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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A Sep 29. 2015

길상사 드로잉 나들이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시인 백석을 아시지요?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저는 이 시를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어요.

어쩐지 기억에 남는 시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괜히 좋고, 한번 더 읽게 되는 시였지요.


최근에 길상사를 다녀왔습니다.

햇살이 너무 좋으니 바람도 쐬고 싶고 마음이 들떠서

가을에는 역시 야외스케치가 제맛이라는 핑계를 대며 나들이를 갔어요. 

길상사는 절 치고는 조금 특이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그곳을 이야기하려면 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김영한, 법정스님, 그리고 바로 시인 백석입니다.



가을 햇살 아래서 슥슥 스케치를 합니다. 극락전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스님 두분께서 차례로 오셔서 그림도 구경하시고 이런 저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백석은 함흥의 영어 교사였습니다.

게다가 훈남이었어요.

인터넷을 보니 백석님 닮은 꼴로 

허지웅, 박해일, 이기찬 등의 연예인들이 있더군요.  

(제가 봐도 이기찬 씨는 꽤 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뜨겁게 사랑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영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진향'이라는 이름의 권번기생이 된 그녀는

미인인데다 가무가 뛰어나고 시서화에 능해 인기가 많았고,

백석은 그런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데요.

'자야'라는 아명도 지어주었답니다.

그러나 둘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백석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백석을 강제 혼인시켰고,

백석은 도망쳐 먼저 서울에 와 있는 그녀와 한동안 동거를 합니다.

그 후 백석은 만주로 떠나고 둘은 영영 이별하게 됩니다.

해방 후 백석은 북한으로 돌아왔으나

서울의 영한을 볼 수가 없었지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백석,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이 김영한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영한은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열어 큰 돈을 벌었어요.

김영한은 정말 대단한 여인입니다.

3대 요정 중 한 곳인 대원각의 소유주인데다

1953년에는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다고 해요.

그리고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도 냈다니 정말 능력자죠?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받아

1987년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했습니다.

지금의 길상사가 바로 그 대원각입니다.

그리고 김영한은 길상사의 개사식에서 법정 스님으로부터 ‘길상화’라는 불명을 선물 받게 됩니다.



나무와 보살님의 모습이 참 잘 어울려서 그려봤습니다.



절이라고 하면 속세와 거리가 멀고, 산에 있는 넓은 장소가 떠오르지 않나요?

대원각은 70~90년대 요정정치의 근거지라고 합니다.

밤이면 술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공간이 

세속적인 것을 벗어난 '절'이 되었다니 극과 극이 만난 느낌이죠.

길상사를 구경하다 보면 

이런 색다른 역사의 흔적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습니다.

절 치고는 도시 안쪽에 있는데다 길이 경사가 급하고 작고 휘어져 있어요.

사연을 모르고 처음 가셔도 다른 절을 몇 번 본 경험이 있다면 

뭔가 다르다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진영각에서 참배중이신 수녀님.  진영각은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처소입니다. 법정스님의 유품과 원고, 저서가 전시되어 있어요.



길상사는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으니 벌써 5년이 지났군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법정스님은 

입적하시면서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를 소유하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하여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1993년 판은 경매에서 110만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이 관세음보살상은 조각의 거장 최종태님의 작품입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묘하게 성모마리아같기도 하죠? 



살아 생전에 종교화합을 실천하신 법정스님은 

길상사의 개사식 때 김수환 추기경과 나란히 축사를 했다고 하네요.

관세음보살상의 오른쪽에 위치한 길상 7층 보탑도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기증된 것입니다.


꽃들은 자기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는다.
매화는 매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진달래는 진달래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어날 뿐
어느 꽃에게도 비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


길상사의 곳곳에 법정스님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만나게 되는 법정 스님의 말씀은 작고 소중한 선물 같습니다. 


길상사의 본 법당인 극락전입니다. 보통 절의 대웅전 격인 공간이에요.


왜 길상사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전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스님께서 오셨을 때 물어볼걸 그랬네요. 아무래도, 이 핑계로 한번 더 가야겠습니다. :)


김영한은 큰 돈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이의 시 한 줄 값도 안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으로 1997년 백석문학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사람일은 예상할 수가 없죠.

만약 남과 북으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백석과 자야는 다시 만났을까... 생각해봅니다.



길상사의 연등. 매년 5월에 열리는 길상사의 연등축제에 가시면 이런 모습도 보실 수 있을거에요.



백석은 1995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1999년 남한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김영한은 자신의 유언대로 화장되어 첫눈이 오는 날 길상사 뒤뜰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면 자신도 시를 쓸거라 했다더군요.


길상사는 '절'인데

세속적인 사랑이야기를 품은 공간이면서 

현대 역사의 한 부분이 담긴 곳이라 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미 몇 번 갔지만 갈 때마다 새로워요.


가을 햇살이 좋은 날, 

길상사에 나들이를 가보세요.

김영한과 백석처럼 평생 가슴에 남을 이와 함께여도 좋고,

'무소유'를 실천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 ㅎㅎ

저도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가야겠습니다.

스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는 핑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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