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노인들은 희망보다는 추억의 힘으로 산다고 말했다. 붓다는 그가 아직 싯다르타 왕자였을 때 늙고 병든 한 남자를 궁 밖 산책에서 발견하곤 “오, 불행이로다.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취하여 늙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놀이며 즐거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라고 탄식했다.
늙는다는 것,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불행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몸은 노쇠하고 추레해지며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은 노년, 가시밭길 같은 삶을 헤쳐 나와 이젠 한숨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일만이 전부인 노년. 그 눈앞의 현실을 누구라고 비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한탄할 수만은 없다.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노년은 인간의 최종 완성 상태이다. 노인이 가진 경험과 지혜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와 한창 활동 중인 세대에게 삶에서 체득한 혜안을 열어주는 노인의 미덕은 결코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고령의 비활동 인구로서, 소비 사회의 폐물로서, 소외된 계층으로서 방치되고 있는 노인 문제는 이제 전 사회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명적인 숙제인 것이다.
여성해방 운동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노인 문제의 중차대함을 우리보다 30년 앞질러 통찰한 방대한 노년 연구서 『노년』은 그래서 뜻 깊게 읽힌다. 노인의 위치와 가치, 건강, 사회 제도, 노인의 성생활, 정신병리학적 문제 들을 고대 문헌과 실증 자료를 토대로 매우 긴밀하게 논의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까지도 고찰할 수 있다.
보부아르가 이 육중한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간명하다. 노인도 인간, 즉 존재라는 것. 존재의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점.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위를 갖지 못할 때 노년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등. 만약 그렇다면 노령화의 확산은 불행한 삶의 확산에 다름 아닐 것이다.
불행한 삶을 타개하려면 노인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적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 불행으로부터 노인을 구출할 것이라고 그녀는 전망한다. 또 젊은이들의 강렬한 열정을 되도록 오래 보존하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터이다. 사회는 그런 노인들을 하나의 인간 존재로 인정하고,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그녀의 결론은 노인과 사회가 다 함께 ‘삶’을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데 목적을 둔다.
2030년이면 이제 한국 사회도 본격적인 고령 사회로 접어들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망하고 있다. 노인 인구의 전례 없는 증가와 유년 인구의 감소로 바야흐로 실버 시대가 임박해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고령화에 대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해졌다. 그러나 제도 개선 이전에, 노년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역설하는 이 책을 통해 노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시적 태도부터 교정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