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인연. FIRENZE

내 가슴속 감추고 싶은 빛나는 보석 _ ITALIA

by 봄희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로마를 거쳐 들어오긴 했지만 로마에서 워낙 짧은 일정을 보내다 보니 유럽의 첫 번째 여행지가 피렌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로 들어올 때 나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얼마 동안 머물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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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 들어온지 삼일째 되는 날. 가이드와 동행해서 피렌체 투어를 하였다. 아침 일찍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두오모에서 만남을 가진 후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 두오모, 단테의 집까지 진행되는 코스였다. 가이드의 해설을 필기까지 해가며 학교 강의를 듣듯이 열심히 들으면서 쫓아다녔다. 사진도 열심히 찍어 뒀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복습까지도 할 요량이었다. 미술관을 나오자 가이드는 가방을 주의하라는 주의를 주었다. 행여 있을 소매치기로 인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투어는 계속되었다. 두오모에 이르러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였다. 투어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두오모 안에서 15세기경 성당에서 일어난 메디치가 암살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듣고 짠한 가슴으로 두오모를 나왔다. 단테의 집으로 향하면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잡히지 않았다. 에코백 안도 확인해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가방 안이 어수선해서 못 찾는 건가 싶었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딘가에 있겠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투어가 끝나고 가방과 주머니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핸드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길을 돌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 보았다. 작은 기대를 갖고 두오모 안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핸드폰은 없었다. 뛰다시피 숙소로 돌아와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꺼져버렸다. 그렇게 구매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할부가 아직 24개월이나 남은 핸드폰은 내 손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할 때면 사람들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소매치기가 유명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럴 때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를 한다. 소매치기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흔히 주요 대상이 된다는 아이폰도 아니었고, 내가 부주의로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나의 잘못을 다른 것에 떠넘기는 것 같아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설사 소매치기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관리를 못한 나의 잘못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내가 여행을 하는데 약간의 불편함을 주었을 뿐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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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연을 믿는다. 한 번의 만남은 우연일 수 있다.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흔히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이 관계를 맺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어떤 인연이 될 수 있는지가 판가름되기 때문이다. 때론 관계만 맺고 인연으로 맺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은 사람들 간에서도 필요하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 하고도 필요하고 때론 소유할 수 없는 그 무엇과도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여행을 할 때면 언제나 나는 내가 만나게 될 도시나 마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갖곤 한다. 그렇게 그 도시를 만나고 알아가고 이해하다 보면 그 모습에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건물과 공원의 길거리와 오고 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내 눈에 낯설지 않게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관계를 맺은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이든 풍경과의 만남이든 맛있는 음식과의 만남이든 도시 안 어느 곳에서든 내 감정을 나누게 된다면 우린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도시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면 그 도시는 남들이 말하는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가 아닌 나의 시간과 추억을 함께 공유한 특별한 하나의 도시가 된다. 그것은 나만의 도시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모든 인연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랜 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인연이란 내 마음대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를 맺을 때는 서로가 필요하지만 관계를 끊을 때는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인 것이 가능해진다. 만남이 행복했던 만큼 헤어짐은 그만큼의 슬픔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저 서로의 인연이 다 된 것뿐이니까. 인연이 끝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언젠가는 꼭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다. 모든 만남은 그 시작부터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연이 다 되었다는 것은 그럴만한 연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별 앞에서 충분히 아파할 필요는 있다.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관계를 정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맺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했다면 그만큼 많이 아파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시 또 다른 인연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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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와의 모든 인연을 맺고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미 내가 맺고 있던 인연들과 한 발자국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여행을 일종의 모험이자 도피처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와 나의 핸드폰은 서로 인연이 다했던 것뿐이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의 당혹감도 상실감도 속상함도 지나 보니 별 것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은 그 순간 나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인연과 멀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나는 피렌체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피렌체와의 아쉬운 이별을 앞에 두고 비가 내리는 피렌체의 골목골목을 거닐며 정든 장소들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가 다시 이 거리 이 골목을 거닐 수 있게 기회가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여행이란 만남과 헤어짐, 관계와 인연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다. 만남은 즐겁고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기만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아쉬운 마음을 훌훌 털어본다. 베키오 다리의 어느 상점에서 삼색 꽃 펜던트를 구입하였다. 상점 여주인에만 삼색 꽃이 딸랑거리는 펜던트를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 주었다. 나와 피렌체와 그 상점 여주인과 펜던트만이 아는 기약 없는 나의 약속.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피렌체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빨갛게 물든 피렌체의 풍경을 바라보면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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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다시 보자...





<피렌체에서의 기억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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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MG0515.JPG 피렌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한 일은 단골 젤라또 가게를 찾아 크로아상 젤라또를 먹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초코초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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