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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길을 잃다(1)

by 호모워커스

길을 걷다가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거나 아는 길이라도 착각을 해서 헤맬 때다.


내가 길을 잃어버린 경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88년 6월 지리산에서였다. 20대 초반이었고 수차례 지리산을 종주한 경험이 있어서 몸과 마음에 자신감이 가득 차있어서 자신만만한 지리산이었다.


그 해 6월에 다니던 직장에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해고당했다. 몸과 마음이 붕괴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지리산. 어쩌면 지리산이 하나의 도피처였을지도 모르겠다. 배낭과 코펠, 버너 등 기본적인 장비만 챙겨서 도망치듯 그 도시를 빠져나갔다.


구례역에 도착하여 화엄사에서부터 올라가서 노고단 산장에서 1박을 했다. 그때는 산장예약이 필요 없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는지라 저녁밥을 대충 지어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밖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장 안에는 대여섯 명 정도의 등산객이 있었는데 다들 그냥 하산하려는 분위기였다.


이 비가 그 해 첫 장맛비였다. 그때가 6월 하순이었으니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된 것이다. 도망치듯 급하게 오다 보니 날씨도 살펴보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우비를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우중산행은 이미 몇 번 경험해 봤다. 무더운 날씨보다 오히려 운치 있는 산행이 될 터이다. 목표는 당연히 천왕봉.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장터목까지는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체력과 경험이 있지 않은가...


마음을 굳게 먹고 산장을 나섰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노고단을 올랐다. 하지만 비바람은 예상보다 거셌다. 우비가 바람에 퍼덕이면서 신발은 금세 젖었고 안경 속까지 들이치는 비와 짙은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이미 산길은 작은 계곡이 되어 있었다. 산장에서 같이 묵었던 사람들이 왜 하산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계속 걸었다.


어느덧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다. 근데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더라? 잠시 헛갈렸다. 안내판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안개 속에 숨어있어서 못 찾겠다. 저 멀리 뭔가 탑 같은 게 희미하게 보인다. 가보자. 저기가 노고단이겠지. 겨우 길을 찾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워낙 비바람이 거세다 보니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우 도착해 보니 방송국 송전탑이었다. 지리산 노고단을 몇 번이나 와봤지만 주변에 이런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짙은 안갯속에서 철탑만 살짝 보이는 송전탑은 기괴하고 섬찟했다.


어이없고 허탈했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다. 이 근처에서 길을 잘 찾으면 능선길을 만날 것 같았다.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노고단 근처이기 때문에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샛길이 하나 보인다. 이 길로 조금만 가면 종주 길이 나올 것이다. 괜히 고생 말고 이 길로 가보자.


여기서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샛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나는 의심 없이 부지런히 걸었다. 산길에서는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리본이 훌륭한 길동무다. 그 길에도 군데군데 리본이 걸려있었기에 마음을 놓고 리본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리본은 보이지 않았고 길은 갈수록 희미해지거나 갈림길이 나오면 헷갈리기 시작했다.


리본이 안 보이면 그다음 친구는 등산객이 남긴 쓰레기다. 사탕 비닐, 초콜릿 포장지, 담배꽁초라도 보이면 마음이 놓인다. 다행히 그러한 흔적이 있다. 비바람은 여전히 걸음을 방해하고 산 안개는 계속 앞을 가로막지만 나는 조금의 갈등과 의심 없이 계속 걸었다.


이 길은 분명히 산길이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고 길이 나있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걷기 어려워진다. 갈수록 산죽이 무성하여 길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이제 비와 바람과 안개와 산죽과의 싸움이 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지 모르겠다.


이제 지친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객이 있으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온 길이 아까워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행히 큰 바위 아래에 비를 피할 만한 작은 공간이 보인다. 비집고 들어간다. 지쳤다. 더 걷기 힘들다. 젖은 배낭 속에서 초콜릿과 양갱, 사탕을 꺼내 먹었다.


지도를 펼쳐봤으나 여기가 어딘지 알 도리가 없다. 이미 시간은 12시에 가까워졌다. 아침 8시에 출발했으니 4시간을 헤매었다. 제대로 왔으면 연하천 부근이어야 했지만 돼지령도, 임걸령도, 노루목도, 삼도봉도 지나온 기억이 없다. 도대체 난 4시간 동안 어디에서 헤매고 있단 말인가.


한 동안 그냥 누워있다가 그냥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장맛비에 종주는 어렵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려가자. 이 길로 내려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겠지. 많이 내려왔으니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될 것이야.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길은 길이지만 길이 아니었다. 심마니들이 다니는 길인가? 빨치산이 다니던 길인가? 지그재그로 무한 반복되는 희미한 길. 어느 순간 그 길마저도 사라지고 무너진 돌무더기로 가득 찬 너덜길이 나오거나 계곡길이 나오기도 했다.


점점 무서워졌다. 산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때 느꼈다. 산에서 조난을 당해서 심하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신문 기사도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 다치기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나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더 무서워졌다. 혹시 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은 분들의 유골을 보거나 산 짐승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더해졌다.


무조건 내려갔다. 계곡을 만나면 그냥 계곡을 더듬고 내려갔고, 큰 바위를 만나면 그 옆 길로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갔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멍이 들거나 까지기도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려올수록 비는 조금씩 약해졌고 바람도 점점 잦아졌다. 다시 희미하게 나있는 산길을 찾을 수 있었고 담뱃갑도 발견했다. 바랜 담뱃갑에는 환희,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당시에 이미 단종된 담배였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무렵. 저 멀리에 집 같은 게 보인다. 나무로 엉기성기 만든 움막집이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양봉을 하는 곳 같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길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조금만 더 힘내자. 계속 걷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사람이 이렇게 반가운 존재로구나. 나는 너무 반가웠고 그분은 깜짝 놀랐다. 길도 없는 곳인데 어디서 오는 사람인지...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어봤다. 여기서 얼마나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나요? 이 길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기운이 솟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하지만 그 조금만이 지금까지 내려온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길은 여전히 계곡길, 바윗길, 너덜길, 물길이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에서야 마을이 나왔다. 그 마을이 심원마을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알려진 오지마을이다. 지금은 지리산 보전을 위해서 사라진 마을이라고 한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이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우두커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버스가 있을까요? 오늘 버스는 끊겼을 거예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네. 지리산 등산하다가 어쩌다 보니 이리로 내려왔네요. 저도 지리산에 놀려왔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오늘 묵을 곳은 있나요? 아뇨. 이제 알아봐야죠. 그러면 제가 묵는 곳에서 같이 지낼래요? 혼자라서 적적했는데. 그래도 될까요? 고맙습니다.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그분이 만들어 주신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서 저녁식사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저는 6.25 때 지리산에 와 본 후 처음입니다. 예? 6.25 전쟁이요? 네. 6.25 때 빨치산 토벌대였어요. 그때 진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리산이 많이 변했네요. 아, 그러셨군요...


다음 날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 하루에 두세 번 있을 것 같은 시골 버스는 언제 오실지 기약이 없고 대신 한국통신 차가 보였다. 공중전화를 고치고 있는 기사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나가시는 길에 저도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냥 시외버스 탈 수 있는 곳이면 돼요. 아, 그러면 인월로 가면 되겠네요. 저희도 인월로 가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 차를 얻어 타고 인월까지 왔고 여전히 안개에 가려져 있는 지리산과 작별을 해야 했다.


아, 지리산이시여. 나를 이렇게 내치시나이까... 산에서 너무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거라. 그때가 되면 다시 오너라.


하지만 그 뒤에 나는 지리산에서 또다시 길을 잃었다. 그것도 아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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