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크다?! PISA

내 가슴속 감추고 싶은 빛나는 보석 _ ITALIA

by 봄희

며칠을 피렌체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지루하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한국에서 가져온 이탈리아 책자를 들춰보면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근교 도시도 갈 곳이 꽤 있어 보였다. 얼마나 피렌체에 머물러 있을지 정하지 않았지만 있는 동안 주변의 도시들도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의 한 곳으로 피사가 있었다.


피사는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천천히 출발해도 될 정도로 멀지 않았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다. 연말연초에 이탈리아에서 겪은 추위는 한풀 꺾인 듯 보였다. 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를 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나는 기차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기차를 종종 타곤 하였다.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특별전시나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니셨다. 대전 과학엑스포, 공룡 전시, 진시황 병마용 등 단편적이지만 순간순간의 기억의 조각들이 내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추석이나 구정의 명절 때에도 우리는 기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내려가는 일이 잦았다. 아빠는 연휴가 시작되면 차를 몰고 내려오셨지만, 맏며느리로 시집오신 엄마는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곤 하셨다. 명절에 기차를 타는 일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우리는 짐이 너무 많았고, 역에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기차 좌석표는 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입석으로 가게 되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눈치를 이리저리 보다가 빈자리에 앉거나 그마저 안되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가야 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에게 기차를 타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가락국수를 먹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락국수가 너무 뜨거워서 다 먹지도 못하고 기차에 올라타야만 했다. 혀는 다 데었고 못 먹은 가락국수는 너무 아까웠고 빨리 재촉하는 엄마에게 서운해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던 통통한 면발과 뜨거운 국물의 가락국수 맛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이 한 때의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을 해내신 엄마가 존경스럽다. 요즘 엄마들처럼 차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언제나 힘들다고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BMW(버스, 전철, 두 다리)와 기차를 타고 정말 많이도 다니셨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까? 그 작고 여린 몸으로 엄마는 언제나 천하무적 원더우먼 되곤 하셨다. 엄마의 사랑은 생각하면 할수록 그 깊이의 끝을 알 수가 없어 매번 놀라게 된다.




피사에 도착하였다. PisaCentrale역에서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가려면 20~30분은 걸어가야 한다. 물론 버스도 있지만 나는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웬만하면 이 정도 거리는 그냥 걸어 다닌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피사 시내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그것이 나는 좋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갔다. 피사는 생각보다 조용한 도시였다. 연초, 월초, 주초의 비수기라서 그런가? 기차역에서 피사의 사탑이 있는 두오모 광장으로 걸어가다 보면 중간에 그 사이를 가르는 강을 만날 수 있다. 아르노강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예쁜 이름을 가진 강이라고 생각했는데, Arno는 단어의 성별로 따지면 이탈리아어로 남성 명사에 속한단다. 단어의 성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혼란 그 자체이다. 어쨌든 이 강의 물은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밑을 지나와 이곳 피사의 구불진 강줄기를 잠시 거쳤다가 이탈리아 북서쪽 해안으로 빠져나간다. 사실 직접 보면 그리 넓은 강은 아니다. 한국사람들 중에는 한강이나 금강을 강이라 부르며 지내오다 유럽의 유명한 강들을 보고 당황하거나 실망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강이 서울의 사람들을 품어 왔듯 아르노강 역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사람들을 품으며 그들 삶의 희로애락을 묵묵히 함께해온 소중한 강줄기이다. 이탈리아의 생산품이라 하면 누군가는 패션 브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와 같이 먹거리를 삶의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와인과 올리브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중 토스카나주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유명한 포도와 올리브 재배지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르노강이 있어왔다. 토스카나 사람들에게 아르노강은 어머니의 젖줄이자 생명줄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강이다. 나에게는 나와 같이 피렌체에서 피사까지 흘러 내려왔을 저 강물이 왠지 모를 동질감에 그저 반갑게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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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피사의 사탑이 있는 두오모 광장에 도착하였다. ‘피사에 온 사람들은 이곳에 다 모여있구나!’싶을 정도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피사의 사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반대편에서 밀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피사의 사탑은 절대 쓰러질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오래전 피사의 사탑이 실제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면서 언젠가 쓰러질지 모르니 기회 되면 얼른 보고 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고는 피사의 사탑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 어쩌나 걱정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실제로 꽤 오랜 세월 동안 사탑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는 것과 그것이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해양왕국이라 불리던 피사의 최고 전성기는 11~13세기 무렵이었다. 1063년 사라센 제국과의 팔레르모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지중해 연안의 무역항로를 장악하게 된다. 이를 기리기 위해 피사 시내에 두오모와 사탑, 세례당을 짓게 되는데 고대 로마의 대규모 건물 형식인 바실리카를 본떠 로마네스크 양식에 다양한 문화를 흡수한 피사의 건축양식이 접목되어 독특한 피사 양식의 웅장하고 견고한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이야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겠지만 그 시대에 사탑은 일반적으로 사각 형태였는데 피사의 사탑은 독특하게도 원형으로 지어지게 된다. 당대에는 이것이 상당히 획기적인 건축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당대 피사가 가졌던 위용을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게 된다. 반세기에 걸쳐 지어진 두오모(대성당)는 로마네스크 피사 양식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사 두오모 광장은 두오모(대성당)보다 그 옆의 부속건축물인 사탑이 더 유명하게 되었다.
1173년 착공되기 시작한 이 사탑은 사실 당시부터 지반이 불규칙하여 기우는 탑으로 소문이 났다. 3층까지 지었을 때 결국 공사는 중단되어 1372년에 이르러서 겨우 8층으로 완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조금씩 기울던 탑이 1990년에 5.5도까지 기울게 되자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가 빗발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10여 년간 보수공사 끝에 2001년 완공되어 5.5도에서 더 이상 기울지 않은 채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로 수세기의 풍파를 견뎌온 사탑을 과학적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사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옆구리에 장풍을 쏴준 것이 한 역할을 한 것일까? 세상은 미스터리한 일들로 가득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사탑의 유명세로 두오모가 덕을 보고 있는 격이 되었지만 만약 피사의 사탑이 기울지 않았다면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 피사의 두오모가 유명세를 떨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 별개로 결국 내가 피사의 붕괴위험에 대해 들었을 때는 이미 보수 공사가 완료된 후였기 때문에 괜히 우려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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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광장에는 총 6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유명한 것은 피사의 사탑과 두오모, 세례당을 꼽을 수 있다.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피사의 사탑에 입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비수기에 갔기에 예약하지 않고 20여분 정도만 기다리고도 들어갈 수 있었다. 사탑에 입장하면 우선 간단하게 사탑의 역사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러고 나서 296개의 계단을 오르면 사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데, 피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296개의 계단만 오르면 시내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탈리아는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시내의 두오모나 탑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가 있다. 높은 아파트나 빌딩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층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서울은 262m의 남산 정도는 올라줘야 서울의 전경을 볼 수가 있지만… 피사의 사탑은 거기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을 갖고 있다. 탑 위에 오르면 탑의 기울기를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정말 놀라고 말았다. 5.5도의 기울기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실제로 몸이 체감하기에는 약한 정도라고 얕잡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꼭대기에 들어서자 내 몸이 기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유난을 떨자면 자칫 미끄러지면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마저 엄습해왔다. 탑 위를 한 바퀴 돌면서 그렇게 아찔했던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놀이동산과 관광지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장료가 아깝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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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그건 사탑 아래 불규칙한 지반에 의한 기욺 때문이 아니다. 그건 사탑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오랜 시간 힘들게 견뎌 온 세월에 대한 보상이었다. 혹여 자신을 지탱해주는 땅의 부족함 탓하거나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비관하여 한 순간 쓰러지고 말았다면 그저 피사의 쓰러진 탑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멀쩡하고 번듯한 탑이 사탑의 자리를 대신하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탑은 그 시간을 견뎌냈고 이제는 더 이상 쓰러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사탑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의 아름답고 화려한 수많은 관광지를 제쳐두고 이 작은 도시 피사를 찾아온다. 그러고는 푸른 잔디밭에서 너도나도 기울어진 피사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정도면 700여 년의 세월에 대한 보상이 되었을까.


한 평생 단 한 번도 똑바로 서있어 본 적이 없었을 피사의 사탑을 한참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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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광장 밖 피사 시내의 모습- 카발리에리 광장, 아르노강, 산타 마리아 거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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