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가보는 유럽 한달 여행

호미의 유럽 여행 #1

by 호미

지금부터 쓰게 되는 글은 2025년 가을에 한 달 동안 유럽 네 나라를 여행하고 온 기행문이 되시겠다. 원고의 초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여행 막바지 독일에서였지만 원고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수정을 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해가 바뀌어 2026년 2월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원고가 완성되진 않을 것이니, 시점이 계속 변하는 것이 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가령, 2025년에는 '29년 전'이라고 썼던 것을, 해가 바뀌어 '30년 전'으로 고쳐 썼다. 이 원고가 1년 안에 완성이 안된다면 '31년 전'으로 바꿔야 하는 건가) 가급적 이런 혼란은 없도록 해가 가기 전에 원고를 완성하려고 하고, 왠만하면 '몇년 전'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유럽을 좋아한다. 너무 멀어서 쉽게 갈 수 없어서 그렇지, 여행을 가려고 하면 1순위는 언제나 유럽이었다. 잘 사는 나라들이 많아 어딜 가도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역사와 문화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다른 나라들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들이 세운 나라들은 오랫동안 번영했고, 찬란한 문화를 남겼으며,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역사에 새겼다. 세계사를 공부할 때마다 배우게 되는 그들이 남긴 업적이 부러웠고, 그들의 세련됨이 늘 부러웠으며, 축구를 잘하는 것도 덤으로 부러웠다.

1995년, 우리나라에서 해외 여행 자유화가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대학생들의 해외 배낭여행 붐이 일어났다. 1996년에 그 분위기를 타고 나도 혼자 한달 동안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땐 여행을 정말 가고 싶어서 갔다기 보다는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소중한 시간에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한 거였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라 마냥 어린아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지만 아직 혼자 여행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나이였다.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고 돈도 충분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리 용감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러네.) 도착 첫날부터 실수와 사고의 연속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은 코미디가 되어갔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휴가를 내어 일주일짜리 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온 적은 몇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29년만에 처음으로 한달이 넘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건 정말 오랫동안 꿈꾸었던 거다. 여행에 대한 나의 솔직한 생각을 묻는다면 아마도 '반반'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여행을 다녀 와서 돌이켜 볼 땐 여행 하길 참 잘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준비하는 걸 귀찮아 하며 멀리 나가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고, 여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행복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이나 유럽에 가려고 한 이유가 뭐였을까?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언제나 '배낭여행 갔을 때'였다. 그렇게 모든게 서툴렀는데도 왜 그리 행복했냐고? 말했잖은가. 태어나 혼자서 처음 떠난 여행이었다고. 온전히 내 자유 의지로 세상 밖으로 나온, 내 생애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여러 가지 상황과 우연이 많이 겹치긴 했져만 이런 여행이 기획된 것은 결국 나와 와이프의 의지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올해 10월 4일, 덴마크에 살고 계신, 와이프와 친한 선배가 로마에서 결혼식을 한다. 그리고, 10월 20일에서 24일까지 와이프가 독일 오스나브루크 대학교에서 특강을 한다. 10월 4일 로마와 10월 20~24일 오스나브루크 일정이 픽스되면서 자연스럽게 10월 4일에서 10월 20일 사이에 유럽을 여행하는 계획이 정해졌다. 거기에 추석 특수를 피하기 위해 출국을 조금 앞당겨 9월 23일에 출국을 하기로 했고, 와이프의 특강이 끝난 뒤 그냥 돌아오면 아쉬울 거 같아서 돌아오는 날짜를 조금 더 미뤘다. 유럽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여행지에 대한 무지식, 환상적인 루트를 짜 보겠다는 야심과 부족한 체력과 예산에 대한 좌절이 뒤섞여 이 도시 저 도시를 붙이고 떼고 당기고 밀기를 반복하다 결국 약간은 산으로 간 듯한 느낌이 드는 지금의 루트가 정해졌다.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 왕복이고, 크로아티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독일을 거쳐 간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 내리자마자 바로 또 비행기를 타고 크로아티아로 간다.)

2025년 9월 23일 새벽 여섯시에 와이프와 나는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공항 가는 방법은 시간에 따라 변해 왔는데 최근에 우리가 쓰는 방법은 택시를 타고 집 근처 공항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간 다음 공항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 것이다. 그 전에는 차를 몰고 공항까지 가거나, 전날 택시를 미리 예약해 가기도 했다. 둘다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인데 하이브리드 차는 공영주차장이 반값이기 때문에 3, 4일 정도의 여행이면 장기 주차를 해도 그럭저럭 돈을 낼 만했고, 택시도 세사람이 한 택시를 타는 경우엔 집 앞에서 한번에 가는 거니 좋았다. (와이프와 친구까지 셋이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렇게 했다.) 자가 운전이나 예약 택시를 썼던 건 예전엔 새벽에 예약 없이 택시를 잡는 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아침 비행기를 타려면 '탑승 두시간 전 도착 + 도착 두시간 전 출발'을 해야 해서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서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평생 아침형이랑은 거리가 먼 습관으로 살아 와서 새벽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새벽에 나와 보면 그 시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는 내용의 독백 대사가 나온다. 새벽 네 시에 충분히 택시가 잡힌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이었다.

한 달 짜리 여행이라 짐이 많았다. 대형 캐리어 두 개와 각자 배낭이 있었다. 여름 날씨와 겨울 날씨를 다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옷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특히 난 양압기까지 가지고 가야 했으니까. 와이프가 짐 욕심이 많았는데 설득해 짐을 줄이느라 좀 애를 먹었다. 캠코타워 앞에서 공항 리무진 버스 6009번을 탔다. 대한항공은 2 터미널. 프랑크푸르트 직항이었는데 어차피 프랑크푸르트에서 공항을 빠져 나오지 않고 비행기를 갈아타고 자그레브까지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직항이라고 할 순 없었다. 버스는 세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스마트패스로 게이트도 빨리 통과했다. 라운지를 미리 예약했는데 좋은 곳이었지만 2 터미널 끄트머리에 있어서 좀 멀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다가 스튜어디스에게 건네 받은 맥주가 미끄러져서 바지에 쏟는 해프닝이 있었다. 명백히 내 잘못이긴 했는데 스튜어디스가 죄송하다고 만원 짜리 쿠폰을 줬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세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탑승 시각 두 시간 전이 될 때까지 체크인 부스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살짝 긴장했었다. 뭐 같은 EU 국가이고 국내선이나 다름 없었으니 체크인을 그렇게 일찍 할 필요는 없었지만 우리는 먼 곳에서 온 여행객이잖은가. 그래도 대부분의 걱정은 결국 쓸데 없다. 크로아티아 항공은 자그레브까지 무사히 우릴 데려다 주었고 밤 늦게 도착했지만 우버를 타고 첫번째 숙박지인 리브리스 호텔에 들어오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호텔에 들어와 짐을 풀자 비로소 안심이 됐다. 드디어 무사히 왔구나. 비행기를 탈 땐 항상 긴장이 된다. 버스나 기차랑 달라서 심사, 검색 이런 걸 통과해야 하니까 어쩌면 빠꾸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항상 있다. 29년 전 비행기를 처음 탈 때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탈 뻔했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1996년에 혼자 유럽에 왔을 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경이로왔지만 이젠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걸 보면서도 그때와 달라진 내 생각을 짚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많은 여행 경험을 쌓아 나름 프로 여행러라고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삽질을 많이 해서 그걸 기록에 남기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드디어 36박의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