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뱀일 필요가 없다.

지렁이와 뱀

by 쓰는 인간



* 몸 글에 사용된 이솝우화 ‘지렁이와 뱀’과 관련된 적절한 일러스트가 없어 같은 맥락의 ‘황새와 뱁새’ 속담과 관련한 일러스트를 썸네일로 넣었습니다.


지금은 되도록 일터와 집 사이 어느 곳도 들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스크가 필요 없었던 작년만 해도 카페에 자주 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할 때 도서관 같이 아예 조용한 장소보다는 약간은 소음이 있는 장소가 집중이 더 잘되기 때문이다. 카페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단골이 생겼다. 사장님은 나를 알아보시는 건 물론이고 “00 씨 어서 와요!”하고 내 이름까지 부르며 인사해주신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보통은 들어오는 걸 보고 먼저 인사해주시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마냥 데면데면한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다’ 생각하면서 그날 있었던 업무 미팅을 할 담당자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00 씨였어요? 내가 못 알아봤구나. 미안해요.“ 한참을 이야기하고 잠시 담당자분이 자리를 비우셨는데,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단골을 못 알아보냐’ 말씀하신다면, 아니다. 못 알아볼 만했다. 왜냐면, 그날 나는 평소와 조금 달랐거든.

사장님은 나를 못 알아봤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사진을 보면 죄다 안경을 쓴 모습이다. 기억으로는 유치원생이 되고 난 다음 해부터 안경을 썼으니 안경은 타인에게 나를 떠올리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는 ‘초고도 근시’다. 눈 때문에 군대를 ‘면제‘ 받을 뻔했던 경력이 있다. 워낙 눈이 나쁘니 렌즈는커녕 수술도 꿈 못 꿨다. 자주 다니는 안경원에서 렌즈를 추천받기 전까지는. 렌즈를 자주 착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렌즈를 착용하는 일이 3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꽤 익숙하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렌즈 착용만 1시간이 넘게 걸렸음은 물론이고, 기어이 렌즈를 넣고 나갈 준비를 하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제야 제대로 알았다. 내가 착용하는 렌즈는 –12 디옵터. 이러니 렌즈를 착용한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잘생겼네’ 말은 안 해도 ‘00 씨 원래 눈이 엄청 크네요’ 했다. 그래, 렌즈. 바로 렌즈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안경을 벗은 내 모습 때문에 사장님은 날 못 알아봤던 거다. 이쯤 되면 얼마나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는지 짐작이 가실까? 이 오랜 친구 녀석 때문에 나는 퍽 괴로웠다. 겨울에는 김이 서리고, 여름에는 땀 때문에 흘러내린다.


눈이 워낙 나쁜 데다 양쪽 시력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탓에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은 꿈도 못 꿨다. 안 하다 보면 못하게 된다. 어느새 나는 수비수는커녕 골키퍼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체육시간을 하품만 하며 보내곤 했다. “자, 다음은 **번. 나와서 해보자.“ 체육 수행평가라도 있는 날이면 정말 없는 쥐구멍이라도 만들어 숨고 싶었다. ‘어차피 점수도 안 나올 거 그냥 조퇴하고 집에 가고 싶다’ 생각했다.


기억하기로는 그나마 배구 수행평가 점수가 다른 아이들만큼 나왔던 일을 빼고는 늘 체육 점수가 내신 점수를 갉아먹는 야속한 좀벌레였다.



체육 시간은 정말 싫었다.

“아휴, 나는 이런 거 하나도 못하고... 짜증 나... “ 수행평가를 마치고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며 푸념을 늘어놓는데, 당시 제일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이 툭 치며 말했다. “야, 장난하냐? 고작 체육 못하는 것 가지고 그래. 너 다른 거 잘하잖아! “


그래, 생각해보니 별로 크게 기죽을 게 없었다. 안경 때문에(라고 핑계를 대본다) 체육 시간엔 좀 웃긴 모습을 보여줬지만, 뭐 어때? 내가 잘하는 건 따로 있었으니까. 참 웃기다. 우리는 ‘내가 잘하는 것’을 망각하고 ‘남이 잘하는 것’에 홀려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 불평하며 나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갖고 있는 재능보다 남이 가진 재주에 끌려 부러워하는 태도는 사람만 갖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여기 ‘나는 왜 이래?‘ 생각하면서 남을 기준으로 삼았던 어떤 동물 이야기가 있거든.

지렁이 한 마리가 뱀의 긴 몸을 부러워했다. 지렁이는 뱀처럼 길어지고 싶어서 뱀 옆에 누워 몸을 뻗고 또 뻗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지렁이의 몸은 그만 끊어지고 말았다.

- 이솝우화 중 ‘지렁이와 뱀’ -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보통 ‘힘에 겨운 일을 분수에 맞지 않게 억지로 하면 도리어 해만 입는다’는 교훈으로 쓰이는 말이다. ‘지렁이와 뱀’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하찮디 하찮은 미물로 여겨지는 지렁이가 거대한 뱀처럼 되고 싶어 몸을 늘리다 결국 죽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렇게 되기 싫으면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아’라며 소름 돋는 경고를 웃으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네 분수를 알아라’ ‘주제를 알아야지’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는 행동거지를 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와는 별개로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다. ‘왜 그랬을까?‘ 하고 말이다.


‘도대체 왜 지렁이는 뱀이 되고 싶어 했을까?‘ ‘뱁새는 왜 황새를 따라가고 싶어 했을까?‘ 글쎄, 직접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한걸음만 더 나가보자. ‘지렁이가 꼭 뱀이 되어야 할까?‘ ‘뱁새는 꼭 황새를 따라잡아야 했을까?‘


꼭 똑같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렸을 적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어쩌면 읽은 것이 아니라 ‘읽힌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떤 모델을 제시받는다. 참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히 획일적이다.


과거에 역경이나 모든 위기를 기적같이 뚫고 나간다. 그리고 결국 뭔가 큰일을 해낸다.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실수를 했건 상관없다. 그저 위대한 인물이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인물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이런 게 하고 싶은걸요?‘ 하는 아이들에게는 ‘다음에’ 무심하게 말해버리고 똑같은 삶에 똑같은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강단에 선 교수가 마이크를 내밀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거였어? 아니, 근데 나는 그런 거 잘 모르는데. 안 배웠는데.’ 속으로 말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코끼리는 코끼리다. 물고기는 물고기다.


코끼리는 코끼리다. 물고기는 물고기다. 코끼리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물고기처럼 헤엄쳐라’ 말하는 사람은 없고, 물고기에게 ‘너는 저 코끼리처럼 위풍당당하게 초원을 뛰어다녀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물고기는 물고기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마찬가지다. 지렁이는 지렁이고, 뱀은 뱀이다. 황새? 뱁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제 몸을 늘리는 지렁이에게, 황새 뒤꽁무니를 땀 흘리며 뒤쫓는 뱁새에게 ‘더 늘려!‘ ‘그래서 쫓아가겠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은 우화 속보다 잔혹하고, 사람은 동물보다 인간답지 못하다. 그래서 여전히 우화를 읽고, 이런 글을 쓴다. 지렁이는 작아도 땅을 기름지게 한다. 뱁새는 그 귀여운 몸으로 애쓰며 하늘을 난다. 지렁이는 뱀이 되지 않아도 되고, 뱁새는 굳이 황새가 되지 않아도 된다. 지렁이는 지렁이다. 뱁새는 뱁새다. 그래도 된다.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것이 그들의 길이니까.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뱀을 보며 자기 몸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늘리는 오늘의 지렁이들에게, 황새 뒤를 부지런히 쫓지만 ‘아, 난 왜 안 되는 거야’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뱁새들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우화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뱁새는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지렁이가 뱀 마냥 자기를 늘리면 결국 죽는다. 그래, 그러니까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라고. 농부라도 되어 우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 제 몸을 늘리는 지렁이에게 ‘너는 뱀은 아니지만 지렁이라도 충분해’ 말할 수 있다면, 뱁새에게 ‘얘, 너 사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아니? 그러니까 굳이 저 멀대를 좇지 않아도 된단다’ 전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래, 남들처럼 안 되면 뭐 어떤가? 나는 나라서 의미가 있다. 나는 나대로 소중하다. 지렁이는 지렁이고, 뱀은 뱀이다. 황새는 황새고, 뱁새는 뱁새다.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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