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 싶지 않은 그곳 <할머니의 먼 집>

by Ellie

영화제에서는 주인공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오래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플래닛 비보이>를 볼 때도, 근처에 주인공들과 부모님이 계셨다. <쿠바의 연인>을 중앙시네마에서 볼 때도, 감독 부부를 영화관에 들어가면서 마주쳤다. 영화를 보기 전이니 인사 나누기도 어색해, 모르는 척 지나갔었는데. 이날도 로비 어디선가 ‘할머니, 내 친구들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달뜬 분위기가 좋았다. 상영관에 입장하려고 보니 주인공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의자에 앉아 계시고, 스텝들이 메이킹을 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내가 영화에서 만나려는 할머니가 이분이시구나 하고 살짝 엿보았다.



할머니!

잉?

할머니 죽으믄 나도 못본디 갠찮애?

잉. 이자 요만치나 커씅께 갠찮애야.

안 갠찮애, 나는~





산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TV를 보듯 뭐라고 말씀도 하시던 할머니는 93세이시던 2년 전, 자살을 시도하셨다. 전 재산인 30만 원을 장례비용으로 쓰라며 화장대 위에 올려두시고 수면제를 드셨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손녀는 할머니에게 향했다. 늘어난 러닝 셔츠를 입고 화분에 물을 주는 할머니에게 손녀는 그날 일을 물었다. 할머니는 너무도 덤덤하게, 우리가 어제 먹은 점심 메뉴를 얘기하듯 왜 죽고 싶어 했는지 말씀하셨다.


5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마치 내일 할 일이 ‘죽는 일’ 뿐인 것처럼 어서 가야쓴디 뭐땀시 이라고 살아서 느그들 고생만 시킨다고 말씀하셨다. 자식들 키워내고, 손주들까지 장성해서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고, 남은 숙제는 이제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걸까. 무심한 하늘은 자기를 데려가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할머니와 영화 속 박삼순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시절 태어나 실제로 전쟁을 겪기도 하셨고, 새끼들 키우느라 전쟁 같은 생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새끼들이 알아서 살만할 때가 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사는 게 성가시다.


우리는 모두 생의 결말을 알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보편적으로 할머니들보다 살날이 더 많은 우리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그러나 할머니들에겐 일상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불확실이지만 할머니들에겐 ‘확실한 것’이다. ‘끝이 정해진 책’에서 할머니들에게는 이야기를 담을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절정기를 채우던 때와는 그 속도와 열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야 간다고 했던가. 노년의 나날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이유이자 삶의 목표인 것 같다.



엄마와 나, 그리고 외할머니와 엄마


우리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식구 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집을 나서는데 자기가 일한다는 핑계로 아침밥을 못 해줘서, 애가 밥도 못 먹고 갔다고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 못 끓여줘서 미안하다고,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유치원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을 보다가, ‘이날 엄마가 밥을 못 먹여서 네가 배가 고팠는지 야쿠르트를 하나 집었는데 선생님이 못 먹게 하더라, 그걸 보면서 엄마가 많이 미안하고 속상했기 때문에 이날 사진을 평생 잊지 못해’라고 하셨다.


그런 엄마는 할머니 드리겠다고 은행을 까서 바리바리 싸 들고 간 적이 있다. 그날 엄마는 외할머니께서 싸주신 각종 산나물과 고구마 등을 가져오셨다. 딸은 커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엄마가 평소에 잘 못 드시는 음식을 챙겨 주기 바쁘고 엄마는 딸네 먹으라고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영화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손녀에게 할머니께서 김치를 담그시며, 조금이라도 싸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야 본인의 딸도 먹을 수 있다고, 무심코 말씀하셨다. 감독의 어머니(할머니의 따님)도 자신이 만든 음식을 엄마가 맛있게 드셔서 좋았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시며 냉장고에 본인이 해 놓은 요리들을 가득 채워놓으시는 장면이 후반부에 나온다. 딸에게 자기가 한 음식, 한 입이라도 먹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 와닿아서,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딸의 마음이 자꾸 생각나서 영화 보는 내내 참 많이 울었다.


사실 할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볼 때마다 나중에 엄마가 주름이 더 많아져서 할머니가 될 때를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생각하다가도 주름이 많은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이 아직 상상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세상에서 최고로 예뻤던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별일 없으면 나도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될 텐데, 그 전에 나는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게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할머니의 먼 집


왜 할머니의 집이 아니라 ‘먼 집’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했다. 영화 속 화자이자 감독인 손녀가 느끼기에 먼 집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가 가고 싶어 하는 그 ‘멀리 있는’ 집이란 뜻일까. 영화를 보고 났더니 명쾌하게 그 뜻을 안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 타이틀에서도 ‘먼’이라는 글자가 먼저 뜨고 나머지 이름이 채워지는 것을 보아,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뜻이겠거니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할머니는 그 먼 집에서 꽃에 물을 주며, 무언가를 살아가게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실 것만 같다.



+


친할머니도 귀가 어두워서 항상 큰 목소리로 말씀을 드려야 했다. 허리도 굽어서 지팡이를 늘 짚고 다녔다. 할머니에게 말을 할 때면, 분명히 예의 바르게 한다고 하는데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 좀 버릇없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할머니께 귀엣말하듯 귀에 입을 대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니 참 사랑스러워 보였다. 우리 할머니 심심해하실 때 좀 더 잘 해 드릴걸,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 많이 미안했다. 어둡고 슬픈 영화가 아니라, 분명 밝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감독의 개인적인,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힘이니까. 많이 울었고, 리뷰를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정말 행복했다.




201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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