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는 상투적인 말 대신 괜찮은 말이 없을까.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생각해 본 건, 웃기게도 위로해야 할 거 같았던 친구라던가 가족 앞에서가 아니라 초면인 연예인을 우연히 만났을 때다.
살면서 두세 번쯤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연예인을 만난 적이 있다. 영화제에 갔다가 GV(게스트와의 만남) 이후 건물 바깥에 있는데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나왔을 때, 신사동에서 우동을 먹고 있는데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식당에 들어왔을 때, 해방촌 카페에 앉아 있는데 마찬가지로 내가 본 드라마의 배우가 들어와 옆 자리에 앉았을 때가 그때다.
이야기에 앞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그렇게 알게 된 배우들에 대한 일말의 팬심 같은 게 있다.그러니까, 말을 걸고 싶었고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앞의 세 번 중 딱 한 번 말을 걸어봤다. 영화제 때는 배우가 바로 차에 타기도 했거니와 당황해서 얼어붙은 사이 차가 떠났고, 두 번째는 조용히 식사하고 싶은 듯한데 방해하지 않는 게 매너 같아 식사 이후 내가 조용히 떠났다. 세 번째는 그의 입장에서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을 상황인 것 같았지만 아는 척은 하고 싶은 마음에 카페를 떠날 때서야 용기를 내어 봤다.
사실은 옆 자리에 몇 시간을 앉아 있으며본의 아니게 그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버렸다. 아니, 몇 문장 정도.화려한 삶인 것 같아 보여도 그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지라 응원의 선물 같은 걸 건네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연예인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쪽지나 간식 같은 걸 건넸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아, 나한텐 초콜릿이 없네. 주변에 초콜릿을 살 만한 편의점도 슈퍼마켓도 없고. 맨몸으로 부딪치자!무슨 말을 하지?
상투적인 느낌에 힘내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대화할 때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생각에 진지하게 고민한 이 사태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내가 낯선 사람 앞에 엄청나게 긴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당신들은 알고 있다는 핑계로 용서를 구하며, 이 고민의 결과만은 당신들에게도 분명 닿을 거라 믿으며 생각해 본다. 힘내라는 말 대신 건넬 수 있는 위로를.
힘내라는 말은 폭력적이라는 식의 생각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힘을 내기를 강요한다던가, 부담을 준다던가. 따뜻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투박한 말이라 해서 무책임하게 던지고 마는 말은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아니, 아닐 수도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만큼이나 쉬운 말이라 그 뜻이 흐려진 걸까. 나 역시 위로하고 싶은 순간에는 힘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힘들 때 들었을 때 사실 고마우면서도 그리 힘이 나지 않는 것도 같다. 나야말로 마음이 무너져 있는 언젠가 들었을 때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나는 줄 알아?'라고 해버릴 것만 같기도 하다. 마음을 담았는데 폭력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가혹하지만, 습관 같은 말이란 노력 없는 관성을 담고 있기도 하니까.
대신 내가 선택한 말이싱겁게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OOO 배우님 맞으시죠? 응원해요.
모르는 척 앉아 있다 나가는 순간에 조용히 말을 건넸더니 함께 있던 일행이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그녀의 친구를 알아보는 게 기뻤는지 얼굴에 화색이 돈다. 티가 났을지 모르겠지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기에 더 긴장했는지 그녀가 출연한 최근 시리즈를 잘 봤노라고도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묻지 않아 알 길은 없지만 모자 아래 그늘에 있던 배우에게 카페 옆 자리 손님의 몇 마디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긴 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한 말 치고 참 무난하기도 한 위로였는데.
고민의 과정은 이렇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고 할까. 오늘도 행복하라는 말이 오히려 매일 행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그러면 오늘은 좋은 하루 보내세요, 도 말자. 시비 거는 것 같다.
고민 끝에 '응원한다'는 표현에 닿았다. 힘을 내라는 건 당신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 응원한다는 말은 내가 뒤에 있다는 말. 당신이 힘을 내라는 게 아닌당신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이 가 닿기를바랐다.
초콜릿이나 편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당신들이 힘든 순간에 내 가방에 초콜릿이 있을 거라 자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응원한다는 말은 당신이 지금 당장 힘을 낼 수 없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지지하겠다는 말이다.비록 이런 마음까지 모두 전할 수는 없을지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