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혼둘셋 Sep 03. 2020

여자 셋이
따로 살고 있습니다

'혼자 왔습니다, 둘이 왔습니다, 셋이 왔습니다' 미션#1. 

여자 셋의 이야기입니다. 스무살에 처음 만난 여자 대학생 세 명의 15년 뒤, 그때는 같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입학과 동시에 거의 매일을 붙어다녔던 술친구 셋은 이제 누군가()는 혼자, 누군가()는 1.5인 가구의 느낌으로, 누군가()는 빼박 3인 가족을 꾸렸습니다. 여전히 만나 함께 술을 마시지만 한 개의 주제, 각기 다른 세 명의 삶을 소주 한 병의 시간에 담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세 명의 카톡방에서 누군가가 던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각의 시선으로 끄적끄적 적습니다. 혼둘셋의 프롤로그 보러가기 


오늘의 미션 주제 #1. 집 


(

서울살이 몇핸가요. 스물 한살에 서울에 상경해 16년째. (이렇게 나이가 밝혀질 뿐이고) 약 13번의 이사.  4인 1실 기숙사, 쉐어하우스, 하숙(룸메이트), 친족에게 얹혀 살기, 자취 등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주거 환경을 경험했다. 그 오랜 시간, 그 다양한 공간 속에 '내 집'은 단 한번도 없었다. 


엄마는 항상 남의 집 월세살이를 하는 나를 가엾어 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 집은 그렇게 중요한 공간이 아니었다. 내 한 몸 뉘일 곳만 있다면 그곳이 좀 누추한들 어떠하고, 좁은들 어떠하랴. 집에서 온종일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만 자면 그만인 것을. 그냥 한달에 50만원 이쪽 저쪽 월세 내고 살아가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과년한 딸의 월세살이는 부모님의 끊임없는 걱정거리였고, 나는 은행과 엄마의 도움으로 첫 전셋집을 구했다. 


처음으로 부동산이라는 곳에 가봤고, 은행 대출 상담사를 만나봤다.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집을 구했고, 나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16년의 서울살이를 담아 내지 못할 만큼 작은 집에 살고 있다. 이제 와서 '조금' 어른이 되려고 하니 이제야 '집'이라는 게 혼자이든 아니든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아 아주 가끔, 씁쓸한 기분이 든다.  


(

서른살이 되던 해 신혼집을 구했다. 신혼집의 첫번째 조건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닐 것'. 워낙 오래 산 동네라 지겨웠던 것도 있지만 엄마아빠의 칼 같은 통금, 집 코앞에서도 만나는 엄마 친구들을 피해 새로운 동네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혼생활 3년 뒤, 나는 바로 엄마아빠의 옆옆 동으로 이사왔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하게 되면서 엄마에게 아기를 편히 맡기기 위해서였다.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아기로부터 자유로운 워킹맘이 되기 위해 돌아온 셈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연필을 바짝 잡으라고 했었다. 내가 “왜?”라고 물으면 “그래야 엄마아빠랑 멀리 떨어져 살지 않고 가까이 산대”라고 했었다. 우리집만의 이상한 미신이었던 셈인데 나는 그걸 또 철썩같이 믿었다. 연필을 잡은 손이 종이와 멀어진 것 같으면 다시 바짝 잡으려고 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오래오래 옆에서 같이 살자’라는 약속을 해왔던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 딸을 낳으니 ‘나의 어린 엄마’가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의 딸에게도 ‘우리 오래오래 집 가까운 곳에서 모여 살자’라고 주입식 교육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 그런데 나는 내 자식의 자식을 봐줄 자신은 없는데 어찌하나. 


(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은 하숙집이 되었다. 잠만 자고 나오는 공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돌아가지만 막상 그 곳도 완전하게 내 공간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어떤 공간의 주인이 되는 건 살았던 시간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것 같다. 


우리집은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의 집일뿐 '내' 집은 아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것(사실 모든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은 나의 취향과 필요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오히려 엄마의 취향과 추억에 훨씬 가깝다. 집은 엄마의 공간이자 세상이나 마찬가지 니까. 


그 안에 당연하게도 나의 시간과 흔적이 담겨있지만, 온전하게 내 세상은 아니다. 그래서 낯설때가 종종있다. 안정감과 구속감을 동시에 준다. 마치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그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 늘 독립을 꿈꾸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무살에 처음 만난 우리, 그리고 15년 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