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속 감추고 싶은 빛나는 보석 _ ITALIA
낯선 장소를 여행하다 보면 길을 잘못 들어서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이라면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버스를 반대 방향으로 탄 것뿐이다. 이런 일로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이니까.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니까. 애초에 계획한 나의 일정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버스를 잘못 탄 것으로 짜증내기에는 여행하는 그 순간은 그저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을 소중한 경험을 할게 될 지도 모른다. 때론 나는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어쩌면 이 순간 이 장소가 나를 부른 것은 아닐까?
내가 한국을 떠났던 것은 사실 쉬고 싶다는 핑곗거리였다.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이 없었다. 이탈리아가 물론 그 외에도 나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줬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쉼’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유럽을 찾는 이유와 달랐던 것이었을까? 내가 장소를 잘못 선택했던 것일까? 나는 한국을 떠나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조언에 나는 휘둘리고 있었다. 남들이 여행하는 것처럼 나도 해야 할 것만 같았고, 아니, 사실 내가 이곳에 있는 시간만큼이나 남들보다 더 많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는 몸도 마음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시에나 역에 도착하였다. 시에나 역에서 시내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 얼마쯤 기다리니 버스가 왔고 함께 온 지인과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창 밖의 풍경이 꽤 예쁘게 펼쳐졌다. 한쪽에는 성벽이 이어져있고 반대편으로 멀리 산맥들이 펼쳐졌다. 시에나가 높은 지대에 있는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금방 도착한다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탄 버스는 꽤 오래 달리고 있었고, 창 밖으로 보이던 성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구릉지대만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탄 버스는 이미 시에나를 벗어나 외곽의 어느 작은 마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그 마을을 돌아서 다시 시에나로 돌아가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혹은 버스에서 내려서 갈아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면 30분은 단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1시간 동안 드라이브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사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이탈리아인에게 시에나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어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스를 잘못 타게 된 것이다. 아마도 영어로 말하다 보니 서로 간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특별한 시에나 시내버스 드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저 멀리 산들이 어깨동무하듯 이어지고 구불구불 언덕들이 펼쳐진 이탈리아의 풍경이 이어진다. 버스는 이따금씩 작은 동네마다 서서 사람을 내리거나 태우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한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건너편 산맥 뒤로 숨으며 붉은 노을을 지어 보이며 주변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 밖에. 그 풍경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행을 떠나 온 후 처음으로 찾아온 마음의 여유였다. 때때로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람과 소통하고 위로를 해주곤 한다. 그리고 때론 가야 할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피렌체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에나 관광은 덕분에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피렌체에서 출발했을 때도 이른 시간이 아니었고 시내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시내 구경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시에나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라 충분히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지대에 있다 보니 구불거리고 비탈진 골목들이 많아 걷는 재미가 쏠쏠한 도시이다. 낮의 풍경은 보지 못했지만 어두워지면 거리마다 골목마다 상점과 가로등이 켜지면서 그 불빛들로 거리가 아름답게 빛난다. 시타 거리(Citta)와 같은 큰 골목의 환한 불빛과 작은 골목에서 밝히는 은은한 불빛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갖춘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 달려왔구나 싶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는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카푸치노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 도시를 가든지 이제는 꼭 한 번은 커피를 마시게 된다. 내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탈리아의 커피는 어디를 가든 참 달고 맛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주변 지인들에게서 이탈리아 커피의 매력과 맛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그 칭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나 또한 입이 닳도록 이탈리아 커피를 칭찬하자 어느 바리스타 친구는 “단맛이 좋더라”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어쨌든 전문가의 입이 아닌 나에게는 이탈리아 커피는 신세계였다. 아침에 마시는 모닝 카푸치노의 맛이란…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커피의 매력에 훅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런 사치는 딱 끊기게 되었다.
광장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은 후 광장에 앉아 후식으로 귤을 까먹었다. 홀가분한 마음에 와인까지 몸에 들어왔으니 자유로움을 주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지금껏 내가 봐온 유럽의 광장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푸블리코 궁전 중심으로 반원 형태로 펼쳐진 이 광장은 중심을 향해 약간 비탈져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마치 커다란 조개 속을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매력적인 광장의 모습 덕분에 광장과 마주하면 저 아래 궁전까지 신나게 뛰어내려 가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흥을 주체하는 것은 여행자로서 못할 짓이다. 뛰어야겠다.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게. 신나게. 즐겁게. 그렇게.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