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잘 알려진 대표작입니다. 시력을 잃는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게 되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팬데믹이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보면 또 새롭게 보여지는군요. 아무튼 모두가 눈이 멀어버리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바닥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애초부터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최대한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게끔 잘 설계된 도시였다면 사회가 붕괴되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특권이란 그런 것이죠. 나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 이게 무슨 특권이냐 싶은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그로 인해 차별받고 고통받고 있고요.
2020년 11월의 마지막날에 저의 눈을 끈 뉴스는 마트에서 쫓겨난 시각장애인 안내훈련견 강아지와 자원봉사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 화가 나서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기가 죽은 강아지의 표정이 몹시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거고,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습니다. 문제의 당사자인 롯데마트는 사과문을 올렸죠.
그런데 이 뉴스가 이렇게 화제가 된 데에는 그것이 '롯데마트'였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물론 강아지의 사진이 결정적이었지만요) 롯데의 브랜드 이미지는 뭐 유니클로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해야할까요. 대기업 중 롯데가 이미지가 가장 나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요. 롯데가 악당역을 맡았으니 더욱 비난하고 욕하기 쉬운 사건이었습니다.
왜냐면, 이런 일은 너무나 이미 비일비재하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불과 한달 전에 JTBC가 보도한 '안내견의 하루'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았거든요.
비장애인이 밥 한끼를 사먹으려고 할 때 연달아서 7번이나 거절당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겁니다. 이 뉴스를 보고나서야 저는 밥 사먹을 때 쫓겨나지 않는 것도 특권이 될 수 있는걸 깨달았어요. 시각장애인과 그 안내견이 사람들의 매몰찬 인식 속에 배제당하고 차별당하는 일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인 거예요. 다만 그게 귀엽고 안쓰러운 강아지의 사진과, 롯데라는 악역이 등장해서 생긴 화학 반응으로 비로소 눈에 보이는 뉴스가 된거고요.
저는 욕을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 '개'가 붙는 욕은 특히 싫어해요. 물론 욕할 때 쓰는 접두사 '개'는 댕댕이가 아니라 '가짜'라는 의미에서 온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지만(개살구처럼) 대부분은 그런 것까지 따지지 않을 뿐더러 "개 같은"이나 "개만도 못한"처럼 명백히 댕댕이를 욕에 동원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댕댕이들에게 대단히 큰 무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어느 동물도 개만큼 인간을 위해 활약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안내견을 냉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개만큼도 못하는 사람들인걸요.
지하철에서 몇 번인가 시각 장애인과 동행하는 안내견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다행히, 시민들도 모두 인식이 좋아서, 말을 건다거나, 만지려 한다거나, 먹이를 준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저처럼 멀리서 보기만 하고 대견한 눈빛을 보냈을 뿐이죠.
이 뉴스가 일회성으로 롯데를 욕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안내견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눈 먼 자'들이 눈뜨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삼성이 한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업을 삼성에서 계속 신경써서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