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주군 암각화 기행 | 보보담 2021년 봄호(통권 40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임을 증명할까?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직립보행의 존재라면 현생의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사고하는 존재이다. 두 발로 걸으며 생각하는 자, 이것이 바로 인류를 규정하는 가장 본원적인 특성인 셈이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곧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다. 주위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게도 되었겠지. 무리를 지어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짐승과 물고기를 잡아 신체를 보신하고, 풀과 나무와 광석 등을 채취하여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비로소 정착 생활도 시작했을 것이다. 더는 떠돌지 않아도 될 때, 한두 평일지언정 내 한 몸 편히 누워 공상을 시작할 수 있을 때, 그때라야 인간은 생존을 넘어선 무엇, 비로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무엇에 매진하게 되지 않았을까?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선사 시대의 암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첫 울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최초의 인간’에 대한 생각이 맴을 돌았다. 최초의 인간은 바위에 무엇을 새겼을까? 그들에게 바위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보고 나면 존재의 근원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막막한 미래가 한두 겹 정도는 환해지려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 한국에 신석기 시대 암각화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인류의 시원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에 오랫동안 경도되기도 했지만, 내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터이다. 이미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를 잡으며 살아가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표상이 새겨져 있고, 마찬가지로 국보로 지정된 천전리 각석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역사 이전과 이후의 다양한 문양이 여러 겹으로 세각(細刻)되어 있다고 했다. 7000년 전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못내 궁금해서 울산행을 준비하는 마음이 설렜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둘러보기 전에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주차할 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반구대로 가려면 박물관을 지나쳐 가야 했다. 마침 천전리 암각화를 주제로 한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억과 기록이라, 이 두 단어가 오늘의 답사를 이끄는 지표가 되어주겠구나 싶어 반가웠다.
암각화박물관은 한 마리 고래 모양으로 지어졌는데 내부는 중층 구조의 건물이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개인 정보를 등록한 뒤 손 세정을 마치고 앞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입장하니, 마치 고래 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두운 가운데 희미한 빛이 비쳐들었다.
문득 어려서 보았던 영화 <피노키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페토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피노키오가 일부러 고래에게 잡아먹히는 장면. 피노키오가 고래에게 꿀꺽 잡아먹히던 순간은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할아버지가 촛불을 켜두고 고양이 피가로와 함께 막막한 해방의 날을 기다리던 고래 배 속은 너무도 안온했다. 고래의 갈비뼈가 궁륭을 이뤄 둥글게 휜 곳에 책상도 있고 침대도 있고 빨래도 널려 있어, 피노키오와 헤어졌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게 느껴지던 곳. 암각화박물관의 전시실이 꼭 그랬다.
새끼 고래를 등에 업은 고래(귀신고래) 문양이 바닥에 점점이 놓여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인도했다. 피노키오 발처럼 작은 고래 모자가 내내 앞에서 길을 이끌어주니 신비로움이 더해졌다(이 문양은 실제로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져 있다. 무척 귀엽다. 꼭 검색해서 확인하시길!). 전시실에 입장하기 바로 전에 각을 맞댄 거대한 두 벽이 있는데, 그곳에서 실사 고래 한 마리가 솟구치더니 이윽고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과 신비한 문양이 연달아 빛을 내며 푸른 화면 위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시공간과 물상이 엉겨드는 원시의 바다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오늘 내가 목격할 것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른쪽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니 선사 시대의 대표적 미술이라 할 수 있는 암채화와 암각화 개념도가 이어졌다. 색을 사용해 바위에 그린 그림은 암채화, 바위의 표면을 쪼거나 갈거나 그어서 새긴 그림은 암각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가 인류 최초의 암채화라면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포경(고래잡이) 그림으로 곧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전자에 비해 후자의 유명도가 낮아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게 느껴지지만, 사실 전혀 아니다. 울산이, 한국이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싶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및 청동기 시기와 관련이 깊은데 울산에서는 구석기 유적도 제법 발견된 모양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까지 울산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석기, 돌칼, 토기 등)을 차례대로 둘러보고 나자 비로소 반구대 암각화 형상을 그대로 본뜬 모형물이 등장했다. 모형물인데도 헉 소리가 날 만큼 웅장하고 신비로웠다. ‘바다라는 공간’ → ‘선사 시대라는 시간’ → ‘암각화라는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전시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온전치 못한 채로 남아 있는 한두 점의 유물일지언정 그 유물이 놓여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이해하고 나면 유물은 이제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넘어 우리에게 더한층 가까워진 존재가 된다. 그렇다, 박물관은 그렇게 살아 움직인다.
반구대 암각화 감상을 마친 뒤 중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천전리 암각화를 주제로 한 전시가 펼쳐졌다. 천전리 암각화는 주암면과 별면으로 이뤄져 있는데 인물과 동물, 동심원이나 마름모꼴의 기하학적 무늬, 금속 도구를 이용해 새긴 세선화와 명문 등이 총 780여 개나 새겨져 있다고 한다. 상단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동심원과 땅을 상징하는 마름모꼴 무늬가 여러 겹으로 펼쳐졌고, 사슴 몸에 사람 얼굴을 한 반인반수가 보이는가 하면 정면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사람 얼굴도 눈길을 끌었다. 하단에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신라 시대의 왕족과 화랑, 승려와 관리, 지배층의 여인들이 다녀간 명문 흔적들로 빼곡했다.
신석기 시대 그림을 구경하러 간 신라 시대 사람들의 문자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목도한다는 것, 최소 세 겹의 시공을 겹쳐 읽는다는 것, 놀라운 일이다. 역사 이전과 이후가 한 판의 바위에 엉켜 있는 독특한 암각화, 이미지로 표현하는 선사 시대와 문자로 말하는 역사 시대가 혼융된 거대한 시간의 화첩, 그것이 천전리 암각화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푸른 영상실에서는 암각화 속의 수많은 문양이 하나씩 말을 걸어오듯 빛을 발하며 솟아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부서지고 마모되는 존재들인 양. 그럼에도 기억은 반복되고 기록은 되풀이된다는 듯. 이제 박물관을 나서야 할 때였다. 실제 암각화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시공이 갈마드는 길 따라 고래와 샤먼의 세계로
박물관을 나와 걷고 있으려니 세찬 물소리가 들렸다. 울산을 대표하는 태화강 상류의 지류인 대곡천이 바로 눈앞에 흐르고 있었다. 지도상에서 확인해보니 대곡천은 천전리 각석 앞에서 한 번 굽이쳤다가, 이곳 박물관 앞에서 다시 굽이친 뒤, 반구대 거북머리 위 반고서원유허비(槃皐書院遺墟碑) 앞에서 급하게 휘돈다. 그런 뒤 대곡리 공룡 발자국 화석 유적지 앞을 흘러 반구대 암각화 앞까지 갔다가 거기서 또 다른 지류를 만나 태화강 하류로 흘러내려 간다. S자를 여러 번 그리며 흐르느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맑다 못해 우렁차다. 이 대곡천이 흘러가는 길이 곧 오늘 내가 걸어갈 길이 될 터였다.
대곡천 소리를 길잡이 삼아 반구대 암각화를 향해 걸으면 집청정(集淸亭)이라는 정자가 길 왼편에 나타난다. ‘맑음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이 작은 집을 조선 시대 선비들과 시인 묵객은 오래 사랑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곳에 도착하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정자 건너편에 우뚝한 바위산이 하나 서 있는데 바로 반구대(盤龜臺)다. 이름처럼 실제로 거북이가 머리를 치켜세우고 앉아 있는 형상으로 풍광이 심상치 않다. 말 그대로 그림 속에나 나올 법한 곳이라서 맞닥뜨리면 그야말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역시나 겸재 정선과 그의 손자 정황(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각각 <반구>와 <언양반구대>에 이곳 풍광을 담아냈다. 아마 반구대의 심상치 않은 기상이 가장 잘 보이는 집청정에서도 그렸을 것이다. 이 정자는 경주 최씨 문중에서 직접 짓고 오래 관리했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머리를 치켜든 상서로운 거북이 한 마리에 시선을 뺏기고 그 밑을 휘도는 대곡천의 낭랑한 소리에 귀를 뺏겨 속세의 잡생각이 절로 사라질 터였다. 뜻 그대로 맑음이 저절로 모이는 집인 셈이다.
이 집을 아껴 드나들던 사람들의 마음을 짚고 있으려니 선사 시대에서 조선 시대로 훌쩍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시공이 갈마드는 느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다. 그것을 알리듯 깎아지른 절벽 앞에 대곡천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라는 투명 아크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655년(효종 6)에 연로(硯路) 즉 벼루길(벼랑길)을 개설했음을 알리는 명문인데,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워 명문 앞에 아크릴판을 세워 길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킨 듯하다. 366년 전에 닦인 선비들의 길이라니, 발걸음이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곧이어 당최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자연 습지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로 목재 산책길이 가로지른다. 연로와 습지를 모두 보호하기 위한 방책 같다. 수달, 원앙, 말똥가리 등이 서식하는 청정 지역이니 당연한 처사다.
습지에서부터 둥그런 궁륭을 이룬 대나무 숲을 통과해 언덕마루에 올라서면 이제 대곡리 공룡 발자국 화석 지대다. 이곳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애써 물가로 내려가야 공룡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약 100제곱미터 넓이의 바위 위에 스물네 마리의 공룡이 쿵쾅쿵쾅 걸어 다닌 흔적이 제법 선명하다. 이 발자국 무리는 대곡천으로 뻗어 있다. 이곳에서 물놀이하며 놀던 거대한 공룡 무리를 상상하려니 시공의 잣대가 멋대로 휘청거렸다. 인류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중생대 백악기, 무려 1억 년 전의 시대가 꿈틀대는 곳이니 오죽할까. 암각화 기행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공룡들의 발자국을 뒤로하고 마지막 언덕을 넘자, 마침내 강 건너편에 반구대 암각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냈다고 쓰지만 사실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숲을 머리에 인 거대한 암석 지형이 보이고 그곳 하단부 어딘가 너비 8미터 높이 3미터 정도의 암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으리라는 짐작일 뿐. 그 암면의 평평함만은 잘 보였다. 다섯 시간 넘도록 차를 타고 달려와 반 시간 정도를 걸어 당도했건만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건가. 다행히 특수 관측용 디지털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는 암면에 햇빛이 비치지 않으면 새끼 멧돼지, 호랑이, 표범 등 몇 점의 그림밖에 보이지 않아 지워졌다는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안내판을 보니 10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는 하루 종일, 나머지 날은 오후 3시 이전까지 햇빛이 들지 않는단다. 암각화를 제대로 관람하려면 4월부터 9월 중순 사이, 맑은 날 오후 4시경에 와야 한다. 그러면 ‘7000년 전 우리 선사인들의 찬란한 솜씨’를 감상할 수 있다. 내가 답사했던 날은 2월 초, 반구대 바위 면에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날이었다.
암각화박물관에서 강 건너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미리 일별해둔 터라 아쉬운 마음은 곧 사라졌다. 박물관에서 학습한 내용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에는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그중 20여 종의 동물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세계 최초의 고래 도감이라 할 만큼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새끼를 등에 업은 그 고래!), 향유고래와 같은 대형 고래가 분명히 확인된다. 우수리사슴, 백두산사슴, 사향사슴, 노루,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너구리, 멧돼지, 바다거북, 물개, 어류와 바닷새 등도 육안으로 구별된다. 암각화 전문가들은 이들 동물 그림에 환절기와 번식기에 보이는 계절성 장면이 표현돼 있어 암각화를 제작하는 집단이 동물의 생태적 습성에 놀라운 지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선사 시대에 행해진 고래잡이는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성스러운 의식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암각화가 위치한 대곡천은 선사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고래잡이 생활을 하던 곳이자, 고래가 잡히지 않거나 고래를 잡을 수 없거나 고래의 영혼을 위무할 때 드나들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협력하는 종’으로 거듭났던 선사인들은 고래잡이라는 공동체의 중요한 행사를 함께 치르고 나면 제의를 올린 뒤 바위에 그림을 새겨 기록을 남겼다. 당시 그들의 문자는 이미지였으니, 이미지를 새기는 암각화 제작자들은 특별히 선택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제의를 집행하는 샤먼 또는 샤먼에 가까운 특수 기술자였을 법하다. 즉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만 해안에서 고래잡이를 하며 살아가던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정신 활동이 반영된 총체적 문화 박물관인 셈이다. 강 건너편에서 오랜 시간 비의를 품고 햇빛이 드는 날만을 기다리는 캄캄한 암각화의 실체가 비로소 바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인간, 호모 이마고(Homo imago)의 탄생
선사인들에게 바위는 공동체가 함께 대면하는 한 장의 거대한 인생 도화지였다는 것. 암각화는 그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을 함께 재현하는 일생일대의 제전이었다는 것.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대곡천의 암석 지대를 거니는 일이 상서롭게 느껴졌다. 지금 이곳 바위에 새긴 이미지들이 백 년이 흐르고 천 년이 흐르고 만 년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는 믿음, 모든 것이 필멸하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불멸하는 정신의 가치를 아로새기겠다는 신념. 선사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자 딛는 걸음이 기이하리만치 흥겨워서, 천전리 각석을 향해 되돌아가는 길이 가벼웠다. 이상타, 이상타, 여러 번 뇌까릴 정도로 흥에 겨운 길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암각화박물관 앞 대곡천에 다시 이르자 이제 상류 쪽 천전리 각석에 이르는 길이 보였다. 20여 분 걸어 당도한 그 길 끝에는 대곡리 공룡보다 더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노닐던 공룡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움푹움푹 패어 있었고, 강 건너편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시간의 층을 겹겹이 입고 고독한 전시회를 펼친 천전리 각석이 보였다. 천전리 각석은 반구대 암각화와 달리 물에 침식당하지 않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그러나 양식 있는 현대인은 만지지 않는다. 국가 보물이고, 곧 세계 문화유산이 될 소중한 바위니까). 다만 문양들을 직접 가까이 보려면 화석 지대 윗길로 올라 대곡천을 건너야 했다.
이 대곡천 건널목이 참 묘했다. 시멘트 길 하나가 대곡천 수면에 맞닿을 듯 아주 낮게 깔려 있었는데, 이 길을 건너는 동안 마치 쿨렁쿨렁 움직이는 수면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갈릴리 호수 위를 두 발로 걷는 예수처럼!). 대곡천 소리는 여태 들은 것 중 가장 우렁찼다. 골과 골 사이를 울리며 쿵쾅쿵쾅 쏟아지는 물소리가 아찔해서 몇 번을 주저앉을 뻔했다. 백여 마리가 넘는 공룡 무리가 강가에서 뛰노는 소리마저 환청처럼 들려왔다. 게다가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사위 속에서 천전리 각석을 향해 대곡천을 건너던 순간, 그 순간에 내 몸은 그날 보고 느껴야 할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흡수한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이곳에서 과거 그곳으로 넘어가는 그 얇디얇은 길에서, 세상이 곧 무너질 듯 물이 흔들리고 숲이 진동하는데도 요지부동하는 존재가 보였다. 바로 바위였다.
대곡천을 건너 언덕마루에 올라 숨을 몰아쉬자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천전리 각석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너비 10미터, 높이 3미터 크기의 암면 상단부에는 옛 선사인들이 아로새긴 동심원, 나선, 물결무늬, 마름모 등이 끝없이 펼쳐졌고, 하단부에는 신라인들의 행렬, 돛단배, 말, 용 등이 세밀하게 그려졌다. 너무 얇아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문자는 이미 전문가들이 탁본을 떠서 판독을 끝낸 뒤 암각화박물관에 잘 전시해둔 상태였다. 한없이 단순해서 심오한 문양과 한없이 세밀해서 간절한 문자를 바라보며, 다만 나는 어떤 감격에 마음이 울컥대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이 변하고 흔들리는 세상에서 요지부동의 존재 하나가 나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으니, 하늘과 땅과 자연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우주의 문양들 가운데 다름 아닌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존재와 존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듯. 세상에, 여기에 주인공이 있었네. 호모 이마고 안녕? 반가워! 우리 드디어 만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