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 신경쇠약 - 걷는다.

심해의 날들 - (1)

by Homo Growthcus
제목_없는_아트워크 21.png 2016년, 어느 날 그린 그림.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행복의 반대말은 우울이라고 말했다. ([건전한 사회]) 우울이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몸은 살아 있지만 죽었다고 느끼는 상태다. 아무리 즐거워도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한 행복할 수 없다.


힘들더라도 스스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_ 내가 일하는 이유 p. 145




'내가 우울하구나'라는 자각이 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요즘 행복하지 않는구나...'의 시절이 꽤 되었다고 느꼈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지도 꽤 되었지만, '내가 지금 우울하구나'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생기가 없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절감하지 못하는 나의 이 상태. 이것이 바로 우울이구나. 책에 적혀 있는 문장들이 내 상태를 진단해주고 있었다.




일터에서 상사에게 'ㅇㅇ씨 우울증인 것 같아. 내가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렇다고 하고, 약을 먹으면 많이 나아지니까 약을 먹어봐.'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자각은 했지만 타인의 입을 통해 듣자니 너무 낯선 말이었다. 그렇지만 아닌 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우울했다.


의자에 앉아 일을 하다가 문득문득 '죽을 것 같은' 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이유는 없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죽을 것 같았다. 예전에 정형돈과 김구라에 대한 기사에서 ‘방송하러 이동 중에 호흡이 곤란.. 치료.. 프로그램에서 하차..’ 이런 대목들을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런 게 공황장애구나.. 그게 이런 거구나...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다. 사람을 대할 에너지가 내게 너무 없었다. 싫은 사람도 내가 건강할 때는 대처할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생명력’이리라, 난관을 만나면 뚫어내던지, 아니면 도망이라도 치던지. 뭐 그런 에너지. 싫은 사람은커녕 좋은 사람도 대할 에너지가 없었다. 거대한 펀치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피할 힘도 없어 보고만 있다 맞고야 마는 상태. 그런 상태에 접어들었다. 내가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편안한 사람들, 가족 연인 친구들 모두 상대할 에너지가 없었다. 오히려 밖에서 사회적 관계와 역할 때문에 참았던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표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격리시켜야겠다고 느꼈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인데 나에게는 저들을 소중히 대할 정신적 자원이 없다. 완전히 고갈되었다.


조금 지나서는 모든 연락과 요청이 버거웠다. 아주 작은 문자 한 통, 전화 하나도 너무 신경 쓰이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괴로웠다. ‘사람을 만나기 싫었다’ 이렇게 서술하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용어로 말하면 대인기피가 된다. 또 막상 이렇게 적고 보면 너무 심각해 보이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지만 이것이 내 실제였다.


신경이 온통 날카롭고 사나워져서 아주 작은 일을 하는데도 아주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무언가에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 넘었고,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은 늙어가시는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 더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을 더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내 상태도 그러했다. '환자' 아들과 '백수' 아들 중에 부모님께 무언가를 드린다면 그래도 '백수' 아들이 낫지 않은가 싶었다. 더 이상 나를 잃고 내가 망가지고 깨어진 상태라면 가족에게 엄청난 짐이 되지 않겠나.


내가 침몰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본 사람들 중 몇몇이 ‘혹시 공황장애냐고, 우울증이냐고’ 조용히 물어보곤 했다. 자신도 그랬다면서, 지금도 치료받고 있다면서, 그렇게 말을 건네주었다. 실제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뭔가 위안이 되었다. 정신이 아프면 = 정신병 = 미친놈 혹은 미친년 이란 단어가 자동으로 연상되는 것이 아마 한국인의 의식구조 이리라. 정신과는 항암센터보다멀고 먼 과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내 주변에도 많이 있었다니.... 정신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마치 심해의 영역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원래 지상에서 살아야 할 생물인데 물에 잠겨 지내다가 아주 아주 깊은 심해까지 내려앉은 느낌. 이 바닥의 끝에 닿으면 그곳의 이름은 ‘자살’일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한 번은 지인과 술을 먹다 이런 내 상태에 대해 얘기하니 "그러다가 정신분열 오는 거지..."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듣는 순간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처음에는 햇빛도 닿지 않는 심해라서 그냥 컴컴하기만 했는데, 나 말고 다른 누군가도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썩 유쾌한 곳에서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곳에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있다는 안도감, 위안이 들었다. 계속 상담을 받기도 하고, 약을 먹고 있기도 하고 하면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해는 수압이 높다고 한다. 높은 수압을 이겨내고 버텨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손을 맞잡고 올라가거나 할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의 싸움, 각자의 싸움인 것 같았지만, 홀로인 것 같던 내게 '나도 여기 있어' 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길 원하지 않으리라. 햇살이 비치는 물가로, 호흡이 가능한 수면으로, 다시 정상 상태가 될 수 있는 곳인 지상으로의 복귀를 모두 간절히 원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살아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즈음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 인씨가 쓴 [만약은 없다]를 읽었다. 자살은 너무 위험한 것(?)이라는 간접경험을 했다. 책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성공(?)한 사례도 나온다.) 실패했을 때는 실패한 상태로 살아가는 - 자살시도 이전의 신체상태보다 더 끔찍한 나로서 살아가야 하는 - 환자들을 맞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의사가 글을 잘 쓰니 이런 게 나오는구나. 너무 끔찍했는데 책이 너무 좋았다. 공포영화 볼 때처럼 끔찍해서 잠시 멈추기도 하면서 (영화와 다른 점은 책은 일시정지 후 재생해도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 한 문장도 단어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다. 자살에 성공한 경우에는 남겨진 환자의 가족을 바라보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남겨진 가족과 그들의 아픔을 지켜보는 한 인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살 같은걸 시도할 용기는 내게 없구나. 종종 '죽고 싶다'는 깊은 어둠의 마음이 들어왔지만, 사실 진정한 나의 갈망은 '살고 싶다'인 것이었다. 진심으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생존과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가.하는 생각도 연달아 들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살아만 있지 행동력은 0에 수렴했다. 생기가, 생명력이 없었다. 자도자도 잠이 계속 왔다. 열두 시간을 자도 잠이 부족했고, 일어날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도시락을 챙겨 다니면서 밥을 먹었는데 그럴 에너지는 사라진 지 오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그나마도 입맛이 없는 상태가 왔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책을 읽을 힘도, 글을 쓸 힘도 사라졌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줄어들고 줄어들었다. 운동도 못할 상태가 돼버렸다. 이걸 또 심각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행동불능' 실제로 나보다 더 심각하게 아프셨던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을 보고 메시지로 준 내용 중애 이런 것이 있었다. “운동하면 참 좋은데 저는 지금 행동이 안 되는 상태에요...”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몸에 모든 근육이 증발한 것 같았다. 운동도 무슨 힘이 있어야 하지 이게 지금은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걷기'였다.


추석 연휴를 작정하고 길게 쉬기로 했다. 쉬면서 하기로 한 것은 딱 하나였다. '하루에 세 시간 걷기'



‘걷는 행위’만큼은 할 수 있었다. 걷지도 못하면 정말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기능이 상실된 것이리라. 계산을 못하고 엑셀을 못하고 무거운 것을 못 옮기고 기획서를 못 만들고 책을 못 읽고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 맺지 못해도 걷는 것은 내게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내 인간으로서의 기능이었다. 걷지 못한다면 출근도 퇴근도 못할 것이고 화장실도 못 갈 것이고 편의점에 가서 음식을 고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걷고 있었다. 걷기로 했다.


왜 세 시간이었을까.하루에 세 시간씩 걷는 사람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망가진 인생을 그렇게 걸으며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와 비슷한 영화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미국 영화였는데 보려고 생각만 하다 못 봤다.) 할 수 있는 운동도 없고 뇌가 녹아버린 것만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게 너무 괴로웠고, 그러니 일단 걸어야겠다는 감각만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추석 연휴 내내 걸었다. 새벽에 나가 걸었다. 낮엔 잤다. 새벽에 나가 걸은 이유는 다른 사람을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그렇게도 사람이 싫을 때였다. 매일 세 시간씩은 못 걸었지만 두 시간, 한 시간, 아무튼 꼬박꼬박 나가 걸었다. 그렇게 걸을 때 느껴지는 내면의 감각이 있었다. 뭔가가 풀어지는 듯한 느낌. 내가 만약 태엽인형이라면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꼬여있던 태엽이 풀리는 듯한 느낌.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나흘 째, 녹아있던 뇌의 회로가 다시 접합된 것 같은. 그런 순간이 있었다. 연휴가 끝날 즈음에는 어.. 많이 괜찮아졌는데...? 싶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일상 복귀 하루 만에 공황장애 기운을 다시 느끼며 앞서 말했듯이 '요양'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몇일 쉰 것으로는 택도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망가져가며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을 마친 후 2주 동안은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자고 일어나고. 조금 나가서 걷고. 병원은 가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수입이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일단 쉬면 나아지는 부분이 있겠지. 그렇게 지내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그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회복해간 이야기. 그 작은 한 걸음들의 기록.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해나갈 이야기들이다.





책을 내게 됐습니다.


<쓰레기부터 정상인까지> 매거진을 묶어서요.


이 글은 한창 아프던 당시, 2016년 11월 26일에 작성해서 다른 곳에 발행했던 글입니다.


쓰려고 했는데 힘이 없어서, 쓰다 말았죠.


오랜만에 꺼내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rash2normal

https://brunch.co.kr/brunchbook/trash2norma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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