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 키나발루 마지막 날
코타키나발루의 마지막 아침에는 설사를 했다.
전날 먹었던 음식 중 하나가 잘못되었나 보다.
설사 무한리필 맛집에 온 줄 알았다.
좀 심하게 해서 지사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는 걸 지켜보려고 호텔 조식도 포기했다.
CNN 등의 외신들도 대한민국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걸 보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힘을 내서 길을 나섰다.
오늘은 호텔 체크아웃하는 날이라 짐을 정리하고 방을 나섰다.
모든 것이 완벽한 공간을 뒤로하고 구질구질한 나의 방으로 고고싱.
캐리어는 호텔에서 보관해주어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같은 건물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었다.
코타키나발루의 흔한 푸드코트 풍경이다.
나시고랭을 먹었는데 고오급 짜파게티 맛이 나서 고향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마지막 날이 되니 날씨가 좋아 급하게 가보고 싶던 선셋바의 테이블을 예약했다.
석양이 질 무렵인 5시로 예약해 놓으니 시간이 남았다.
그때까지 미뤄놓은 관광을 했다.
블루 모스크를 다녀왔는데 말레이시아 사바주에서는 가장 큰 모스크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하기에 보러 갔다. 우버를 이용했는데 우버가 최고다. 아주 편리하다.
소년들의 신실한 모습을 보니 나도 착하게 살고 싶어 졌다.
천국의 울타리를 넘지 않게 해주세요.
모스크를 왜 텅텅 빈 공간으로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스크에 들어가서 알 수 있었다.
위에는 선풍기가 윙윙 돌고 있고 나른하니 잠이 솔솔 왔다.
더운 나라의 모스크는 정말 낮잠 자기 딱 좋게 만들어져 있다.
추운 나라의 이슬람도 같은 구조인지 궁금해졌다.
같은 구조면 휑하니 너무 추울 거 같은데, 추운 곳에 있는 나라 중에 이슬람을 믿는 나라는 없나?
이슬람은 온도와 관련이 있는 건가?
코타키나발루 박물관도 가고 싶었으나 바로 탄중아루 해변으로 갔다.
과연 오늘은 선셋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선셋바는 간지 나는 리조트 안에 있는 야외바다. 돌출되어 있어 아무 걸림 거리 없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저기 보이는 소파석에서는 누워서 선셋을 볼 수도 있다. 너무 간지가 나기에 예약을 미리미리 해야 이용할 수 있다. 나도 소파석을 쓰고 싶었지만 조금 늦어 일반 테이블석을 예약했는데 마침 비가 와 내가 승리자가 되었다.
소파석에 있는 사람들도 처음엔 좀 앉아있다가 다 자리를 피했다.
정말 신나는 순간이었다.
비가 와서 선셋은 물 건너가나 했다.
불안한 마음에 스테프한테
'투데이 노 선셋?'
'예스, 이츠 레이닝'
'개쉣'
애꿎은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만 홀짝였는데
그때였다. 선셋이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한 것은.
온 세상이 붉게 물들자 사람들의 얼굴도 행복함으로 붉게 물들었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코타 키나발루에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세계 3대 석양 스팟이라고 하는데 (3대 시리즈는 누가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명성대로 아름다운 석양이었다.
석양을 끝으로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고
극심한 장염 혹은 식중독 혹은 콜레라에 걸려
3일 동안 3kg을 강제 다이어트해 턱선이 살아났다.
침대에 3일을 누워있으니 이제 좀 회복되어 여행기를 마저 남긴다.
결론: 장염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