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적 시절에 빠진 개구리
"에? 눈이 온다고?"
주말 직장으로 출근하기 전 미리 날씨를 확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퍽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어제도 그랬다. 저녁을 먹고 퀼팅 자켓을 입었다. 지퍼를 올리고, 마스크를 쓴다. 스마트폰 앱에서 ‘날씨’를 확인하니 일요일에 눈이 올 거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눈 올 때가 됐구나..."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중얼거린다. 벌써 12월도 곧 절반이 지난다. 절반을 넘어 거의 끝에 다다르면 요란한 세상에 조용히 왔다던 그 아기를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내는 그날이 온다. 뭐, 누구는 꺼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도 코로나 때문에 2주 격리를 해야 해서 당일에 양말이 아직 홀쭉해도 놀라지 말라던데, 뭐. 할아버지 오시는 동안 영화라도 보면 시간이 금방 가지 않을까? 아, 물론 필자는 그날도 일할 예정이니, 시간이 더 빨리 갈 듯하다.
영화라, 생각해보니 ‘특선’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뿐만 아니라 ‘홀리데이’라고 불러야 할 성탄의 날에도 우리를 찾아왔다. 뭐가 있을까? 천차만별이겠지만 ‘나 홀로 집에’가 떠오른다. 퍽 오랜 시간 동안 금발, 푸른 눈의 꼬마는 크리스마스에 내가 ‘나 홀로 집에’ 있지 않도록 함께 해주었다.
"응? 쟤가 걔야?"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아는 케빈이라고? 저 얼굴이? 하긴, 영화가 1991년에 개봉했으니 벌써 내년이면 만 30년이다. 모르긴 몰라도 케빈으로 분했던 맥컬리 컬킨은 그만큼의 세월을 얻어 맞았을 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게 말이 되나? 오랜만에 우연히 구글 광고에서 마주친 나의 케빈은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만큼 변했다.
이런 경우처럼 이전의 외모가 여러 가지 이유로 못생기게 변해버린 사례를 ‘역변’이라고 한다. 뭐 굳이 ‘못생기게’ 변해버리지 않아도, '일단 몰라 볼 정도로 변했으면 역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물 중에도 "쟤가 걔야?" 말할 만큼 몰라 볼 정도로 변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개구리다. 올챙이와 개구리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같은 동물이냐’ 물을 정도로 생김새가 다르다. 오죽하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돌더라.
하루는 개구리들이 연못에 모여 헤엄쳐 다니는 올챙이들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저놈들은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들이길래 저렇게 못생겼지?" 옆에 있는 녀석이 거들었다. "그러게. 쟤네 팔다리도 없어. 이상해!"
그 소리를 올챙이들이 듣고 개구리들을 쳐다봤다. "와, 저 박쥐 같은 놈들 보라지. 땅에서는 팔딱팔딱 뛰어다니더니, 연못에 와서 헤엄도 치네?" “캬, 팔다리가 4개나 되면서 겁나게 허우적대는 꼴 봐. 웃기다!”
개구리들은 기분이 꽤 불쾌해져서 시비를 걸 요량으로 말했다. "야,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짐승이냐?" 그 이야기를 듣고 제일 큰 올챙이가 대꾸한다. "응, 우리는 올챙이란다! 모르니?" "그러면 너희들은 올 씨 가문이로구나?" 개구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야, 그러면 니들은 뭐냐?" 올챙이들이 되묻는다. "아, 우리는 말이지. 개구리, 개구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올챙이들이 납득했다는 듯 말한다. "아하, 너희들은 개 씨들이로군?"
"요즘 애들은..."
"야, 진짜 우리 때는 안 그러지 않았냐?"
올챙이는 개구리를 모른다. 개구리들은 어떨까? 잊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잊었는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뭐 어디 개구리만 그렇겠나? 사람은 올챙이인 적 없고, 개구리가 되어 본 적도 없지만 왜 옛날 생각들을 못, 아니 안 하시는지. 물론, 과한 것도 문제긴 하다. 여기 어떤 유별난 개구리가 그랬던 것처럼.
애자(가상의 인물. 작중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가 별빛이 쏟아지는 어느 강변에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구슬픈 소리가 들려온다. 유심히 들어보니 악어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였다. 악어가 한참을 울더니 개구리에게 말한다.
"어제 용왕이 명을 내렸는데, 꼬리 달린 물고기는 모두 죽인다고 합니다. 나는 꼬리가 달린 악어인지라 죽을 것이 두려워서 울지만 여러분들은 꼬리도 없는데 왜 그리 슬피 우는 거요?"
그러자 개구리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꼬리가 없지만 올챙이였을 때를 문제 삼을까 봐 겁이 나서 그랬지요."
- 소식(소동파)의 '애자 잡설' 속 우화 중 하나 -
개구리에게 올챙이 적 생각을 되새기는 일이 필요할까? 물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올챙이 적 일에 너무 빠져있는 것도 곤란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개구리는 올챙이였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구리는 지금 개구리다. 올챙이가 아니다. 올챙이였을 때만 생각한다면, 그는 개구리로서 살 수 없다. 사람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기억하고, 복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과거를 기억하라’는 말은 그걸 '가슴 한 쪽에 고이 모시고 잊지 말아라'는 의미지 '거기에 주야장천 몰입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가 좋았건, 나빴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좋았다’고 말했던 어제는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되돌릴 수 없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간을 추억하며 ‘그때 좋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올챙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제를 기억하되 오늘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