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그들 각자의 날갯짓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져 세상을 등진 친구 앨빈을 위해, 어린 시절 약속대로 송덕문을 작성하는 토마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평생이 채 10년도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만난 토마스와 앨빈의 추억을 기억 속 책장에서 하나둘 꺼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억에 갇혀버린 유년 시절의 우정
인생에서의 ‘첫 친구’는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부모님의 관계 속에서 알게 된 또래 아이들, 혹은 앞집이나 옆집에 사는 이웃, 아니면 처음 등록한 유치원 동기들처럼. 가치관이나 성격, 배경이나 조건 등의 공통점을 찾고 친구가 되는 성년들과 다르게 유년 시절의 친구들은 인생에서 가장 편견 없이 마음을 열었던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가족처럼 편하고 고향 같은 느낌을 준다. ‘가족’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허물마저도 감싸주듯 ‘친구’이기 때문에 나를 안아주는 따뜻함. 톰과 앨빈도 그렇게 처음 만났다.
경험했던 것보다 새로운 것을 더 많이 함께하게 된 두 사람은 세상을 배우면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앨빈과 톰처럼 아주 어린 시절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가장 가까이 지내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장례식을 가보았고, 영화를 보며 더 큰 세상을 꿈꾸고, 어른들의 세상을 동경하던 시절.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지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그 시절의 우정은 ‘추억’이 되는데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니고 작가가 된 토마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우정과 앨빈은 지금까지 지속하였지만 톰에겐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나비효과, 그들 각자의 날갯짓
영화와 관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는 청소년기에 비디오를 많이 봤던 시절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평생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다섯 편이 채 안 되는데, 중학생 때 잠시 우리 집에서 지냈던 날라리 사촌오빠는 시간을 때우려고 많은 비디오를 빌려왔었다. 그때 함께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내가 본 영화들의 제목을 정리하고 간단한 감상을 쓰던 것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그 날라리 사촌오빠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고 영화일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토마스도 자신이 글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이 앨빈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청소년기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아이 같은 순수함과 평범함에서 벗어난 4차원적인 행동을 했던 앨빈은 톰에게 자기 생각을 늘 들려주었다. 천천히 물드는 꽃잎처럼 앨빈에게 물이 든 토마스는 앨빈과 자신이 공유한 수천 개의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어 글을 쓰게 됐다.
사람이든 생명이든 그들 각자의 날갯짓은 주변을 변화시킨다. 토마스의 기억에 저장된 많은 이야기를 꺼내며 토마스의 이야기,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 등을 보여주는 이 공연은 그들 각자의 날갯짓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내 친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
앨빈의 작은 날개는 토마스를 작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토마스의 날개는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에게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토마스는 앨빈을 귀찮게 여기고 끝내는 무시하고 앨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늘 그리워하던 엄마의 곁으로 떠난 앨빈을 추억하며, 앨빈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토마스는 자신의 기억을 찾았으나 그 이야기는 곧 앨빈이 아닌 톰의 이야기였다. 친구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에, 앨빈 캘비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뮤지컬의 제목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인 것이다.
톰의 기억 속 수많은 기억은 앨빈과 공유된다.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때의 순간, 시간과 공기와 모습까지 모두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쌓여 그들의 인생이, 결국은 삶이 된다. 자신의 삶을 공유했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친구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이야기하는 뮤지컬. 누군가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듯한 따뜻하고 포근한 공연이었다.
201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