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해진 그 시절의 <우리들>

by Ellie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던 선이. 친구들 무리 속에서 선이의 모습만 화면에 담아내던 카메라의 시선 외에는 아무도 그 어린 소녀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끝내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한 선이는 어느 그룹에도 환영받지 못한 채 친구들과 피구를 시작한다.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잡아서 되돌려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 게임에 참가한 선이는 제대로 공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선을 넘었다’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게임에서 ‘죽는다’.




스포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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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주제가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피구왕 통키>를 좋아했다. 국민학생 시절 그 만화영화가 방영되었기에 체육 시간에 줄곧 우리는 회전회오리 슛 같은 것을 따라 하며 피구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친구들과의 피구 게임이 즐겁지 않았다. 상대편이 던지는 공을 받아낼 자신도 없었고, 공을 잘 던지거나 잘 막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공을 피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아프지 않게 공을 맞은 뒤 그 게임에서 ‘죽으면’ 그만이었다. 멋지게 온몸으로 공을 받아 상대편에게 던지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었고, 어쩌다 살아남은 친구가 마지막까지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내게 피구는 체육 시간에 억지로 몇 번 해보았던,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게임이었다. <우리들>을 보고 나니 막연하게 왜 그 게임을 싫어했는지 명확해졌다. 피구의 축소판 같던 아이들의 그 세계에서 나를 공격해오는 공을 잡을 자신은 없었고, 그저 피하기 바빴지만, 마지막에 살아남아 주목을 받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나는 어느 시점에 사라져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으니까.


이름도 얼굴도 이젠 너무 아득해졌다. 아이들에게 방학을 알리며 선생님이 4학년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해주는 바람에 나의 4학년 여름방학을 떠올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장면이 3학년 때인지 4학년 때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잊은 것인지, 자연스럽게 잊힌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아름답고 좋았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나도 선이와 지아처럼 투쟁 가득한 4학년을 보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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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을 지나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고 어쨌든 ‘10대’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니던 그 시절, 조그만 몸만큼이나 조그만 세계에서 살던 우리에겐 친구가 세상 전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이 에겐 친구가 없었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동생만 있을 뿐이다.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피구도 잘하는 보라와 친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보지만 마음에 상처만 입었고, 우연히 나타난 지아에게 보라에게 줄 팔찌를 선물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두 아이는 짧은 시간에 친한 친구가 된다. 서로의 집에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한다. 함께 봉숭아 물을 들이며 도원결의 같은 것도 맺어보고, 언젠가 바닷가에 함께 가자는 꿈도 꿔보고, 같이 잠들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며 두 사람만의 비밀을 만들고,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시샘하기도 한다.


선이와 지아만 있던 경기장은 제법 평화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개학을 맞이하여 새로운 선수들이 출현하게 되자 판은 새롭게 바뀐다. 단둘이 있을 때는 잘 지내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어른이 된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내게는 없는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변명을 해본다. 사실, 보라와 지아가 친해진 모습을 본 뒤에 대부분 관객들(=나)은 불안했을 것이다. 개학 날 선이의 인사를 쌩까는 지아를 보며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구나 싶었다. 돌아가면서 친구들을 따돌리는 보라 같은 과거의 내 친구들이 생각나 짜증이 나고, 당하기만 하는 선이가 너무 불쌍하고, 지아가 너무 미웠다. 영화가 선이의 시선에서 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선이에게 감정을 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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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선이가 반격을 시작했다. 날아오던 공을 피하거나 맞기만 하던 선이 드디어 공을 잡아 공격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이의 그런 반격을 응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한때 친했던 친구를 괴롭힌다고 해서 선이의 마음이 좋아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놀랐던 부분은 보라가, 선이에게 들었을 법한 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선이 언제 보라에게, 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보라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짐작만 할 뿐이다. 막연히 선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선이 너, 너한테 유리한 얘기만 지금 나한테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아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선이의 시선에서 서술된 영화가 지아의 마음마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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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실로 만든 팔찌와 봉숭아 물이 아이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찌는 선이가 보라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든 것이었다. 영화에서 짧게 언급되는데 과거에 보라는 선이와 친구였다. 어떤 이유에서 둘 사이가 멀어졌는지는 서술되지 않는다. 선이는 다른 친구를 주기 위해 만들었던 팔찌를 지아에게 준다. 새로운 친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수돗가에서 선이 지아의 팔찌를 얘기하기 전까지 지아는 그 팔찌를 빼지 않았기 때문에, 선이는 아마 지아에게 화해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팔찌가 아이들 관계를 보여주는 신호 역할을 했다면 봉숭아 물은 아이들의 시간과 상처를 대신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키만 한 봉숭아 나무의 꽃잎을 따고 그 꽃잎을 짓이겨 아이들은 손톱에 물을 들인다. 시간이 지나며 손톱은 자라고, 손톱이 자란 만큼 봉숭아 물은 사라진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물들였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만큼의 마음이 성장해, 상처가 조금씩 지워졌을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왜 친구로 지내냐는 선이의 물음에 윤이 너무도 해맑게 대답하지 않던가. ‘그럼 누구랑 놀아?’ 게임이 끝나지 않는 경기장에서 아이들은 화해하더라도, 이전처럼 단짝이 되더라도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싸우며 성장하고 그렇게 친구로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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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4학년 여름방학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떠올랐다면 마음이 아팠을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아무는 동안 성장했을 나의 시간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맑은 아이들의 우정이 마냥 귀엽고 예뻐 보이지만은 않듯이 말이다.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상처와 마음을 함께 받는 뜻인가보다. 윤이에게도, 선이에게도,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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