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혜아가 사라졌다.
소설 <메이데이 메이데이> 브런치 ver.
<메이데이 메이데이>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우수 출판 콘텐츠'로 당선되었던 소설입니다.
※ 메이데이 메이데이(MAYDAY MAYDAY)는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추락할 때 사용되는 국제 조난 신호로, ‘나를 도우러 와줘’라는 프랑스말 Venez m’aide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을 잃게 되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잃게 된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 일레인 아론, <섬세한 사람에게 해주는 상담실 안 이야기> 중에서.
남자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안절부절 못해 하며 반복해서 울리는 신호음만을 듣고 있다.
'제발 좀 받아. 제발...'
전화기에서 울리는 신호음의 반복을 끊기에는 남자의 바람은 힘이 없었다.
혜아가 사라졌다.
그날 밤 이후, 그녀는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사라졌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내 전화는 신호만 갈 뿐 받질 않았다. 나는 신호음 소리를 들으며, 어느 날 본 공중전화 박스 안에 축 하고 떨구어져 있던 수화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이해해주고 좋아해줄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으로 살던 나에게 한줄기 빛처럼 나타나 미소 짓게 해줬던 혜아. 그런 혜아가 나의 세상을 넘어 그녀의 세상에서조차 사라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혜아와 같이 있었던 그날 밤,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던 그 순간, 나에게 목이 마르다며 음료수를 갖다 달라고 했었을 때, 베란다 창 밖을 보고 있었던 그때,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혜아는 사라지기로 결심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방 안에 여자가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며 속삭이듯 묻는다.
“민준씨, 자기는 꿈이 뭐였어?”
“꿈?”
“응, 너무 멋있는 그런 꿈 말고, 좀 허무맹랑해서 그냥 꿈만 꾸는 그런 꿈.”
여자는 그날 밤 처음으로 남자에게 자기라는 호칭을 썼다. 자기라는 호칭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와 남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자기는 그런 거 있어?”
“난 어렸을 때부터 꾸던 꿈이 있었어.”
“뭔데?”
“음... 뭐냐 하면, 내가 매력적이고 유능한 기자가 되는 거야.”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
“아니, 기자가 되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거지. 그가 묵고 있는 호텔 24층 스위트룸에서 단 둘이서만.”
남자는 갸우뚱 고개를 움직이며 말한다.
“그렇게 인터뷰 따기가 쉽나?”
“어렵지. 그래서 난 엄청 매력 있는 기자여야 해.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거지.”
“그냥 좀 그런데.”
“들어봐봐. 아직 난 내 꿈에 관해 말하지 않았거든.”
“매력 있는 기자가 되서 좋아하는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게 꿈이라는 거 아니였어?”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한 수단이지, 그게 꿈은 아니야.”
“그럼 꿈이 뭔데?”
“내가 정말 바라는 꿈이 뭔가 하면, 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다 해주고,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거야. 이야기 못하고 꺼내지 못하는 것들까지 다. 그러고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는 유일한 서로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거야.”
여자는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자의 눈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나서 나는 바람을 쐬러 베란다 쪽으로 가서 베란다에 기대어 그를 볼 거야. 그도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나도 그에게 미소를 지어 줄거야. 그러고는 그가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순식간에 베란다 난간 아래로 뛰어내릴 거야.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가 어떻게 해볼 수 없게.”
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9시 48분
혜아 사라짐 사건 발생 당일 밤
한 남자가 까만 색 차를 운전해 혜아가 사는 집 앞 주차장에차를 세우고 그녀의 집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베란다 쪽 창문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 뒤로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자 남자는 핸들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더 힘을 주어 꽈악 쥔다.
혜아가 보이는 창문 안은 불이 꺼져 있고 창 안으로 들어가는 달빛은 커튼에 가려져 혜아와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미간에 힘이 들어간 채로 혜아가 보이는 창 안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다. 차 안의 시계는 9: 48 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