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자석> 잊혀지는 것

시간에 가두어 놓은 소중한 것들에 관하여

by Ellie

궤도가 다른 두 행성이 우연히 마주쳐 잠시 곁을 내어주고 다시 멀어져 가듯 고든은 프레이저로부터 멀어진다.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가끔 프레이저를 보던 고든은 그렇게 다시 본래의 궤도로 돌아갔다.




이제 막 스무 살을 앞둔 젊은 청년들의 패기 넘치는 노래를 듣고도 어딘가 슬펐다. 지나고 나니 고든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서로가 너무 닮았으나 끝내 가까워질 수 없어 밀어내는 자석들처럼 보여서일까. 혼자서만 오른쪽으로 멀어지는 고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자기 파트가 되어 격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해도 친구들은 외면하고 프레이저마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들에게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미처 사과하지 못하고 지나온 나의 잘못들이 그 상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엔 옆집에 사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학교에 다니면 같은 반 아이들과 사귀었다. 이름을 말하고, 어디에 사는지 알려주고, 공기는 죽지 않고 몇 년을 갈 수 있는지, 고무줄은 어느 높이까지 올라가는지. 10년을 채 살지 못하며 어린이로 자라고 있던 그 시절의 취향과 능력이란 대체로 그런 것들이었다. 아홉 살의 프레이저는 골목대장이었고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도 무리에 끼워줄 수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꼭꼭 묻어두기로 한 그날, 고든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고든의 이야기는 타임캡슐에 묻힌 장난감 소방차, 어금니, 집 나간 강아지의 목줄처럼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시간에 가둬 두었는데도 왜 소중한 것들은 항상 잊혀질까?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기억 나지도 않을 만큼 매일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조각난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 보아도 프레이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알지 못했던 둘만의 시간들을 꺼내어 보고, 폐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이 10년이 흘렀다. 골목대장 아홉 살 꼬마는 반항기 가득한 열아홉 소년이 되었고, 죄책감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스물 아홉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나쁜 자석이 끌어당기는 곳에서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 지난 시간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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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를 맞으며 프레이저는 서럽게 울었다. 흩어진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붙여보며 프레이저가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내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이어 붙이면 알 수 있을까. 지워버린 내 상처와 미처 지우지 못한 나의 잘못들을 꺼내어 이리저리 비춰보면 다가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두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아팠으려나. 함께 울음을 터뜨린 나는 꽃비처럼 작게 부서진 마음들을 그러모아 작은 두 손에 쥐여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 함께 묻었던 어금니는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고든의 이야기를, 프레이저 너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냐고. 시간에 가두었던 소중한 것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 새롭게 기억되는 것처럼 고든의 이야기도 다시 기억될 테니, 잊혀지지 않도록 붙잡은 그 시간에서 이젠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그러니 이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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