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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Feb 27. 2023

최선을 다한 결과물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군데 어느 시점부터 연락을 안 한다. 그래서 별로 안 친한데 친하다. 앞으로도 안 친한데 친할 거 같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장례식이 있어서 조문을 갔다.


아침 일찍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새벽 6시에 장례식장에 갔더니 내가 일빠따 조문객이었다. 본의 아니게 쉬고 있던 상주들을 다 깨웠다. 너무 새벽에 가면 안 그래도 피곤한 장례식장에 실례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문객이 나밖에 없으니 육개장을 먹으며 여유롭게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장례식장을 몇 번 안 가봐서 조문 예절을 찾아봤는데 고인의 사인에 대해 물어보는 게 결례라고 했다. 그래서 (궁금한데) 안 물어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먼저 이야기를 해서 들을 수 있었다.


췌장암이셨고 2년간 투병하셨고 세계적인 췌장암 권위자에게 치료를 받고자 독일까지 가셔서 치료를 받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실제로 돌아가신 건 2주 전이었다고, 운구해서 장례를 치르느라 돌아가신 지 2주 뒤에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고인의 삶의 대한 의지가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야"


 친구는 장례식장을 빙 둘러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최선을 다한 결과물-


 이란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우리가 이런저런 삶의 무게들을 견디며 최선을 다한 결과물은 그렇게 죽음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니 순간, 짧은 순간 깊은 허무함이 피부에 스몄다.


 "우리 엄마도 췌장암이었잖아, 가족들도 고생했겠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아저씨가 되어 어른인 척 어른스러운 대화를 좀 나누다 예정되어 있던 지방 거래처로 미팅을 갔다.


 미팅이 순조롭게 잘 되어 큰 문제가 해결되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거래처에서 점심에 사준 소고기찌개가 너무 맛있었다.

 집에 돌아와 강아지랑 산책할 때 올해 첫 봄바람이 불었다.


  최선을 다한 결과물은 허무하겠으니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음미해야겠다.

  최선을 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 같다.

  

 '고인은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그럭저럭 잘 살았고 본인도 만족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느낌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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