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사람에게 해주는 심리카페 안 이야기> 브런치 ver.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잘 다칠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한숨 섞인 푸념으로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여기의 이 글이 당신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여정의 시작이 되어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을 잘 설명해 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선천적으로 20% 정도의 사람들이 갖고 태어난다는 'highly sensitive person' 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에서는 이 용어를 '예민한, 민감한, 까다로운' 등의 표현으로 번역해서 사용되고 있는데, 저는 이 용어를 '섬세한 성격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세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할게요.)
우선은, 제목에서 적은 문장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드릴게요.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잘 다칠까?'
이 문장을 한번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까요?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잘 다칠까?
'왜...'
- 이유, 원인, 그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죠.
'나는 이렇게'
- 이렇게, 이 정도로,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 남들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크고 깊게 반응을 하고 있음을 담고 있죠. 그리고 그것도 단지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그러고 있음을 가늠해 볼 수도 있죠.
'마음을 잘 다칠까?'
- '다치다'라는 뜻은 '외부의 무언가와 부딪치거나 무언가에 의해 맞아서 상처를 입는 것'을 의미하죠. 기본 전제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말합니다. 내 의지와 선택의 영역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잘'이라는 말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크다는 것을 담고 있죠.
한숨 섞인 푸념으로 했었을 수 있는 이 생각은 '섬세한 성격'이라는 선천적으로 20% 정도의 사람들이 갖고 태어난 성격에 대한 설명을 통해 충분한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당신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해주는 삶을 찾고 만들어갈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 삶에서는 제목의 말이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왜... 굳이 그렇게 마음을 다치고 있었을까?'
제 심리카페에 오셨던 많은 분들 중, 섬세한 분을 지치고 힘들고 혼자이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방법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을 방법은 어떻게 되는데요?" 분석과 방법에만 치우쳐져 있고 매몰되어 있는 모습에서는 섬세한 성격에 대한 이해를 갖기가 힘듭니다. 누군가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 설명과 설득, 호소와 부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성격에 대한 이해는,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잘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와 논쟁을 하거나 상대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상황, 상황들에서 분별을 하고, 분별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함으로 섬세한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앞으로의 삶이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잘 다칠까?'에서 '왜... 굳이 그렇게 마음을 다치고 있었을까?'로 변해가게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고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