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문득 언제부턴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의식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었는지,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던 건지, 언제 그 울음을 멈출지는 알 수 없었다. 한밤중 불현듯 시계의 소음이 귓등에 일정한 간격으로 부싯돌을 쳐대는 것처럼 크고 또렷하게 들려오듯이. 오래된 낡은 냉장고의 웅웅 거리는 신음 소리가 이제 갈 때가 되었다는 듯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그런 밤처럼. 그러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일정한 간격의 파장을 일으키며 묘하게 나를 안정시키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신경질적으로 똑딱 거리는 시곗바늘의 걸음 소리나 내일이면 멈추고 말 것 같은 냉장고의 비명과는 달랐다. 집중을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또렷해져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까만 옷을 입은 장례식장 안의 조문 행렬처럼 부산스럽다가도, 어느덧 하나둘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아 서로가 가진 이야기보따리를 펼쳐놓았다. 그리고는 각각의 이야기 조각을 집어 들어 하나의 사건을 끼워 맞춰가기 시작하였는데, 나의 머릿속의 이야기들은 벌써 몇 개인가의 사건을 정리하고도 한참을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여름과 매미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울던 매미들은 왜 침묵하는가. 5년을 침묵하다 겨우 지상으로 올라와 한 달. 그렇게 허무하게 정말로 '비명'횡사하는 거다. 그런데 만약 아침저녁으로 울어댔으면 매미의 수명은 그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들의 열대야를 더욱 자극한 죄명으로 아마 생태계에서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한 달이나마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미는 해가 진 이후에는 침묵하는 것으로 진화의 틀을 굳혔을지도 모르겠다. 이리하여 귀뚜라미와 매미의 2교대 근무가 시작된 것인가. 울만큼 울었으니 이제는 내 차례라고 서로 그렇게 돌아가며 울기로 탕. 탕. 탕 법정에서 판결이라도 받은 것일까. 그렇다면 판사는 누구였을까.
매미는 여름이 시작되면 나타나 여름이 끝날 때면 사라진다. 언젠가 여름이 끝나려 할 때면 나는 자주, 회색 아스팔트 위에서 커다란 날개를 몸에 붙인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을 보고는 했다. 녀석이 죽었다. 이제 여름도 끝이 나려나 보다. 그렇게 잠시 안타까운 시선을 녀석에게 보내는 것으로, 나는 내 여름을 맴맴 울음소리로 더 무덥고 짜증스럽게 만들던 애증의 대상을 애도했다. 그런데 어젯밤에 나는 또 다른 '종'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곤충들도 사람들만큼이나 울 일이 많은 것 같아 애잔하다. 귀뚜라미의 소리는 8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감상할 수 있다. 가을의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아직 한참 더워 가을은 조금 더 있어야 올 것 같은 때부터 녀석은 이미 조심스럽게 옆에 다가와 자리를 잡고 울기 시작한다.
그런 녀석이 8월 7일 밤 12시 언저리부터 나타나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기후는 예전의 시간 개념과 살짝 어긋나 있는 듯하다. 매년 뉴스에서 올해의 날씨가 OO 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던가 매년 이상 기변이 점점 잦아진다던가 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욱 그러한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에 여름 방학 독후감 과제를 위한 필수 독서 목록에 '지구가 아프대요'라는 도서가 있었는데 의인화된 파란 지구별이 뭔가 병에 걸려 아픈 듯 서러운 표정을 하고 있으면 그 주변에 쓰레기가 있었던 것 같은 이미지의 표지였다. 20년도 더 지난 기억이라 사실은 지구가 울고 있었나 헷갈리지만 아무튼 그때보다 조금 더 전부터 지구는, 기후는 변하고 있었던 게 확실하다. 그래서 지금 귀뚜라미는 8월 초에도 나타나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귀뚜라미는 매미와는 다르다. 매미는 여름을, 청춘을, 짜증 나는 무더위를 느끼게 하지만 귀뚜라미는 가을을, 연륜을, 선선한 바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곤충들이 너무나 좋다. 그것은 아주 어렸던 초등학생 시절부터의 감상이다. 지금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머리 위로 맺혀 떨어지는 땀줄기를 닦으며 차가운 맥주를 즐길 수 있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 물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듣다 창문을 열고 밝게 빛나는 달을 보면서도 맥주를 마신다. 어디선가 모기향이 나면 더 좋을 것 같은 그런 밤에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더 자주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추운 겨울이 와도 내가 사랑하는 울음소리를 들려주던 녀석의 사채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 다행히 귀뚜라미는 어둡고 구석진 곳을 좋아한다. 참 다행이다. 그렇게 은막 위의 요정은 박수 칠 때 떠나 은막 뒤에서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전설로 잠드는 거다. 언젠가 내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게 되는 그런 밤에 나는 꼭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면 참 좋겠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