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NZE,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내 가슴속 감추고 싶은 빛나는 보석 _ ITALIA

by 봄희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피렌체로 들어왔다. 지인이 피렌체의 한인민박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나의 숙소는 자연스레 그곳으로 정해졌다. 짐을 대충 풀고 피렌체와 만남의 시간을 갖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상점들은 연말을 맞이하여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문을 일찍 닫거나 열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도 대부분 예약이 되어 있어 자리가 없거나 문을 늦게까지 열지 않는다고 하였다. 연말에 유럽에 와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특별한 파티를 기대하던 친구들이 생각보다 흥겨운 유흥문화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상점이나 식당들마저 문 닫는 곳이 많아 오히려 외롭고 실망스러웠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이기에 좋은 장소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유럽은 오히려 이런 특별한 날은 다른 누구보다 가족이나 연인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 크리스마스를 다 함께 보냈었나, 연말을 맞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는 것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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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거리가 아주 조용하였다. 문을 연 상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박물관도 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특별한 일정을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곗거리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행 가서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면 참으로 의아해한다. 특히 유럽이라는 장소에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과 계획을 정해두고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조차 이런저런 것을 추천하며 때론 강력하게 권유한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우리나라만의 관심과 정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괜한 참견이기도 하다. 그것은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때론 방해를 받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저 다들 여행하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린 서로 모두 다르다는 것.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그 풍경 안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들의 문화를 느끼고 싶었다. 그것은 때론 박물관과 미술관의 예술작품에서, 때론 길거리의 연인에게서, 때론 어느 카페의 종업원에게서, 때론 길모퉁이 식당의 음식에서, 또는 공원을 산책하는 강아지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여행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그들은 이 땅에서 살아왔고 그들의 문화를 일궈냈다. 그 사람들이 만든 건축과 예술, 그리고 그들의 자연과 문화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왜 하필 이 장소에 이런 건축이 들어서게 됐는지, 어떻게 이런 섬세한 조각을 만들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는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 건축이 지어졌고 그들이 살아온 자연 안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보인다.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나에게 모든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이 나만의 여행 방식이다.
그렇기에 40일이라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나의 계획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인민박과 지인이 있는 숙소의 특성상 한국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나는 나의 여행의 주체를 확실히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치 양면의 동전과도 같이.

20150101_170351.jpg 새해 첫날 해질녘의 피렌체




개인적으로 나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는 나에게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이탈리아는 오랜 시간 내가 꿈꿔오던 나라였기에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 계획을 좀 더 일찍 준비했다거나 어느 정도 공부를 할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하지만 이런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요즘에는 유럽 곳곳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해설가이드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일정 금액에 대해 지불이 필요하지만 그만큼의 좋은 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 또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토대로 피렌체를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고 그리고 그 매력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이 알고 싶고 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여 피렌체 카드까지 구입하게 되었다. 피렌체 카드는 72시간 동안 피렌체의 성당과 박물관, 미술관 등의 대부분을 1회에 한해 예약 없이 자유롭게 입장이 가능한 카드이다. 시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와 트램이나 버스 등의 교통도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편의를 살펴본다면 상당히 유용한 카드였다. 하지만 72시간 동안 피렌체에 머무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았고 당시 72유로(한화가치로 10만 원가량)나 되는 금액도 적은 돈은 아니었기에 내가 피렌체에 머물러 있는 10여 일가량 동안 그 카드를 이용하는 한국인은 나 외에 1명밖에 보지 못했다. 나도 엄밀히 따져보면 주변 관광지는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였고 와이파이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나에게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우피치 미술관도 가이드와 함께 한번 다녀왔던 터라 내가 피렌체 카드를 구입한 것은 그야말로 우피치를 한번 더 가고 싶어 할 정도로 피렌체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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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피렌체는 메디치가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 곳곳의 문화∙예술은 르네상스의 포문을 연 메디치가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피렌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반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 중심에는 메디치가가 있었다. 메디치가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 가문에서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 15~16세기에 이르러서 피렌체의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은 가문이자 강력한 통치자가 된다. 교황 4명과 프랑스 왕비 2명을 배출할 정도로 최고의 권력과 부를 소유한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당대 예술가들 중에는 메디치가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 인문 등의 학문까지 관심을 갖고 장려하면서 주변 나라의 학자들도 피렌체로 모여들면서 르네상스의 부흥과 발전에 크게 일조하게 된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 당시 피렌체에 메디치가가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피치 미술관을 이나 피티 궁전의 그림과 조각품을 감상하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순간 솟구치게 되는 이유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흔히 요리라고 하면 프랑스 요리가 유명한데, 그 뿌리를 찾아보면 피렌체 메디치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카타리나 공주가 프랑스에 시집을 가면서 요리사를 데려가게 되는데 그때 이탈리아의 요리문화를 프랑스로 전파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프랑스 요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포크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 한다. 또 젤라토(아이스크림) 기술이 프랑스 궁중요리와 접목되면서 젤라토 레시피가 발전하게 되고 전 유럽으로 확산하는 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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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00여 년 동안의 유럽 역사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메디치가는 귀족들의 견제와 암살, 강대국들의 침략 등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점차 그 힘이 약해졌고 후손의 대마저 끊기며 몰락하게 된다. 어느 역사를 들춰봐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모든 시대의 통치자들이 언제나 긍정적인 면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메디치가 또한 마찬가지로 때론 시민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고 때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국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되었지만 피렌체 시민들은 아직까지도 메디치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메디치가가 지금까지 피렌체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으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메디치가가 유럽 문화와 예술 면에 미친 지대한 공과 명성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피렌체의 시민이자 통치자로서 자부심과 피렌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마음이 아직까지 피렌체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디아 데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재산은 피렌체의 재산’이라며 메디치가의 모든 예술 컬렉션을 피렌체에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하게 된다. 그리고 메디치가의 모든 예술작품들은 현재까지도 피렌체 품 안에서 피렌체의 예술과 문화로서 시민들의 자랑으로 남아 한때 화려한 무대를 장식했던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 작은 도시 피렌체는 작지만 강인했고 강한 바람 속에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골리앗 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다비드(다윗)는 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도 피렌체의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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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언덕 위에 오르면 피렌체가 상징으로 삼은 다비드가 우뚝 서있다.


물론 모조품이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제작했을 당시에는 피렌체 시민들에게 용기와 자긍심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해 놓았다. 하지만 1873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스탕달 증후군(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흥분)에 빠진 사람이 다비드에 몹쓸 애정행각을 부리는 일이 발생하는 등 열린 광장이 다비드의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어 보존을 위해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조품인들 어떠하랴. 다비드는 지금도 피렌체의 상징으로서 피렌체의 높은 언덕 저 위에 우뚝 서서 피렌체를 찾는 각국의 여행자들에게 아직도 피렌체가 이렇게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비드상 위로 피렌체의 하늘 어디선가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은 헤르메스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IMGP6508.JPG 하늘이 맑은 날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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