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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Apr 25. 2020

서른 즈음 시작한 발레

운동을 취미로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어릴 때부터 운동은 꽝이었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이었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 바짝 마른 모레가 바람에 날렸다. 내후년 정년퇴직을 앞둔 할아버지 선생님의 지휘 아래 뜀틀 위 구르기를 하게 됐다. 앞구르기도 제대로 못 했지만, 다들 하니 못 하겠단 말은 못 하고 뜀틀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뜀틀 앞에 멈춰 뜀틀에 등을 대고 몸을 말아 앞으로 굴러간다 싶을 때, 급격한 고통이 찾아왔다. 표정이 구겨지고, 바닥에 퍽하고 떨어지며 울음이 터졌다. 선생님이 달려와 상태를 살폈다.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움직일 수 없는 고통에 몇 분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덕분에 한동안 정형외과를 들락날락 거리며 허리와 등을 치료받았다.  


몇 년 후, 뜀틀 수업이 있었다. 뜀틀 뛰기에 실패한 학생은 성공할 때까지 뛰는 방식이었다. 총학생이 쉰 명 정도였는데, 나는 뜀틀을 넘지 못한 최종 2인에 들었다. 수업시간이 끝나갈 때쯤 다른 친구는 성공을 하였지만 난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슬프게도 나는 평생 뜀틀을 넘어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체육 등수는 항상 전교권 뒤에 들었고, 체력장은 최하위권이었다. 체육 수업이 너무 싫어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남들 다 타는 자전거도 못 탔다. 언니가 몇 번 가르쳐줬지만 언니는 내가 안장에 똑바로 앉지도 못한다 했다. 구박을 받으니 흥미가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고맙게도 단짝 친구가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 했다. 안양천가 공터에서 며칠 가르침 받아 속도와 방향 조절은 못 하지만, 몇 초는 굴러갈 수 있게 되었다. 직장생활로 삶이 무료해진 27살에 자전거를 샀다.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왔다. 빈 공원 잔디밭에서 밤마다 넘어지며 혼자 연습을 하다 보니 잘은 못 타도 가까운 마트에 갈 정도는 되었다. 운동에 대한 자신감이 솟고, 지금 배워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배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취미 발레를 하는 분의 발레복 구입 후기를 보게 됐다. 연보라색 레오타드와 연분홍색 스타킹, 살구색 슈즈의 색과 하늘함이 너무 예뻤다. 발레가 자세교정에 좋다는 말에 귀가 팔랑거렸지만 나는 마르지도 않고 워낙 유연하지 않은 탓에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지인들과 퇴근 후 술을 마셨다. 라면이 먹고 싶어 친했던 언니와 술집 건너편 편의점에서 물을 붓고 있었다. 언니가 나이는 안 알려줬지만, 아마 삼십 대 중반 즈음이었을 거다.

"언니, 제가 인터넷에서 발레복 후기를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발레를 시작해보고 싶은데 제가 마르지도 않고 운동을 워낙 못 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런  게 어딨어. 해보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잘 맞을 수도 있잖아. 뭐가 안 말랐다고 그래. 그 정도면 괜찮아. 나이 들면 더 하기 힘들어."

"그건 그래요. 그리고 저 요즘 드는 생각이 영국에 가고 싶어요. 워킹홀리데이가 영국에 생겼더라고요."

"안 해보면 나중에 후회해. 내가 지금 그렇게 해외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없어. 옛날에 가볼 걸 하고 후회한다니까. 너 아직 어리잖아. 할 수 있을 때 해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내가 나이가 더 들면 이런 고민이 있을 때 실행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물론 해볼 수는 있겠지만 분명 더 힘들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무슨 발레야.'라는 생각은 이제 접고, 발레복과 학원을 알아보았다. 발레복을 사기 위해 강남에 있는 가게에 갔다. 몸매가 덜 도드라져 보이도록 검은색 레오타드를 샀다. 시작했다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저렴한 것들로 구매했다.

막상 학원에 가보니 몸매는 중요하지 않았다. 팔을 휘적대니 탈춤 같아 보시던 동작들도 점점 모양새가 났다. 몇 주는 다리가 후들거려 계단을 힘들게 걸었다. 두 달이 지나자 등근육이 잡히고, 배가 단단해졌다. 뛸 때 몸이 무거운 게 싫어 적게 먹다 보니 살이 빠졌다. 발레를 한창 즐길 때 영국에 가야 해서 발레를 반 년 배우고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 온 지 4년 차다. 여전히 발레를 배운다. 한국에서 발레를 계속했더라면 엄격한 커리큘럼으로 꽤 잘했을 테지만, 영국은 수업이 엄격하지 않고, 나도 타지살이로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 학원을 바꾸게 되어 늘지 않고 살도 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발레를 즐긴다. 

올해 남자 친구와 볼륨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왈츠, 살사, 탱고 같은 춤을 배운다. 발레를 배운 것이 스텝과 몸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 백발의 노인 커플도 우리와 같이 배운다. 할아버지는 삐그덕 대서 선생님으로부터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즐기며 배운다. 음악에 몸을 움직이고 땀을 내다보면 기분이 좋다.


학창 시절 나는 운동을 못해서 운동이 싫었다. 잘은 못하더라도 학교에서 즐기는 법을 알려줬더라면 더 많은 운동을 진작에 배웠지 않았을까. 못해도 즐길 수 있다. 도전에 대한 주저함이 나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한계 때문일 수 있다. 그 한계가 나의 한계라고 오해하고 평생 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될까 의심하며 자신을 가둬두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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