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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Mar 09. 2017

먹고 마시는 코타 키나발루

코타키나발루 3일 차

저 멀리 바다를 닮은 칵테일

오전에는 옥상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가족들 틈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친구들 틈에서 고고히 헤엄치는 한 마리 고래 혹은 찐따 같았다. 주눅이 들어 오래는 못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셨다. 푸른 바다를 닮은 블루 모시기 칵테일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무리들을 구경했다. 이 상대적 외로움은 칵테일의 맛을 더해주는 좋은 안주였다. 


코타키나발루 근처에는 작은 섬들이 많아 많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다. 코타키나발루까지 갔는데 섬을 갔다 오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것 같아 호텔 근처 항구에 가보았다. 투어 창구가 8개쯤 있는데 저마다 섬 투어와 호핑투어와 씨워킹 같은 액티비티를 제공하고 있었다. 문제는 유인과 흥정이었다. 적극적인 프러포즈에 얼음이 되어 버렸는데 가격을 흥정까지 하려고 하니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늑한 호텔방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Sales를 했던 사람이지만 정말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나는 어떻게 Sales를 했는지 참. 그래서 그만둔 건가 싶기도 하고.

분명히 인기 많은 섬을 선택해서 가면 상대적 외로움이 파도가 되어 날 덮쳐올 것이고 별로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 탓에 액티비티도 그저 그럴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야 해. 생각, 생각 생각, 아!


'무인도에 가자'


구글 맵을 보다가 Sulug이라는 작은 섬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거의 안 가는(그래도 가끔 마젤란 같은 사람들이 가보는), 모든 편의시설이 전무한 무인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 무인도로 가자. 속세의 미련을 떨치고 무인도에서 자아를 성찰해 싯다르타 발톱의 때가 되어보자. 열반에 이르거늘 이 브런치는 성지가 될 것이다. 설레는 마음이 들어 약 4만 원 정도에 왕복 티켓을 얻었다.

'거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실 겁니까?'

'네'

'왜죠?'

'그냥 아무도 없는 섬에 가고 싶어서요'

'거긴 음식점도, 화장실도, 액티비티도 없습니다'

'네'

직원 둘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직원 두 분이 썼던 말은 말레이시아 언어인데 그냥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이 놈들아 다 들린다. 적극적인 호객, 흥정의 부담, 고민과 결정을 해내고 나니 녹초가 되어 버렸다.


헤드 마사지받다가 두피 다 벗겨지고 탈모 올뻔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시장이 있어 들렀다. 필리핀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었나 보다. 시장 바닥에 앉아있는 꾀죄죄하지만 찬란했던 아이들을 보며 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옳지만 진부한 문장은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되어 비로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싱싱한 해산물과 없는 게 없었던 식재료, 덥고 습한 날씨에 특화된 옷가지와 향신료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특히 닭날개 구이는 아주 맛있었는데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해산물이 유명한 코타키나발루라 시푸드 레스토랑이 많다. 제가 또 한 시푸드 킬러 합니다. 푸드 파이터가 되어 타이거 새우 사시미, 석화, 게 튀김을 먹었다. 해산물은 왜 맛있을까. 그건 아마 바다의 기운을 잔뜩 머금어서 그렇지. 한쪽 구석에서 혼밥을 했다. 

뭐? 혼자 온 찐따라 잘 안들리는데?

맛있겠죠?


코타키나발루 해는 저물고 찬란한 음주의 해가 떠오른다. 서울에서도 술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여긴 코타 키나발루다. 저녁을 먹으며 이미 타이거 맥주를 한 병 비웠지만 이 정도로 쓰러질 내가 아니지. 나는야 코타 키나발루의 한국산 술고래. 기네스 펍으로 가 밤바다를 배경으로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기네스 파인트를 단숨에 마셨다. 검은 것이 밤바다인지, 기네스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했다. 바다가 기네스였고 기네스가 나였고 나는 바다였다.

나는 닥터 페퍼 밤을 한 잔 더 시켜 코타 키나발루의 열정적인 아티스트를 위한 잔을 들었다.

루프탑 바로 다시 올라가 위스키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누워서 밤하늘을 오래도 봤다. 이것은 온전한 나와의 독대. 팽창하는 우주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달과 별을 계속 보니 우주로 튕겨져 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벤치에서 청승을 떨다 다시 호텔방으로 내려왔다.

먹을 것도 많고 달도 예쁜 코타 키나발루다.


내일은 무인도에 간다, 보트 드라이버가 안 데리고 오면 2017년 버전 로빈슨 크로소 찍을 수도 있다. 이 세상을 다시 살게 될지, 저 하늘의 별이 될지.

내가 만약 저 세상에 먼저 가면 여러분들의 행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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