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서는 일도 용기다.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

by 쓰는 인간


* 기존 이해와는 달리 ‘시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omphax(복수형 omphakes)는 맛과 관계없이 ‘덜 익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신 포도’ 대신 ‘덜 익은 포도’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아이고, 춥다!”


비가 몇 번 오고 나더니 가을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꼬리를 감추고 아침저녁으로, 아니 대낮에도 꽤 쌀쌀하다. 이제 곧 12월이니, 겨울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때다. 이쯤 되면 학생들의 마음은 분주하다. 학기 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열심히 했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사실 학기 말이 되어 마음이 분주한 까닭은 그런 생각보다는 ‘이번 방학 땐 뭘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때문 아닐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수업 시수가 줄어들어서 방학도 함께 줄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방학이 좋단다. 나중에 방학 숙제를(지금도 방학 숙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몰아서 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그때의 나에게 맡기고 마음껏 노는 것이 어린 시절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렇게 때가 되어 몰아서 해야 했던 숙제 중에는 ‘이때 날씨가 어땠더라?’ 생각하며 짝꿍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기가 있는가 하며, 오롯이 나 스스로 해야 하는 독후감 같은 숙제도 있었다.


아직도 독후감이 방학 숙제인지 모르겠다.



개중에는 여러 장르가 있었다. 만화책만 빼고 온갖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그중 단골 소재는 단연 ‘위인전’이었다. 물론, 필독 도서에는 세계문학전집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소설이나, 고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을 어린 시절의 내가 달달 외우고, 퍽 잘 읽어냈으면 다행이었으려니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 탓에 나는 위인전만 주야장천 읽고 거기 나온 인물들의 생애에 대해 칭찬 일색 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써내려갔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사실 이 말은 ‘당신은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 말은 프랑스인답지 않은 말이오’라는 의미라고 한다)라는 말을 편지에 적으며 자신의 포부를 당당하게 드러낸 나폴레옹이나, 국가적 위기였던 임진왜란 중 참패 후 겨우 12척만 남은 배를 가지고 다시 전투에 뛰어들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선조에게 편지를 써 올리며 구국의 의지를 굳게 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지금도 회자하는 까닭은 아마도 남들은 ‘불가능해’ ‘이제 그만해도 된다’ ‘포기해라’ 말할 그 상황에서 용감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만화 속에서 주인공에게 혼쭐이 난 뒤 ‘두고 보자!‘ ‘다음엔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다!’ 외치며 비겁하게 도망치는 악당들과는 사뭇 달랐다.

어쩌면 우리는 위인전을 통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맞서는 일이 용기이며, 옳은 일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뒤로 물러나는 일은 무조건 나쁜 일일까?



후퇴는 늘 나쁜 걸까?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



- 이솝우화 중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 -




우리가 잘 아는 포도와 여우 이야기다. 여우는 굶주렸다. 배가 고파 '뭔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나' 하고 살피는데, 나무를 감싼 포도 덩굴이 보인다. 포도를 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본다. 하지만, 여우는 포도를 딸 수 없었다. "에이, 저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 불평을 뱉고 돌아서는 여우의 모습을 우리는 ‘정신승리’ 쯤으로 이해하곤 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 걸까? 여우의 모습을 우리는 ‘나쁜 포기’ ‘비겁함’ 말고 다른 측면에서 이해할 순 없는 걸까? 후퇴, 물러선다는 일이 늘 비겁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한국 전쟁 속 한 전투 안에 들어있다. 바로 ‘장진호 전투’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철수 작전을 진행한다."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해서 국토를 수복해도 모자랄 약 70년 전, 전쟁 중이었던 한반도. 매서운 겨울의 추위가 대지를 감싸기 시작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는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전개된 ‘장진호 전투’였다.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통해 전세 역전을 이뤘고, 한반도 북쪽으로 진출하여 반격을 이어가던 터였다. 이때,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기세를 몰아 선제공격을 가하기로 한다. 이에 미 제10군단의 지휘를 맡았던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은 휘하 부대에 국경선으로 진출 명령을 내렸고,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호로 진격했다.

미 제1해병사단을 책임졌던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은 장진호 남단 ‘하갈우리’에 진을 쳤다. 제1연대에는 후방의 보급로를 맡기고, 제5, 제7연대를 전진 배치했다. 특임대가 그들을 돕기 위해 주변 일대에 배치되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그들은 후퇴해야 했다.



한편, 중공군은 미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섬멸하기 위해 3개 군단 12만명의 병력을 장진호 일대로 배치했다. 결국 11월 27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으로 인해 미군은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비보를 접한 맥아더는 철수를 결정했다. 이에 미 제10군단장이었던 알몬드 소장은 명령을 하달받고 전 부대에 함흥-흥남으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이 상황 속에서 유엔군은 1만 7천여 명이 사망, 실종,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만약 상부에서 '군인답게 최선을 다해 싸워라!' 명령하며 후퇴를 하지 않았다면 그마저의 인원도 살아남지 못했을 터. 더욱이 중공군에 맞서 후퇴하는 동안 적의 남하를 지연시킬 수 있었고, 덕분에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던 ‘흥남 철수 작전’이 가능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후퇴는 늘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실제 흥남 철수 작전의 한 장면.



흔히 ‘전진’만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전진’이 ‘만용’이 될 때가 있다. 위기를 뚫고 죽음을 각오하며 전진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후퇴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용기일 때도 있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여우의 태도를 다시 봐야 한다.

‘어차피 먹지 못할 거’ 투덜대며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진 저 여우가 ‘그러니까 다른 걸 찾아봐야지’ 생각하며 ‘혹시 근처 딸기 밭에서 새콤달콤한 딸기를 따먹지는 않았을까?’ 상상한다면 혹시 이솝이 필자에게 ‘원작을 훼손했다’며 노발대발할까?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인생에 늘 전진할 수 있는 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닿지 않는 포도를 만난 여우처럼, 장진호에서 어쩔 수 없이 후퇴 명령을 내렸던 그 장군처럼 포기하고 후퇴하며 한 수 접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용감한 사람도 가끔은 물러선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물러서야 할 때임을 알고도 억지로 떠밀려 전진하는 바로 그 사람이 어쩌면 진짜 겁쟁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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