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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Sep 04. 2024

알고리즘의 배신

의도된 무한루프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으로 알고리즘 순서도를 만들어본다.

1. 라면과 냄비를 준비한다.

2.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다.

3. 물이 끓으면 라면 재료를 넣고 익힌다.

4. 라면을 먹는다.

5. 맛있는지 확인한다.

6. 맛이 없으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이라 문제해결의 단계적 방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1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맛이 없어도 그냥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적화를 지향하지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맛있다’에 대한 가치를 수학적으로 데이터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위 알고리즘 순서의 목푯값인 ‘맛있는’ 라면을 원한다면 하루종일 순서도를 수정하며 라면만 끓여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무수히 많은 변수에 대한 조건을 각 단계마다 끼워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의 양은 얼마이며, 불의 세기, 냄비의 종류, 조리 시간, 부재료로 들어가는 것, 수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 계란은 터트릴지 말지. 한 젓가락 집어 후후 불고 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맛있다’의 결괏값은 모를 일이고, 그 사이 또 다른 변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거나, 야식으로 먹는다거나. 그러면 앞서 내세운 조건보다 더 까다로운 순서도가 만들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유한한 과정 속에서 무한한 수정과 반복. 라면하나 먹는데 참으로 팍팍한 최적의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닐 수가 없다. 때문에 이 비효율적이고 오류투성이인 알고리즘은 치워버리고 망친 라면을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어버리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 다음번 라면은 더 맛있게 끓여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비슷한 맥락을 가지겠지만,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알고리즘적 접근을 시도해 본다.

1. 주제를 정한다.

2. 소재를 모은다. 구조화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기록한다.

3. 아웃라인을 작성한다. 구조를 만든다고 해두자.

4. 세부내용을 적는다.

5. 나름 논리적인 순서로 연결시켜 메시지를 명확히 한다.

6. 반복과 수정 (퇴고의 퇴고의 퇴고를 거친다)

7. 완성된 글

8. 7번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6번 또는 1번으로 다시 돌아간다.      



 역시나 유한한 단계 속에 무한 반복의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고작 라면하나 먹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짜증 나도록 논리적인 이 글쓰기 알고리즘 단계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최적의 문제 해결 방법이기에 망친 라면을 먹어버리는 일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든 새 냄비에 물을 올리고 다시 조리해야 한다. 비효율적이고 오류투성이인 것은 알고리즘에 대입시키는 나의 글쓰기 현실이었다. 자꾸만 처음으로 돌아가는 탓에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잘 쓴 글’이라는 결괏값 때문에 알고리즘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2번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1번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문제자체를 수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잘 쓰는 것 말고 그냥 아무거라도 쓰기'로 말이다.


 고민의 나날들이었다. 주제도 스타일도 방향성도 없는 글쓰기 초짜는 불완전함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만들어놓은 단계에만 의존했다. 나는 무엇을 적어내고 싶은 걸까. 소재 거리가 있음에도 적어내지 못하는 건 역시 써내는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을 더 읽어야 하나, 아니면 쥐어짜서라도 계속 써내야 하나, 써낸 것들을 보면 정말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누가 읽을 것이지, 왜 나는 잠도 못 자고 피곤해 죽겠는데 이렇게 고민하며 또 쓰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순간도 왔다. 먹고사는 일 말고 작정하고 딴짓을 하려니 피로도는 말도 못 하게 올라왔다. 오기를 부리기에는 능력이 달리고 객기를 부리기에는 체력이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순서도의 1번으로 올라갔다.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글의 주제를 파악하기 전에 내 주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했다. 글쓰기 알고리즘에 많은 조건을 넣기 시작했다. 못쓰는 것이 당연함을 인정할 것.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놓치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닐 것. 의미 없는 일도 의미 있게 만들도록 행동할 것. 기억을 왜곡하지 말 것. 감정을 절제할 것. 모든 것에 다정할 것. 그리고 매일 써나갈 것.  


    

 매일 글을 썼다. 매일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지에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동네 뒷산부터 시작하여 만만한 산들을 하나씩 하나씩 오르는 것처럼 글을 썼다. 낮은 산마루에 오른 나는 그다음은 조금 더 높은 산을 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올라가기 전까지 정말 수백 가지의 마음이 존재하지만 오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참 잘 올라왔다는 것을. 지면의 공백을 하나씩 메워 나갈 때의 성취감은 재미 이상의 쾌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매일 쓰는 행위가 며칠, 몇 달이 쌓이자 의미가 커졌다. 확장을 체감하는 글쓰기가 신기했다. 책을 읽고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지평의 확장이랄까. 삶이 더 촘촘하고 신중해진다면 낯부끄러울까. 일상에 생각이 많아지고 그것들을 글에다 묶어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렇게 살지 않았던 나도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책임감마저 들었다. ‘나를 알아간다’는 진부한 말을 아무렇게나 뱉었던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에도 패턴과 공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글쓰기에는 정말 변수가 많다. 나라는 변수. ‘이렇게 쓰면 잘 써진다 ‘의 알고리즘은 오늘은 유용할지라도 내일이면 무용해진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없을 거라고 오늘에 주저앉을 나를 철저히 배신하고 가차 없이 내일로 돌아선다. 나는 다시 최적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또 다른 조건을 각 단계마다 추가한다. 하나의 공식, 하나의 최적화 절차에 적용되는 패턴이 아닌 걸로 보아 글쓰기는 인생과도 닮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도 잘 쓰고 싶고 라면도 맛있게 끓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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