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사자를 본 적 없는 여우

by 쓰는 인간

"깨갱!"

만지려고 손을 뻗었을 뿐인데, 이 녀석은 내가 몽둥이를 든 마냥 뒷걸음치며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 녀석에게는 전 주인에게 학대 받은 과거가 있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본 녀석들 중 몇몇은 견종과 크기에 상관없이 과거에 당한 일들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했다. 학대당한 일은 과거였지만, 상처는 현재에 아직도 남아 녀석들을 공포라는 이름으로 짓눌렀다.

"곱창이요? 저 곱창은 못 먹어요. 예전에 체한 적이 있어서요..."

회식 메뉴로 곱창을 먹으러 간다는 말에 나는 퍽 난처했다. 팀원들이 맘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본래 좋아하던 곱창을 먹다 체한 이후로 어쩐지 나는 곱창을 못 먹는다.


결국 우리는 곱창 집으로 갔지만, 나는 다른 메뉴를 시켜야 했다. 곱창을 먹고 탈이 난 건 몇 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나는 곱창을 못 먹는다. 먹기 싫어서가 아니다. 정말 먹고 싶은데, 냄새만 맡으면 조건 반사라고 할 정도로 바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

유기견 센터의 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곱창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겐 애플파이가, 혹은 치킨이 두려움과 괴로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괴로움이나 아픔을 겪은 일은 머리와 가슴에 남아 그때 겪은 몸의 고통보다 더 큰마음의 고통, 이를테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낳는다. 그런데 과연,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학습되는 감정’일까?




두려움은 늘 경험에서 나오는 걸까?



"아, 배가 너무 아픈데?"

업무를 시작하기 전 먹은 맥모닝 세트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었다. 잘못된 게 있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또 나에게 오래된 그 친구, 장염이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또 장염이 날 찾아왔구나. 연말이라 할 일도 많고, 생각도 많이 한다 싶었는데, 그러면 그렇지...‘ 당황하지 않고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장염 같아요."

의사 면허도 없으면서 당당히 ‘장염 같다’며 자가 진단을 늘어놓는 이 환자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체력이 방전된 나 자신을 위해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이제 좀 괜찮아 지겠지? 역시, 경험이 재산이라니까?’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어갔다. 약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이제 저도 다 알아요’ 마음속으로만 뽐내며 대충 듣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링거를 맞고서 ‘이제 괜찮을 거야’ 생각했다.



"어? 이상한데, 왜 이렇게 춥지?"

집에 오자마자 전기장판 스위치부터 올리고 죽을 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요즘 밖이 워낙 추운 탓이겠지?' 생각하는데 밖에서 안고 들어온 한기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난방도 켰는데? 그제야 이마를 짚어보는데 ‘아차’ 싶었다. '원래 이랬나?' 싶었을 정도로 이마가 생각보다 따뜻, 아니 뜨거웠고, 내 몸은 벌벌 떨렸거든.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혹시, 진짜? 아니, 그럴 리 없어.' '잠깐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해. 열이 난다고. 이거 혹시 코로나 아닐까?' 코로나라는 세 글자가 머리 속에 스쳐지나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내가 우리 동네 첫 확진자가 된 건 아닐까?’ '내 동선이 오늘 어땠지?' '00시 추가 확진자'에 내가 포함되는 건가? 손이 벌벌 떨렸다. 아픈 것보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혹시 오늘 나와 마주친 누군가에게 내가 그걸 퍼뜨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11:54 오한은 멎었는데 두통 가끔 있고 얼굴이 빨갛다(열) 배는 계속 쿡쿡 아픈데 못 참을 정도 되서 화장실 가면 묽은 설사

11:57 포카리스웨트 두컵 마심. 원래 났던 맛 말고 쓴맛 난다ㅜㅜ

12:03 컵 치우고 방에 들어옴.

12:04 침대 누움

12:09 오른쪽 허벅지에 약한 통증(근육을 만지는 듯한)

01:02 자다 깸. 화장실. 기분탓인지 배 아픈 건 없는데 비워줘야 할 것 같은 느낌. 여전히 얼굴 빨갛고 머리는 띠 두른 것처럼 띵함.

01:05 기다려도 안 나와서 방으로 감.

01:20 화장실 감.

01:22 묽은 설사.

01:25 트림은 잘 나옴. 소화는 회복되는 중일까?

01:26 다시 침대.

01:45 화장실 신호.

01:52 안 나옴.

01:53 여전히 얼굴 빨갛지만 어지러움 덜함.

01:54 다시 잠.

02:58 화장실.

3:24 화장실.

4:52 화장실.




아침이 되자 선별진료소로 갔다.


'그래, 아침이 오면 빨리 선별 진료소에 가봐야겠다. 가서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지금 열이 나니까 분명히 뭔가 있긴 있는 거야.' 생각하며 화장실을 밤새 들락날락하며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증세를 소상하게 기록했다. '혹시 확진자라면, 내가 코로나에 걸린 거라면 이게 도움이 될 거야.'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침이 밝자마자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올해 초 병원에서 큰 수술을 앞두고 코로나 검사를 해봤기 때문에 코 깊은 곳까지 찔러 들어오는 긴 면봉이 익숙... 하긴 무슨, 그건 다시 해도 또 아프고, 불쾌한 느낌일 거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근무하시는 분들께 아주 자세히 내 증세를 말씀 드렸고, 내가 적은 것들까지 모두 보여드렸다.

의료진 선생님은 '아마도 말씀하신 것처럼 장염 때문에 발열이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오셔서 자발적으로 검사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하지만, 그다음 날 ‘음성’이라는 결과가 문자로 오기 전까지 나는 여전히 무서웠고, 왠지 모르게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나오는듯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사자를 본 적 없는 여우가 어느 날 우연히 사자와 마주쳤다. 사자를 처음 봤을 때 여우는 놀라 죽을 뻔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도 무서웠으나 첫 번째 만났을 때만큼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로 봤을 때 여우는 용기를 내어 사자에게 다가가 말하기 시작했다.



- 이솝우화 중 ‘사자를 본 적 없는 여우’ -


두려움이 늘 경험에서 나오는 학습되는 감정이라면, 여우는 아마 처음 사자를 보고, 두 번째, 세 번째 만날수록 사자를 더 무서워하고,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두려움은 점점 옅어지고, 결국 여우는 용기를 내어 사자에게 다가가 말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친다.

그래, 지금이야 '아 뭐야, 장염이었네' 생각하면서 웃으며 이 경험을 글감으로 쓰고 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경험을 더듬어보면, 장염이 열을 동반하는 건 퍽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지역 감염 확산이라는 상황이 나에게 찾아온 열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왜? 나는 코로나를 귀로만 듣고, 눈으로만 읽었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자를 본 적 없는 여우'의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도 이런 것 아닐까? 두려움은 경험에서 학습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전혀 모르는, 학습되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우리는 그 두려움의 원인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것을 이길 수 없다.

장염의 열을 코로나로 착각하고 벌벌 떨었던 나의 밤은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열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된 아침이 오고서야 밝을 수 있었다. 여우는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이기고 두 번, 다시 세 번 사자를 마주쳤을 때 비로소 말을 걸 수 있었다.



사실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


혹시 당신, 마음의 열을 갖고 있다면, 그러니까 다시 말해 당신이 처음 보는 사자를 앞에 둔 여우라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앞에 두고 벌벌 떨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그거 별거 아닐지도 몰라요’ 하고.

'딴 사람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 하시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혹시나 정말. 우리가 앓고 있는 열은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사자 같은 저 사람이 사실은 순한 양 같은 사람일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용기를 좀 내보는 건 어떨까?


뭐, 그게 큰 병일 수도 있고,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맹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앓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물려 본 사람만이 '사실 그거 별거 아니더라' 말하거나, '그래, 나도 그거 알아. 고생했어' '나도 잘 해냈어. 너도 할 수 있어! 괜찮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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