (그리고 그 상상이 만족스럽다면) 뇌는 즐거움, 만족감,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욕구를 만들어냅니다. 감정이 강할수록 욕구도 강해집니다. 어떤 제품을 상상하는 순간 강력한 감정적 반응이 느껴진다면 그 제품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를 상상할 때 사람의 뇌는 자신이 이미 제품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상상할 때 단순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 뇌 속에는 단지 차를 운전하는 그림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함께 활성화됩니다. 실제 운전을 할 때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처럼, 뇌 속에서는 손과 발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죠. 햄버거를 손으로 잡고 먹는 모습을 상상할 때는 뇌 속에 손과 입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뉴런들이 활성화됩니다. 실제로는 운전을 하지도 않고, 햄버거를 먹고 있지도 않지만, 뇌는 이미 운전을 하고 있고, 햄버거를 먹고 있는 것이죠. 뇌는 상상 속의 소비를 실제 소비처럼 느끼기 때문에 소비자는 상상 속의 제품을 이미 자신의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면 이 제품을 포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구매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죠.


#소비에 대한 상상을 피하려면 제품 구경을 멈춰라


소비에 대한 상상은 소비 욕구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상상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머릿속의 상상을 의지만으로 멈추기는 어렵습니다. 소비에 대한 상상은 대부분 자동적, 즉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노력을 기울여서 소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사진을 보는 순간에 자동적으로 뇌는 소비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죠. 의식적으로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뇌는 반발하면서 더 상상을 하려고 합니다. 흰곰 현상이라고 불리는 심리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흰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흰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억지로 제품에 대한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제품에 대한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품 사진 속 손잡이의 위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동적으로 소비를 상상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텀블러 제품의 광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을 반으로 나누고서, 한 그룹에게는 텀블러의 손잡이 위치가 오른쪽으로 향한 광고를 보여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 광고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 참가자들이 소비를 상상하는 정도와 구매 의사를 측정했습니다.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되었는데, 오른손잡이 참가자들은 텀블러의 손잡이가 오른쪽을 향해 있을 때, 반대로 왼손잡이 참가자들은 손잡이가 왼쪽으로 향해 있을 때, 텀블러를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동적으로 상상했고 이 텀블러를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습니다. 반면, 오른손잡이가 손잡이가 왼쪽에 있는 텀블러를 보거나 왼손잡이가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향한 텀블러를 보는 경우 자신이 텀블러를 사용하는 모습을 덜 상상하게 되었고, 구매 의사도 낮았습니다.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제품이 놓여져 있을 때 뇌는 자동적으로 손을 뻗어서 텀블러를 들고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소비에 대한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발생합니다.  


소비에 대한 상상은 자동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이를 억누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신 뇌가 상상에 빠지는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문자로 된 정보보다는 제품 이미지가 소비에 대한 상상을 더 쉽게 일으키고, 이미지들 중에서도 생생한 이미지들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강합니다. 제가 저널 오브 애드버타이징 Journal of Advertising이라는 학술지에 게재한 실험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광고이나 포장 상자에는 제품 이미지가 많이 사용됩니다. 어떤 곳에는 사실적인 사진이 사용되고, 어떤 곳에는 사실적이지 않은 (혹은 그림 같은) 그래픽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저는 동일한 제품을 하나는 사진으로, 다른 하나는 그래픽 이미지로 참가자들에게 각각 보여주고서, 참가자들이 소비를 얼마나 상상하는지, 그리고 제품을 얼마나 구입하고 싶어 하는지를 측정하였습니다. 총 일곱 번의 걸친 실험에 자동차, 햄버거, 감자칩, 컵케이크 등 다양한 제품의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예상하는 것처럼 사실적인 제품 사진이 그렇지 않은 이미지에 비해서 자동적으로 소비에 대한 상상을 더 강하게 불러왔으며,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도 높였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사실적인 제품 사진과 사실적이지 않은 그래픽 이미지를 비교했지만, 사실적인 사진보다도 더 쉽게 소비에 대한 상상을 불러오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동영상이죠. 게다가 동영상 중에서도 소비 경험을 증폭시키는 소리가 포함되어 있거나(가령, ASMR 동영상), 누군가가 제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소비에 대한 상상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동영상들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과거에는 제품 광고가 문자 위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품 사진이 사용되어도 선명도가 낮고 색상이 좋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광고를 보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제품 구경을 하면, 단지 제품 사진이 과거보다 선명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동영상으로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쇼핑앱에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화면들도 이제는 이런 실감 나는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동화 브랜드의 모바일 사이트를 방문하면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이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식품 브랜드의 사이트를 방문하면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는 사람의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그러면 자신도 똑같이 이 음식을 요리하고 있거나 먹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에서는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서 제품을 개봉하고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소비를 상상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소비에 대한 상상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상을 유발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에 대한 노출을 피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제품 구경을 돈 안 드는 취미 생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합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제품 구경을 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제품 구경은 매장 직원의 눈치도 보이지 않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제품 구경이 주는 즐거움이 푹 빠지게 되죠. 하지만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 동안 뇌는 이 제품들을 모두 입어보고, 사용해 보고, 먹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제품에 대한 강한 욕망을 품게 됩니다.


상상이 자유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에 대가가 따라옵니다. 상상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소비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품 구경의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고 지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비를 제어하고 싶다면 제품을 구경하는 일부터 멈춰야 합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12 제품 구경의 즐거움을 멀리하라


스마트폰으로 제품을 구경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이런 상상은 제품에 대한 소비 욕구로 이어진다. 소비 욕구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제품 구경의 즐거움을 멀리해야 한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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