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갱 Nov 19. 2019

상하이를 여행하는 영 앤 미친

여행형 인간과 관광형 인간의 상하이

여행형 인간과 관광형 인간의 차이


숙소에서 바라본 정원의 모습

 일행분과 관광과 여행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묘하게 다른 두 단어의 차이를 정의하려면 긴 논의가 필요했다. 세 블록 정도를 걸으며 이야기한 결과는 관광은 가득 채운 여정이고 여행은 비워둔 여정이라는 것이다. 관광에는 많은 계획이 필요하다. 가야 하는 곳의 동선을 짜고 거기에 맞는 맛집들을 검색해 실패하지 않는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관광이고 항공편과 숙소를 결정하고 나면 (혹은 그 마저도 불확실하게) 불확실성에 의존해 실패를 감수하고 움직이는 것이 여행이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 움직일 거냐 하는 것은 노력의 여부로 갈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사람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관광형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행형 인간의 낙천적인 특성과 불안을 떠안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여행형 인간도 관광형 인간의 치밀함, 효율성을 따라가다가는 지레 지쳐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나는 여행형 인간 (나쁘게 말하면 노답)에 속하고 일행분은 관광형 인간(진짜 관광형 인간이 보면 여전히 여행형 인간이겠지만)에 속한다.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인간이 어울리며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집(과 생각) 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집이 센 편은 아니라 서로 하자는 것에, 가자는 것에, 먹어보자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관광형 인간의 온전함이 반쯤 채우고 여행형 인간의 불확실 성이 반쯤 채운 여행은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의 케미가 좋다.


 맛있는 상하이


상하이에서 먹은 아침, 점심, 저녁

 오전에 숙소를 나와 완탕을 먹었다. 동네 사람들의 아침식사를 책임져 주는 식당이었다. 한자시험 2급도 못 딴 쓰레기인 나는 글씨 대신 그림을 보고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보통 메뉴판 상단에 있는 메뉴 중 가장 비싼 음식을 시키면 맛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이 수요가 많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가 많은 음식을 비싸게 받게 한다. 그러므로 비싼 음식이 맛있다는 결론이 나게 된다. 참고로 나는 경제학 원론 C+을 받았다. 가장 비싼 완탕은 맛있었다. 젓가락을 소독해 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점심에는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에서 베이징 덕을 먹었다. 런치 코스 메뉴였다. 다양한 음식들이 정갈하게 나왔다. 나는 콜라를 마셨고 일행분은 맥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 내가 알코올 없는 음료를 마시고 일행분이 알코올이 있는 음료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대부분은 알코올 있는 음료를 내 앞에, 알코올 없는 음료를 일행분 앞에 놓아준다. 참으로 심각한 남녀차별이 아닐 수 없다. 꽤 비싼 레스토랑이지만 지금까지 얻어먹은 것도 있고 점심은 내가 사기로 한 약속도 있어서 시원하게 계산했다.


 저녁에는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서 지삼선과 꿔바로우, 이름 모를 수프를 먹었다. 저녁은 일행분이 사기로 했다.  일행분은 저녁에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점심엔 미슐랭 레스토랑, 저녁엔 현지인 식당, 점심엔 맥주 두 병, 저녁엔 논 알코올. 된통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저녁을 숙소 근처 와인바에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먹었다. 포도의 상쾌함이 농축된 이 맛. 점점 화이트 와인이 좋아진다.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 일행분이 계산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상하이는 미식가들의 도시다. 살면서 맛보지 못했단 다양한 식재료들과 요리법들이 맛의 스펙트럼을 넓혀 준다. 먹방을 테마로 다시 한번 방문해보고 싶어 졌다. 상하이 사람들은 체중관리를 잘하는 비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쓰는 일의 즐거움


새 핸드폰에 흥분한 손가락

 여행을 오기 전 같이 사시는 분의 핸드폰이 깨져있었다. 분명 술을 먹고 깼을 것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칠칠맞을 수가 없다. 돈이 없는 건지, 본래 무던한 사람인 건지 깨진 핸드폰을 한참 쓰고 심지어 새로운 아이폰이 나왔는데도 깨진 것이 상관없다며 계속 쓰겠다고 했다. 여행 전 날, 이렇게 깨진 핸드폰으로 다니는 일이 비즈니스에 있어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라고 니즈를 만들어 줬고, ‘프로를 프로답게’라는 클로징으로 면세점에서 아이폰 11 프로를 사게 만들었다. 내 것은 아니지만 비싼 물건을 샀다는 풍요로움의 감정이 나에게도 느껴져 행복했고 영업에 성공했다는 성취감도 좋았다. 

영롱하다 애플 워치

 그러자 반격으로 이 분은 애플 워치를 나에게 영업하기 시작했다. 자기만 당할 수 없다는 심보인 것 같다. ‘애플 워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라느니’, ‘애플 워치는 나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데 아직도 안산 게 이해가 안 간다느니’ 하는 말로 세뇌했다. 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게 충성하는지, 사이비 신자들이 왜 교주를 추종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목 위에 애플 워치 5가 있었고 잔고에서 60만 원 없어졌다. 하지만 얼웨이즈-온-디스플레이로 항상 빛나는 나이키 로고를 보고 있으니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폰 11 프로와 애플 워치로 탕진했다. 탕진은 재밌고 12월 목표 대출 금액 상환은 어려울 것 같다.



 대국의 기상



 토요일이라 그런지 상하이 어디든지 사람이 넘쳐흘렀다. 횡단보도도 줄 서서 건너는 것을 보고 왜 6.25 전쟁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유효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내수 시장을 생각해 보니 중국의 자신만만함이 어디서부터 였는지 알게 되었다. 젊은이들의 패션이 흥미로웠다. 세련됐다.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모습도 힙하다, 상하이의 모던함이 만들어내는 광경에 압도된다. 거리에는 아이들이 많고 도시는 묘한 긍정적인 기운이 있다. 부흥하는 상하이의 풍요로움과 쇠퇴하는 도쿄의 풍요로움의 느낌이 다르다. 이들이 경제의 주축이 되는 10년 뒤 중국이 기대된다. 중국 펀드를 지금이라도 좀 사놔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하이 여행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