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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별 Apr 14. 2022

도쿄 워킹홀리데이 실패기 下

도쿄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워홀을 떠나기 전 참고하기 위해 '일본 워홀 일상'류의 블로그 포스팅을 수백 개 넘게 찾아봤다.

그중에서 워홀을 포기하고 돌아온 후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워홀 합격이 정해진 후 각종 책과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봤다. 당시 바이블이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 난 해봤어』 는 필독했다. 해외 생활이지만 여전히 변화와 변수가 싫은 나는 철저히 계획하고 예측하고 간접경험을 했다. 곳곳에서 모은 '꿀팁'을 반영해 도쿄 이타바시구에 집을 구하고 짐을 보냈다. 물론 떠나기 직전까지 회화 공부도 놓지 않았다.


그렇게 2018년 4월 16일 눈물 고인 엄마의 모습을 뒤로하고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일본 워홀 생활 계획을 되뇌었다. 일본 현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 생활을 블로그에 남기고, JLPT N1을 공부해 취득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해야지. 처음으로 혼자 타 본 비행기에서 괜히 사연 있는 표정을 지으며 창가를 바라봤다. '나 이러다 책도 내는 거 아니야?'

이타바시구에 있던 셰어하우스 앞 골목

나리타 도착 후, 도쿄에 들어와 셰어하우스 계약을 했다. 이때까지 내 도쿄 생활은 특별한 일상으로 가득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가 계산을 하기 전까진.


"$%&*!!!@@@"


"하...하이...?"


"@#$!!**##"


"에...?"


이럴 수가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1년을 넘게 일본어만 끼고 살았는데. 물론 그 사람이 유독 말이 빨랐거나 발음이 뭉개졌을 가능성이 크다. 낮에는 무사히 집 계약까지 해치웠으니까. 계속 언급했다시피 예상한 상황이 틀어지는 것에 취약한 난 다음날 식음을 전폐하며 이불 속에서 굴을 팠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아 지금 난 해외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혼자고 온갖 변수에 둘러 쌓여있구나. 그래도 불법 체류(?)로 있을 순 없으니 하루가 지난 뒤 구약서에 주민등록을 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주 동안은 자유롭게 놀다가 그 한 달 안에 아르바이트를 찾자.



사실 이 뒤는 허무할 만큼 할 이야기가 없다. 집순이는 해외에서도 여전히 집순이라 딱히 돌아다닌 곳 이 없다는 것과 돈키호테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머리 벗겨진 일본 아저씨에게 말이 느리다고 무시당한 뒤 2차 충격을 받았다는 것 정도.


내가 예상 못하는 처음과 돌발상황으로 가득한 도쿄 생활은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변곡점이었다. 집 근처 시장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케이크를 사는 것도, 마트에 가격표가 안 붙어 있는 반찬을 사는 것도 나에겐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혹시나 실수해서 바보처럼 보이면 어쩌지. 외국인이라 눈에 띄면 어쩌지. 서툰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문어 머리 돈키호테 아저씨가 말이 너무 느리다며 소리를 지른 순간 한국으로 돌아갈 변명이 생겼다. 난 그날 바로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일본으로 떠난 지 두 달만에 워킹홀리데이에 실패했다.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땐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느껴졌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서툰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워킹홀리데이에 가자는 목표는 있었으나 가서 무엇을 할지 뚜렷한 다짐이나 계획이 없던 것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지만 일본 워홀을 포기하고 돌아온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단언할 수 있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공들여 한 실패였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결과를 만들고 일순에 포기하고.  아주 무모한 도전과 실패를 동시에 맛봤다.


돌다리가 무너질 때까지 두드렸던 그때의 나에겐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뭐 그리 겁이 많고 남 눈치를 보는지. 지금의 내가 간다면 '난 외국인이니까 니네들이 이해해!'란 마음으로 조금 더 뻔뻔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본의 워킹홀리데이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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