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미화 Sep 02. 2024

테셀레이션의 미학 혹은 강박

허접스러운 완벽주의자

  

 초록불로 바뀐 건널목. 여섯  아이는 횡단보도의 흰 부분만 밟기 위해 짧은 다리로 있는 힘껏 보폭을 넓혀가며 걷는다. 흰색이 아닌 부분이 마치 낭떠러지라도 되는 모양이다. 신중한 두 세 걸음 뒤 보폭의 한계가 왔을 때,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점프! 동그란 초록불은 숫자로 바뀌고 아이는 여전히 혼자만의 패턴 게임에 심취해 있다. 초록불 카운트가 5초 정도 남았을 때 아이를 재촉해 뛰었다. 건널목을 건너자 아이만의 낭떠러지 패턴은 사라졌지만, 곧바로 인도에 깔린 갈색 보도블록의 용암지대 패턴이 나타났다. 아이는 빈틈없이 인도를 채운 보도블록을 아슬아슬한 몸짓으로 갈색 블록만 피해 걸어간다. 안전하고 완벽한 공간 위, 혼신의 힘을 쏟은 깨금발은 귀엽고 우스꽝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테셀레이션의 미학과, 상상이 만들어낸 강박이 혼재한 이 상황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테셀레이션이란 일정한 형태의 도형들로 평면 또는 공간을 빈틈없이 채워 만든 패턴이다. 어떤 두 형태가 만나는 경계에서 빈틈이 없을 때 우리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같은 것들의 형태에서 만들어진 무늬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의 패턴도 그러하다. 나의 생각의 조각들이 딱딱 제자리를 찾아가 들어맞을 때, 또는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딸깍 소리를 내며 끼워 맞춰질 때 우리는 약간의 희열을 느낀다. 오로지 테셀레이션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빈틈이란 ‘흠’,‘하자’,‘결점’ 정도로 바꿀 수도 있겠다. 완성된 것은 안전하고 아름답지만, 빈틈없이 정확히 끼워 맞춘 것만이 그러하다. 500피스 직소퍼즐에서  조각이 한 두 개가 빠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모두 맞추어야 끝나는 직소퍼즐처럼  수학에서의 테셀레이션은 미학과 강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반면 인생에 대입했을 때 빈틈이 많은 건 어쩐지 불안한 일처럼 느껴진다. 결점 투성이라는 말은 삶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그러한 생각에 미치자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만 쫓는 삶은 치명적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빈틈없는 용암 지대 보도블록을 폴짝거리며 걷고, 레고로 딸깍 끼워 맞춰 멋진 상상의 집을 만드는 6살 아이처럼 수학패턴 맞추기는 재밌는 놀이로 남겨두는 것이 현명한 삶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눈으로 보면 패턴이 아닌 것이 없다. 한여름 하늘에 떠있는 변화무쌍한 구름마저 아이에겐 멋진 테셀레이션이다. 하늘에는 빈틈이 존재하지 않는다. 꽉 차있는 완벽한 하늘 테셀레이션은 무질서하지만 아이의 상상 속에서 질서를, 규칙을, 패턴을 만들어낸다. “엄마, 오늘은 하늘이 동물원이네. ”라고 말하는 순간, 빈틈 하나 없이 동물 모양의 구름들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하늘에 새로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무질서함 속에서도 그 자체로 패턴을 찾아내는 아이의 시선이 경이로웠다.      


 글쓰기로 고민하는 나를 이야기해 본다. 끼워 맞춰서라도 완성시키고 싶다는 강박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테셀레이션의 미학에 정신이 팔려있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가진 조각들로 끼워 맞추자 너무나 많은 부족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완성된 조각을 먼저 상상한 나는 실망했다. 경험한 것이 부족해서,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여유가 없어서, 내 안에 채워놓은 것들이 없기에 글이라는 게 안 써지는 줄 알았다. 한동안 취미로 했던 독서를 더 전투적으로 했지만 빈틈은 전혀 메워지지 않았다. 부어도 부어도 갈증만 나서 한 동안 책을 내려놓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글이 안 써진다는 말이 가소로웠다.      


 내 안에 무엇을 나누고 싶은 건지 생각해 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차에 글쓰기 모임에서 ‘나는 언제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생존’으로 답을 했었다. 소규모 수학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할 무렵, 홍보를 해야 했고, 수업하고자 하는 방향, 목표 교육관 등 내가 가진 능력들을 확실하게 빈틈없이 전달해야 했다. 그래야 원생 한 명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 정말로 글쓰기의 시작은 ‘생존’이었다. 사교육에 대한 인식과 사교육자에 대한 선입견이 좋은 편은 아니라 인지했고, ‘전기세 내러 학원 보낸다’는 말을 외면하지 못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건 다른 범주였다. 책을 그렇게나 읽고 단 몇 줄 쓰는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자괴감과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일이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음과 자세가 이전과는 달랐다.      


 홍보 문구 첫 줄. ‘성적의 수직상승을 보여드립니다’라는 말이 기만적으로 느껴져서 지워버렸다. 개원을 하고 월세라도 내려면 홍보라도 해야 되는, ‘딱 학생의 깜냥만큼만 올려드립니다’라고 홍보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무책임한가. 누가 보내겠는가. 나라도 안 보낼 것 같았다. 기만과 솔직함 사이의 외줄 타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참으로 얍삽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 둘 사이를 타협하려니 글이 가식적이며 장황해졌다. 일에 대해 진심을 전하고, 그 진심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하다 내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느낌표가 이마를 뚫고 나올 뻔했다. ‘엄마 같은 마음’,‘친절한 조력자’.


 블로그에 내 아이에게 가르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서 짧은 글을 한 편씩 써나갔다. 그 글을 보고 찾아오는 학부모가 상당수였고 상담시간도 짧았다. 마치 나를 다 알고 오는 분들 같았다. ‘아이가 선생님께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상담온 학부모에게 들었고, 그 말에 조금 더 글쓰기에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나의 진심이 얼굴 한 번 안 본 타인에게 글로 전달된 것에 기분이 묘했다. 그 설렘을 가지고 글이라는 걸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쓸까’라는 고민이 ‘어떻게 써야 하나’로 넘어왔을 때, 글쓰기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진 소재도 빈약하고 문장력도 달렸다. 쓸거리를 찾다가 매번 막히는 나를 보며, 하얀 모니터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기어이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화두가 온전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과거의 기억을 비롯하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진실되고 솔직하게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언어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읽고 매일 썼다. 기억의 파편들이 글로 얼기설기 그려져 있지만 나는 이제 안다. ‘오늘 글은 동물원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사슴도 쓸 수 있고, 호랑이도 쓸 수 있고, 코끼리, 기린, 새, 고래와 같은 동물들을 모두 나만의 패턴으로 이어 붙일 수 있다는 경이로운 방법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고로 빈틈의 강박은 상상 속에 던져두고 나는 미학을 완성시킬 조각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