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원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면 나는 노트북을 끌어안고 영화를 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초콜릿을 까먹는 것이 나만의 치료 레시피였다. 하루에 다섯 편 여섯 편이 넘어가도록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가 띵하지만 몸과 마음은 어김없이 나았다. 문득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까마득한 기억을 되짚어 10살 무렵을 떠올려본다. 그때 이미 반 친구들과 영화 동호회를 만들어 우리 집에서 상영을 하곤 했다. 우리 집 TV가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어 영화를 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정말 좋아했던 나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대산'이라는 소년을 짝사랑했다. 소년은 영화 다운로드하기, 비디오 빌려오기 등 중추 역할을 맡았고 나는 푹신한 이불과 취향에 맞는 간식 준비하기 그리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꼬물꼬물 한 꼬마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전영화와 공포물들을 섭렵했고 그때 봤던 영화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시절에도 이미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 취향의 기원은 좀 더 오래되고 케케묵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엔 안방에 TV가 있었다. 그 시절엔 왜 다른 집처럼 거실에 두지 않느냐고 트집을 잡았지만 그 덕분에 온 가족이 안방에 모여 TV를 보고 귤을 먹다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때 우리 집 TV엔 영화가 틀어져 있었다. 영화광인 엄마가 토요 명화극장과 명절 특선 영화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 끝에 모여 앉아 이불을 끌어안고 인디아나 존스, 007 시리즈, 타이타닉과 해리포터를 보았다. 어두운 방을 밝히는 브라운관의 빛.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 여동생의 웃음소리. 막내 동생의 옹알이. 보송하게 잘 말린 이불 냄새. 옅게 밴 엄마 냄새. 그 모든 기억은 지금까지 빛이 바래지도 않은 채 남아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 배우를 꿈꾸게 된 이유. 그것들은 우리 집 안방에 있었다. 내 어린 시간의 따뜻한 온기. 그래서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