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의 카운트인지 모르겠다. 거실 모퉁이에 돌아서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센다. 늘어지는 숫자만큼 잠시라도 내 시간이 늘어났으면 하고 바랐다. 열을 세기도 전에 부산한 소리가 멈춘다. “엄마, 다 숨었어!”라는 목소리가 소파 뒤에서 선명히 들린다. 이제 나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와 있다고 주문을 건다. 아님, 잠시라도 내가 보이지 않았으면.
“열! 찾는다!”
고개를 약간 틀어 소파 옆으로 삐져나온 꼬물거리는 발가락을 본다. “어디에 있지? 너무 잘 숨었는데?”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발가락이 킥킥거린다. 그 귀여움을 모른 척 지나치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불속 존재 또한 완벽히 숨었다는 희열에 취해 곰실거린다. 괜스레 큰소리를 내어 안방 붙박이장을 한번 열어보고 실망한 척 연기를 하니 이불이 더 들썩인다. 별것도 아닌 이 놀이가 너무나 재미있는 모양이다. 다시 거실로 나가다 애처롭게도 숨은 발가락을 짓누르고 있는 궁둥이를 보며 웃음이 난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짠!” 딴에는 꼭꼭 숨었던 자칭 숨기 달인들이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은신처에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입을 틀어막고, ‘어떻게 거기에서 나오느냐’라는 표정 연기로 마무리한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연기의 달인이 된다.
낄낄거리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순간 내게도 작은 행복이 샘솟는다. 별것 아닌 놀이는 아이들에겐 진지한 모험이자 게임이 된다. 숨을 장소를 찾고 스스로 ‘발견’을 느끼는 작은 성공의 경험을 매 순간 쌓는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별것 아닌 숨바꼭질이 우리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과정을 존중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중요한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만의 세계를 탐색하고, 작고 어두운 공간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은신처가 되며, 그 속에서 세상의 규칙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 너무 거창한가. 믿을 수 없다면, 일단 아이와 한번 해보길 바란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모든 걸 말해 줄 것이다.
자, 이제 내 차례다. 아이들이 카운트를 한다. 안방 붙밭이 장을 열어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들어간다. 완전히 문을 닫고 잠시 아이들과 분리가 된다. “열! 찾는다.”라는 소리와 함께 부산스러운 작은 발소리들이 들린다.
‘못 찾겠다 꾀꼬리! ’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절대 나가지 않았고, 제법 오랫동안 스스로 들어간 어두운 그곳에서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을, 그 일탈은 왠지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