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금 이곳에 와 있게 해준 사람

소설 <메이데이 메이데이> 브런치 ver.

by 연남동 심리카페

<메이데이 메이데이>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우수 출판 콘텐츠'로 당선되었던 소설입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MAYDAY MAYDAY)는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추락할 때 사용되는 국제 조난 신호로, ‘나를 도우러 와줘’라는 프랑스말 Venez m’aide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혜아 사라짐 사건 발생 5 개월 전



S대학 아동학과 대학원 면접 대기실 복도. 그날, 그 장소에서 나는 혜아를 처음 보았다.


“저, 여기에서 기다리면 되나요?”


고개를 돌려 보니 단정한 복장과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한 여자가 빛이 나는 밝은 모습으로 날 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늘 대학원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었다.


“네, 이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세요.”


혜아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왜였을까? 교수님이 이 사람을 뽑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동상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자 교수님 방 조교였고, 혜아는 우리 파트 석사 과정에 지원한 지원자였다.


나는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혜아의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갔다. 별생각 없이 맡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시간이 조심조심 움직이게 되는 순간이 되었다. 면접 시험장 진행을 맡고 있던 아이가 다음 면접자 번호를 부르자 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아가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교수님 중 한 분이 혜아에게 질문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지원하기 전 사이의 시간에 대해 적혀 있는 내용이 없는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혜아는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고 좋게 만드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네, 이력서 상에는 경력 단절녀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저는 미대를 졸업하고 계속 화가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화가로 활동하면서 저와 비슷하게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섬세한 성격에 관해 알게 되었을 때가 제가 가장 아프고 힘든 때였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그날 무언가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도 섬세한 성격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자네 혹시 우리 학교에 센서티브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알고 있나?”


혜아는 미소 지으며 말을 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책으로 인해 지금 제가 이곳에 이렇게 와 있는 것인 걸요.”


혜아에게 질문을 했던 교수님이 혜아를 한번 더 눈여겨 보고는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는 다음 지원자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혜아와 특별히 가까워진 것은 햇살이 좋았던 어느 봄날의 학교 벤치에서였다.


그날 혜아는 무릎까지 오는 오렌지색 플레어스커트에 흰색 플리츠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팔목에 차고 있는 팔찌는 푸른 잎사귀처럼 봄바람에 살랑이며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라임색 운동화는 혜아의 가늘고 하얀 발목과 너무 잘 어울렸다.


“무슨 책을 그렇게 읽고 있니?”


혜아는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었나요?》라는 책이에요.”


나는 잠깐 책을 달라고 하고 책을 건네받아 천천히 책 안을 넘기며 말했다.


"오랜만에 보네."
"선배도 이 책 아세요?"
"응,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봤었어. 그리고 난 은석이 형도 아는데."
"은석이 형이요? 이 책에 나오는 은석이요? 정말요?


혜아는 눈이 똥그라져서 말했다.


"응, 아는 사이였어."


혜아가 아니었다면 내가 은석이 형을 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숨길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내가 먼저 꺼내서 말할 마음 또한 없었다. 하지만 혜아에게는 그런 경계심이 사라진다. 그게 난 너무 신기했다.






어떤 이들은 집에 가면 완전히 왕 노릇을 한다고 한다. 정말 마음이 편하고,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당당하단 말이다. 귀한 자식으로서. 나는 어떠한가? 애초에 민감하고 음침하며 소심한 존재로 태어나서는 무뚝뚝한, 집에도 거의 없었던 아버지와 히스테릭한 어머니 밑에서 그야말로 한 순간도 눈치 보지 않는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눈치를 보며 감정을 속이는 법을 배웠다.

▐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었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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