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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Mar 17. 2017

연필깎이의 추억


초등학교에 입학 하고 나서부터 갖는 의례적인 하루 일과 중 하나는 어머니의 연필깎는 시간입니다. 책가방을 싸고 필통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면 저를 앞에 앉혀두고 연필 4~5자루를 항상 정성스레 뾰족하게 깎았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친구들이 너는 항상 연필이 어떻게 그렇게 뾰족하냐고 두고 두고 말을 할 정도로 연필을 잘 깎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일과 중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시립아동병원에서 일하실 때라 야근하는 날도 많았고 피곤하셨던 모습이 많이 기억나지만 어머니께서도 그 일만큼은 빼놓지 않고 챙겨주셨습니다. 연필을 깎으시며 아들의 하루 있었던 일을 듣고 뭉뚝해진 연필만큼 공부했을 아들을 보는 것은 어머니에게도 큰 기쁨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93년 어린이 날에는 일본에 계신 외삼촌에게 일제 연필깎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검은색 자동 연필깎이인데 연필만 넣으면 자동으로 아주 뾰족하게 깎여져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편리하여 좋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감정은 교류하는 법이지요. 어머니와 나는 별 상의없이 일제 연필깎이를 구석에 남겨둔체 우리의 소중한 하루일과를 지켜나갔습니다.


 그러한 일과는 꽤 오랬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별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연필 깎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 지고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연필을 잘 깎아 쓰지만 어느 새 필통안에 연필이 뭉뚝해지면 저를 앉혀두고 연필을 깎아주실 어머니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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