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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가 될 뻔했다>가 조만간 책으로 나옵니다.(웹연재 제목: 쓰레기부터 정상인까지)
https://brunch.co.kr/brunchbook/trash2normal
마지막 페이지에 추가할 내용을 적어 보았습니다.
첫째, 이 책은 의학 전문가 영역을 침범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둘째, ‘노오오오오오오오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라는 의도로 적지 않았다.
그런 식의 우울증 극복 수기에는 자기도취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힘든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수치심,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했으나 혹시라도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저자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여 주시길.
셋째, 약과 상담에 관하여.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병원에 가지 말고 상담 받지 말고 약을 먹지 말라고 할 마음?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 경우에는, 병원에 가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가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을 말해야 하는 수고를 할 에너지가 없었다.
약을 타오려 해도 병원에 가야하는데 그런 외출 자체가 피로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미련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쓴 우울증 책을 보니, 상담은 자신과 맞는 선생님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약은 처방받아 먹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본다.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 체계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이것은 해석일 뿐, 내게 이미 그 시절은 지났다. 다만, 현재 지식을 가지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먹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아래는 인용구다. <기억, 꿈, 사상>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이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에 대해 적어놓은 내용이다.
“어느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밤이었다. 나는 강한 맞바람을 안고 힘겹게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방에는 짙은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 꺼질지 모를 작은 불꽃을 손으로 동그랗게 감쌌다.
모든 것이 이 작은 불꽃을 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불꽃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 우리가 세상에 가지고 나온 불꽃이다. 글을 통해 당신은 세상 속에서 불꽃을 나르는 사람이 된다.
-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중
번아웃이 오고 우울한 와중에도 먹고사니즘의 압박이 그 시절 내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몇 권 샀는데, 그중 한 권의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시의 내 존재를 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작은 불꽃, 불씨, 불의 씨앗. 생명의 숨. 꺼질 것만 같은 작은 촛불 하나.
이 이미지를 가슴 깊이 새겼다. 번아웃으로 인해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렸지만, 작은 불씨 하나는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생명의 불씨였다. 이 불씨를 지켰고, 지켜낼 수 있도록 도움 받았기에 지금 내가 살아있다.
바라기는 내가 전달받은 불을 이어가게 되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로 사람을 죽이는 게 너무 쉬워진 이 시대에
부디 이 책이 작은 불씨 하나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종이라는 몸을 입혀 세상 밖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