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은근한 폭력의 세계. 예민함은 죄악인가.
관대한 여자. 그것이 내가 7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얻은 타이틀이었다.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기간보다 어느새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산 기간이 더 길어졌다.
‘열렬히’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나름대로 꾸준히, 근면하게 사회생활을 해 온 30대의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학생이었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나는 여유와 웃음, 의욕을 잃었고 아주 약간의 통장 잔고와 함께 흰머리, 팔자주름, 그리고 화병을 얻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명확하게 얻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직장인으로서의 필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대한 여자. 그것이 내가 7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얻은 타이틀이었다.
소주 두 세병을 마셔도 다음 날 또다시 술 약속을 잡곤 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음료를 원 샷 했는데도 어제 마신 술은 좀처럼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구역질을 하고 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다짐을 한다. 또다시 이렇게 술을 마시면 나는 개다. 정말이지 개다.
“주연 씨, 밥 먹으러 가야지?”
“아……, 오늘은 안 먹으려고요.”
“어? 얼굴 보니까 어제 술 좀 마셨는데? 딱 보니까 남자들이랑 마셨구먼? 재밌었나 봐?”
“어우, 요새는 말 거는 남자들도 없어요. 저도 퇴물 다 됐나 봐요. 속상해요.”
나는 모나리자를 떠올렸다.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곤 얼른 너그러운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친다. 무려 칠 년이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칠 년의 내공이면 이 정도 상황쯤이야 이젠 관대하게 넘길 수 있는 스킬이 생겨야 맞지 않겠는가.
“에이그, 여자가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니면 어떤 놈이 데려가려고 하겠어? 이상한 파리 떼나 달라붙지. 고만 방황하고, 얼른 적당한 남자 물어서 가버려.”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의지만으로 버티기 힘들게 만드는, 나를 괴롭혀온 요소들은 매우 많았다. 은근한 기싸움, 오지랖,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슬럼프와 매너리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이 교묘하고 은근한 공격.
상상을 해본다.
역공. 만일 민 부장의 말에 ‘부장님, 방금 말씀, 제가 똥이라는 거예요? 저 기분 나빠요. 앞으론 그런 발언 삼가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갑.분.싸.
침 넘기는 소리마저 거대하게 들릴 정도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고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것이다. 민 부장은 울긋불긋해진 얼굴색과 당황의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주연 씨, 농담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자는 과연 민 부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될 것인가.
아마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예민보스로 불리며 사내 화제의 인물에 등극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내할 정도의 용기 있는 사람은 못됐다.
나는 가만히 민 부장을 바라보았다, 어떠한 의도도 담겨있는 것 같지 않은 천진한 표정의 민 부장이 빙글빙글 웃고 있다. 이 주제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는 당신의 말에 아무런 반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민 부장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직장인 생활백서’와 같은 매거진이나 특집 칼럼 따위는 몇 년 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온 몸으로 체득한 실제 경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내가 가진 경험만으로도 이미 ‘홍주연의 직장인 서바이벌 가이드’, ‘직장인 생존비책’과 같은 책을 몇 권이나 출판하고도 남을 판이니 말이었다.
물론 나만의 특별한 처세술이나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글과 말을 통한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을 통해 학습된 그것 사이에는 분명 큰 간극이 존재했다.
어찌 되었건 나의 실재적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직장인들이 갖추어야 할 그 센스와 역량들은 거창한 업무 능력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눈치 잘 보기, 맞장구 잘 쳐주기, 항상 겸손을 잃지 않기, 튀지 않고 중간을 유지하기, 적을 만들지 않기 등등.
그리고 그것을 한 줄로 줄여 본다면 이렇다.
‘직장에선 튀지 않고 관대해야 무탈하고 장수한다.’
그리하여 나는 전략을 취하기로 하였다. 관대한 여자가 된 것이다.
“그전에 말했던 부장? 그 사람 원래 좀 눈치도 없고 그렇다며. 그냥 넘겨.”
Y의 전화였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우정은 음주 다음 날 출근은 제대로 했는지 확인 전화가 오지 않으면 이젠 어색하기까지 한, 매우 규칙적이고 견고한 루틴을 만들어냈다.
“만날 결혼 못한다고 걱정, 걱정, 아니 그런 오지랖을 떨 수가 없더니만 오늘은 어제 남자랑 합석했냐면서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니면 어떤 놈이 데려가겠냐고 나더러 파리 떼나 달라붙을 거라잖아.”
“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 정도면 널 예뻐해서 걱정하는 거네. 착한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진 마.”
“아니, 나도 그 앞에선 기분 나쁜 티 안 냈지. 아니, Y야. 나 그냥 웃으면서 넘겼다니까.”
비극은 이 지점에서 온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라는 말은 발생된 문제를 ‘별 것 아닌 일’로 되돌린다. 상처를 주는 누군가의 발언보다도 내가 지닌 예민함이 문제의 시발점이 된다.
‘예민하다.’는 말은 직장인에게 결코 칭찬의 말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이 말만큼 사회생활에 매우 부적합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 있었던가. ‘그 사람, 너무 예민하더라.’라는 말에는 ‘그 사람, 참 둥글지 못하고, 모나고, 아직 덜 깎인 것 같고, 미성숙하더라.’와 같은 부정적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예민함과 반대되는 ‘둔감함’이야말로 무탈한 직장생활을 위한 센스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였다. 민 부장한테 했던 대답과 태도를 떠올리며, Y에게 내가 얼마나 둔감함의 능력을 발전시켜 왔는지, 내가 얼마나 관대한 여자인지 더 드러내지 못한 것에 대한 가벼운 후회가 일었다.
“그냥 넘겼지? 난 또. 괜히 일 커지는 줄 알고 놀랐잖아.”
“야, 그런 말 하는 것도 용자들이나 하지. 나 쫄보인 거 모르냐.”
“주연아, 우리 회사 용자 알지?”
“알아, 알아. 기억 나.”
벌써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Y의 회사에서 은근히 까 내리는 발언을 반복 해온 과장급의 선배에게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한 패기 있던 신입사원의 이야기. 의외의 일인 건지, 아님 당연한 일인 건지 그 후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더 올랐던 것은 문제 발언보다는 그 사건을 ‘하극상’이라 칭함과 함께 그것을 받아들이는 예민함과 문제를 제기한 당찬 태도였다고, Y는 무척이나 흥분해서 말했다.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아냐? 헛똑똑이라면서, 대체 왜 그랬냐는 거야.’
어디 Y의 회사의 신입사원뿐이었겠는가. 둔감함이 결여된 사람은 종종 현명하지 못한,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칠한, 사회성이 부족한, 결국 직장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적응자의 낙인이 찍힌 채 은근히 소외되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점차 둔감함을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나는 쉽게 Y에게 동조의 뜻을 나타내진 못했다. 그 ‘하극상’의 당사자, 그 ‘용자’가 나의 동료였으면 단박에 진심으로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을까. 방금 전 있었던 민 부장의 발언에 ‘부장님, 지금 제가 똥이라는 거예요?’라는 소리를 삼킨 것에 대해,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오늘도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주연아, 근데 아줌마 되잖아? 진짜 너희 부장? 그런 말은 문제도 아니야.”
“뭐가? 어떤 게?”
“야. 너는 막 대놓고 너 앞에서 성적인 농담은 안 하지? 나는 이제 아줌마라고 같이 재밌자는 듯이 농담 치고 그런다니까. 알 것 다 아는 사람 취급하면서. 아,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출근하는 날에 사람들이 막 얼굴 핼쑥하다고 살 빠진 것 같다면서 농담 던지더라.”
딱히 유쾌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유머’로 통용되는, 유독 기혼자들에게 심하게 가해지는 노골적이고 천박한 성적 농담을 나 역시 여러 번 목격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혼자와 예민함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럼 넌 뭐라고 하는데?”
“나? 나도 그땐 저희 아직 이십 대잖아요. 젊잖아요. 그랬었지. 야, 나도 이제는 드립 치면서 똑같이 받아치지 뭐. 아줌만데.”
“Y야, 너? 너가 그랬다고?”
친구들 중 가장 모질지 못하고 여린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그런 Y가 억센 농담에 함께 맞장구를 치고 있는 상상을 하니 이리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응. 결혼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막 옆에서 과한 농담 하거나 하면 정색은 못하고, 대신에 못 알아듣는 척했거든. 지금은 그렇게 못 하지.”
Y가 이어 말했다. Y의 말이 옳았다. 사회 초년생, 지금보다 외부의 자극에 민감했던 시절에, 예민함을 감추는 것에 서툴렀던 시절에, 어떤 불편한 상황에서 그 불편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을 때 우리는 종종 도피의 전략을 사용하곤 했다. 못 들은 척, 혹은 못 알아들은 척. 그리고 그것은 얼마간 효력을 발휘하였다.
삼십 대가 되면서 도피의 전략에 차질이 오고 말았다. 알 것 다 아는 레벨 30의 캐릭터에게 초보 캐릭터의 도피 전략은 더이상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써왔던 도피의 전략에서 벗어나 다른 전략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관대한 여자가 되었다.
“때가 묻을 대로 묻은 척한다니까. 난 이제 섹드립은 섹드립으로 받아쳐.”
Y가 무심하게 말했다.
“주연 씨, 점심 안 먹었어? 다이어트하는 거야? 남자들 너무 삐쩍 마른 여자 안 좋아한다.”
짧은 치마 입지 말라, 소문 안 나게 처신 잘하라 훈계를 아끼지 않던 이 과장이었다. 낮은 젠더 감수성, 은근하고 교묘한 폭력의 세계는 특정 문제인물이 만든 특별한 세계일까. 아니, 결단코 아니다.
나는 이 과장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나이 드니까 빠져야 할 데는 안 빠지고, 안 빠져야 할 데만 빠지는 것 있죠?”
관대함은 대단한 역량일까. 둔감함이야말로 직장인들이 필히 갖추어야 할 센스일까.
은근한 폭력의 세계는 늘 견고하게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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