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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Mar 14. 2017

코타키나발루 무인도에서 나체로 수영하기

코타 키나발루 4일 차


'술룩 섬에 가신다니 데려다는 드리는데 한 번 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다른 섬으로 가 드릴게요'

배에 타기 전 보트 드라이버가 다시 한번 묻는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알고 그것 때문에 가는 건데 왜 이리 여쭤보시는지


'디스 이스 어드벤처'


의미심장하게 말하니 보트 드라이버도 고개를 끄덕인다.


저 멀리 술룩섬이 보이고 흰 물보라를 만들며 신나게 달려갔다. 신나게 달려라.


섬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산호로 만들어진 모래사장이 부드러웠고 바다는 저 멀리 넓었다. 나무 밑에 수건 한 장을 깔고 나니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물색깔 오지구요.
무인도의 풍경

술룩섬의 모래사장은 정말 고왔고 물도 맑았다. 스노클링 장비를 만원인가 주고 사 왔는데 조금만 헤엄쳐서 나가도 니모들이 손짓을 했고 우럭이 보여 입맛을 다시게 했다. 산호들 사이사이에 사는 작은 물고기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바닷속에 숨겨져 있는 조용한 작은 세상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생긴 나무 벤치에 앉아 해변을 보기도 하다가 준비한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기도 했다. 저 위에 빨간 건 딸기잼이 아니라 매운맛이 나는 전통 소스였다. 꽤 먹을만했다.

위에 사진은 평범한 해변가 사진 같지만 나는 완전히 발가벗고 있었다. 자연과 나 단둘이 있는데 옷가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평생 이렇게 온몸으로 햇살과 바람을 맞이한 적이 있었을까. 나는야 진정한 자유인이다.

여기까지가 무인도에 대해 잘 쓴 거라면 지금부터는 현실적으로 말해주겠다.

야 쓰레기 소리 좀 안나게 해라

술룩섬의 단점


1. 일단 쓰레기가 아주 많다


이 놈들이 캠핑을 하거나 놀러 왔다가 쓰레기를 가져갔어야지 뭔 집에 있는 쓰레기까지 다 갔다가 버려놓아서 기분이 살짝 잡쳤다. 해변에는 쓰레기가 없어서 그래도 좋았는데 모래사장은 너무 심했다.


2. 벌레가 아주 많다


맥주 한 캔을 따고 음악을 들으며 한가로운 씨에스타를 자려고 하는데 벌레가 개많아서 실패. 분명히 날파리처럼 생겼는데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 물리고 나면 간지럽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데 갑자기 종아리 언저리가 가려워져서 긁고 있다.


3. 태양을 피할 수 없다


무인도에는 아무 시설도 없어 태양도 오로지 나의 몫이다. 안 그래도 까만 피부가 강렬한 적도의 태양에 더 타들어갔다. 수건으로 어찌어찌 얼굴은 가렸지만 나머지 나의 몸뚱이는 까맣게 타버렸다.


모든 것들에는 이면이 있는 것 같다. 좋아하고 싶다면 장점을, 싫어하고 싶다면 단점에 집중하면 된다.

나는 술룩섬의 장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코타 키나발루 무인도에서 보낸 한 때는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술룩섬을 나와 호텔로 돌아가 몸을 씻고 허기진 배를 붙잡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메뉴는 스테이크와 랍스터 수프. 워터프런트라고 선셋을 보기 좋은 장소였으나 선셋은 개뿔, 비만 많이 왔다.

그래도 음식이 맛있어 기분이 좋았다.


저녁엔 발마사지를 받고 야식으로 미트 스파게티를 먹었다.

물가가 저렴하니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은 서비스도 받고 다니지만 솔직히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부자가 되어 세상을 살면 이런 기분일까? 뭔가 공허하고 외로운 기분이 느껴졌다. 


동남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심리의 저편에는 힘든 밥벌이에 대한 복수심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처럼 일했으나 개처럼 쓸 수 없는 녹록한 현실에서 동남아 여행은 좋은 해결책이 되겠다. 이제 우리와 주머니 사정이 다른 그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돈을 팡팡 쓰며 부자의 기분을 느끼면 된다. (저도 100% 그중의 한 명) 이젠 별로 재미없다, 집에 와 한참을 공정 여행에 대해 찾아보았다.


마지막 저녁이라 뭔가를 기념하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피곤해 일찍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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