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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밥이 되다 를 읽고

by 호모워커스

책을 읽었다. 김혜형 작가의 '꽃이 밥이 되다'


반가운 책이다.


귀농한 지인과 친구가 제법 많다. 한 때는 나도 귀농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행할 용기가 없었고 지금은 엄두도 못 내지만 귀농한 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정의득도 그런 친구 중에 하나다. 작년 여름에 지리산 가는 길에 그의 집에서 하루 묵었을 때, 그가 도시를 떠나 곡성으로 귀농하게 된 개인사를 미처 듣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또한 작년 가을, 그가 지은 유기농 쌀을 살 때 왜 쌀값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고 고민을 많이 하는지 그 속내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곧고 단호한 심성만큼 그의 땀이 베여있는 쌀에도 그런 심성이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숙연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벼농사의 전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세밀화이다. 봄에 모내기하고 가을이면 수확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논농사가 자연의 변화를 따져가면서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는지 알려준다. 유기농 방식으로 한알의 벼를 만들기 위해 농부는 또 얼마나 많을 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는지 그 공정을 세세하게 서술한 유기농 벼농사 매뉴얼이다. 밥 한 공기를 얻기 위해서 농부가 얼마나 많은 노동과 고된 과정을 거치는지 알게 되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었다 폈다를 무한 반복하면서 논물에 발을 담그고 살아야 하는 유기농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나랑 안 맞아서"라고 말한다. 농사 과정에서 만나는 왕우렁이, 풍년새우, 투구새우, 청둥오리, 하물며 멧돼지, 거머리 등과도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과는 달리 이들과 공생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해야 하는 유기농의 과정이 짠하게 전해진다.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따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유기농이 내가 추구하는 수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이 강의하고 문제 푸는 방법을 보여주는 관행적인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좋은 학습 태도를 기르고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깊이 생각하는 태도를 익히는 거다.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선생인 내가 개입하면 빨리 문제를 풀 수 있겠지만 결국 쭉쟁이가 될 뿐이다.


유기농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풀과 싸우려면 부지런해야 하듯이 기존 수업 관행을 벗어나는 수업 하려면 부지런히 연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이런 점도 유기농과 비슷하다.


밥상머리에서 그가 말한다.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는 중대한 결정 하나가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된 거야." 끄덕이며 웃었다. "나랑 같네." 힘들기는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인생 어느 때보다 지금이 좋다.


이 대목에서 이 부부가 도란도란 아름답게 나이 먹어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한 톨의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걸 바라보듯이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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