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더 갈 곳 없게 만드는 사람들

소설 <메이데이 메이데이> 브런치 ver.

by 연남동 심리카페

<메이데이 메이데이>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우수 출판 콘텐츠'로 당선되었던 소설입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MAYDAY MAYDAY)는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추락할 때 사용되는 국제 조난 신호로, ‘나를 도우러 와줘’라는 프랑스말 Venez m’aide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혀서 숨이 막혀. 내가 너무 별 볼 일 없고 한심해 보여. 소리 내지 못한 비명, 꿈을 꾸는 밤. 더 나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낙오자의 거리에서 왔어. 나 자신을 믿고 어두웠던 나날을 헤쳐서 왔어. 나는 낙오자의 거리에서 왔어. 먼 길을 돌아 드디어 도착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봐.

딱딱한 땅에 쓰러지기도 했어. 조그마한 약과 하얀 가운. 나는 이 운명과 함께할 수 없었어. 나와 함께 이 장소에서 도망치자.

▐ Sekai no owari, <Dropout> 중에서



2000년 5월 25일 목요일

혜아 사라짐 사건 14년 전 신문 기사




이은석 씨는 당시 집안에 있던 양주 5~6잔을 마셨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만취 상태도 아니었으며 그날 부모를 살해할 만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신 병력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밤 경찰청 범죄심리분석 자문위 과천경찰서에서는 5시간 동안 이 씨에 대한 심리분석을 실시했다. 분석팀은 『이 씨가 근본적으로 공격적 성격은 아니라』며 『극심한 우울증에, 강한 현실 도피적 욕구가 불붙어 저지른 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서울의대 신** 교수는 『이 씨가 IQ가 130 이상으로 상위 2.5%에 드는 아주 뛰어난 지능』이라며 『그런데도 이 씨가 「난 K대도 간신히 들어갔다」고 말해온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그림을 통한 심리검사에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심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유** 교수는 『소심하고 사회성이 적은 데다 공격성을 평소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분노가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이** 과장은 『범인은 심한 분노를 억압하고 있고 자존심이 매우 낮은 상태로, 성격적으로는 수동·공격적(passive-aggressive)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범행 후 3일간 집에서 진공상태처럼 그냥 지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경찰에서 『아버지가 「명문대 가라. 못난 ×」이라며 중학교 때까지 엄청 많이 때렸고, 어머니도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하며 도시락마저 챙겨주지 않은 적이 많았다』며 『부모가 아니라 내 인생을 가로막고 망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이** 교수는 『최근 중·고·대학생 환자들을 진료해보면 「죽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할 정도로 부모를 증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경우, 증오 정도가 더욱 심하며 어린 시절 야단맞은 것을 액면 그대로 마음에 품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일수록 스트레스를 밖에서 풀지 못하고 부모에게 분풀이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은솔 기자.




그날, 우리는 은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혜아가 사라지고 나자 나는 그날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전문가라고 불리어지는 사람들 중에는 해로운 이해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있어. 섬세한 성격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런 이해를 접해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 낮은 성향과 성격으로 인해 섬세한 성격의 사람들을 더 위험에 빠뜨리지.”
“그래도 전문가이면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혜아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혜아야, 바로 그런 생각이 섬세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더 위험에 빠뜨린다는 거야.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도 너와 나와 같은 섬세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깐.”
“그러게요. 얼마 전에 그 사람이 낸 책을 서점에서 보게 되었는데, 둔하게 살아라. 행복한 독종 뭐 이런 제목들이었어요.”
“둔하게 살아라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섬세함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그닥 해당사항이 없는 말인 것 같네. 섬세한 성격의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에 따라 은석이 형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 난 지금도 은석이 형 생각하면 안타깝고 안쓰러워.”



2000년 5월 21일 일요일

방에 있던 망치를 들고 어머니가 자는 방으로 들어섰다.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한 번 쳤다. 그리고 그냥 확인도 않고 방문을 닫고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망치를 손에 든 채 약 네 시간 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위스키를 두 모금 마시고,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으로 가서 세 번 가겼다. 때는 아침 9시경. 그 후 11시 30분경까지 마루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훈구,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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