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여자는 쉬워야 돼요? 내겐 너무 무례한 세상
다수의 삼십 대 여자들이 맞닥뜨리고야 마는 불편한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삼십 대 여자면 쉽게 생각해도 돼요?
누군가에겐 ‘난 전혀 그런 적 없는데?’ 남 일처럼 느껴지는 쓸 데 없는 고민 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무슨 저런 생각을 해?’란 생각이 들게끔 하는 비주체적이고 고리타분하며 한심한 고민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인터넷 속 여러 개의 저 같은 고민이 담긴 페이지를, 그리고 저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페이지를 접한다.
‘30대 여자입니다. 첫 만남에 잠자리 이야기를 하는 남자, 왜 이러는 걸까요?’
‘나랑 만났던 연하남. 연하 여친 사귀더니 180도 변하더라. 날 이용했던 건가?’
‘이십 대 때는 정말 이러지 않았는데, 삼십 대가 되니 이상한 남자들만 들이대요.’
어쩌다 발견하는 귀한 글도 아닌데, 나는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남들의 시선과 판단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강력한 비판 욕구와, 나만 당당하면 어떡해? 남들은 루저로 볼 수도 있잖아. 하는 못난 불안감에 둘러싸인 공감.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이십 대에서 삼십 대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세상이 많은 부분에서 내게 점점 무례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저 같은 고민이 결코 ‘특정 집단’이나 ‘소수’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란 소리다.
오랜만에 넷이 다 모인 저녁이었다. 내일도 출근이니 술은 마시지 말고 간단히 커피나 마시면서 얘기나 하자는 W의 제안으로 우리는 종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K는 연달아 두 번의 이별을 한 탓인지 약간 푸석푸석해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굳게 다문 입에서 오히려 강인함이나 결연함 같은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이내 걱정을 거둬들였다. 그래, 역시 삼십 대 연륜. 두어 번 만나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쯤이야 몇 장 읽다 도저히 완독의 자신이 없다고 판단되는 책을 덮는 것만큼이나 별 일 아니지 않은가.
“결국 세 번 만나고 헤어진 거야? 어떻게 헤어졌는데?”
어차피 모로 가도 가야 할 오늘 만남의 목적. W가 총대를 메고 목표를 향한 묵직한 직구를 던졌다.
“음……. 아니야, 됐어. 이건 사귀었다고도 말 못 해. 그냥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고 치고 넘어가자.”
K가 더는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다시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말하기 싫은 눈치가 아닌 것 같은, 아니 오히려 배출로 그 일을 털어내 버리고 싶은 것만 같은 K의 미묘한 표정을 포착한다.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와 눈빛 교환을 한 W가 목을 가다듬으며 재도전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흠. 야야, 왜에. 어떻게 된 건데.”
“하. 진짜 이상한 놈이었어.”
결국 K가 못 이기는 척,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날의 전모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날 너네 만났을 때에도 뭔가 좀 긴가민가하다고 했잖아.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만났는데, 저녁을 엄청 허겁지겁 먹는 거야. 좀 쎄했지. 그러더니만 가자고 하더라고.”
“집에?”
눈치 없는 Y의 산통을 깨는 물음에 W가 Y의 무릎을 탁 치며 가만히 있어보라는 입모양으로 Y의 끼어듦을 저지한다.
“차에 탔더니만, 역시나 모텔 쪽으로 방향을 틀더라니까.”
“묻지도 않고? 그건 아니지. 무례하다, 그 남자.”
그 둘의 바로 직전의 만남이 ‘낯선 천장’ 사태였다는 것을 이미 잊었다는 듯 내가 말했다. K와 그 남자의 주체적 욕망이 초래한, 서로의 합의 하에 일어났던 이른바 ‘두 번째 만남에서의 잠자리’를 언급하는 것은 왠지 지금 이 순간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더 들어봐. 사귀자고 하고 어쨌든 첫 데이트인데 나도 좀 그런 거야. 그래서 싫은 티를 냈다? 그니까 이 사람이 한숨을 쉬더니만 이렇게 말하는 거야. ‘K 씨, 이 나이에 밀당하거나 튕기는 거, 진짜 아니지 않아요?’라고.”
‘모텔 데이트만 고집하는 남자 친구, 일반적인가요?’ 나는 K를 바라보며 오늘 아침에도 읽었던, 핸드폰 액정 밖으로까지 불안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던 한 삼십 대 고민녀의 사연을 떠올렸다.
“그러더니만 내 표정을 보더니 알았다면서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거야. 그러더니 엄청 거칠게 운전을 하더라? 화난 것처럼. 지가 왜 화가 나? 나를 어떻게 생각했길래? 진짜 웃기지 않냐? 나도 열 받잖아. 참다 참다 내가 말했어. ‘근데 저희,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뭐라는 줄 아냐?”
“뭐래?”
K를 제외한 우리는 합창하듯 묻는다. 그 남자가 뭐래?
“알겠대, 그럼. 일 초 만에.”
띠용.
배드 엔딩일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 반응까진 전혀 예상치 못했다. K가 헤어짐을 고한 줄 알았는데, 이건 명백하게 K가 차인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머리가 울린 것 같아 나는 머리를 살짝 감싸 쥐었다.
보통은 그런 경우 사과를 하거나, 화해를 위한 대화를 시도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 날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던가? 아니, 관계를 정리할 거라고 하더라도 좀 더 예의 있는 다른 방식을 택하지 않던가? 쿨하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한 ‘알겠다.’는 그의 대답은 솔직히 내게도 매우 놀랍고 생소한 반응이었다.
“야, 진짜? 야, 그 남자 정말 보통 아니다. K, 너 괜찮아? 차라리 금방 정리한 게 다행이야.”
Y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K를 위로했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잖아. 내가 너희한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만나기 전부터 카톡도 약간 그러긴 했어. 아쉬울 게 없다, 그런 태도? 첨부터 지가 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는지. 야, 그 사람 대체 왜 그런 거냐? 확실히 나한테 호감이 있긴 했는데, 진짜.”
“그 사람은 다른 여자 만났어도 그랬을 거야. 그냥 개인 차지, 뭐. 너가 잘못한 것도 없고, 의미 부여할 것도 없어. 그냥 잊어.”
“서른둘이나 먹어서 이런 남자를 만났다는 것도 진짜 창피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건네며 K를 위로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일 뿐이야.
그러나 난 ‘분명 내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냐’며 그 이유를 찾는 K에게 속으로 아주, 매우, 굉장히 미안해서 결코 말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른둘이라 그런 거야. K야. 그 남자가 했다던 이 나이에 튕기는 것, 정말 아니지 않아요?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냐. 삼십 대랑 이십 대랑 같냐는 소리라고. 튕기는 것도 정해진 나이에나 그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라고. 삼십 대의 여자는 선택권이 쪼그라든 약자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그 사람은.’
그러나
어디 그런 경우가 K의 이번 만남뿐이었겠는가.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내 주변 또한 내게 묘하게 달라진 태도를 취했다.
이를테면, 내게 말도 안 되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나와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을 추천하면서 한 번 만나볼래?라고 한다든지, 몇 번 만났던 남자가 결국 마음에 들지 않아 정리했다고 하면 갸우뚱거리면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든지 하는 행동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태도에서 알아챌 수 있는 속마음은 무엇이냐. 러프하게 말하자면 ‘넌 이제 젊고 어리지 않은데, 왜 아직 주제 파악을 못 하고 튕기냐.’는 거다.
한동안은 나는 주변인들의 그런 태도에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무례하게 굴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태도에는 삼십 대 여자는 더 이상 젊지 않고, 사회적으로 혼기가 꽉 찬 나이이기 때문에 이십 대 보다 남자를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현저히 좁을 것이라는, 또 그런 이유로 관계에 있어서 약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삼십 대 여자는 불안하고, 조급하며, 또 안달 나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는 것을. 매우 비참하고, 불편하고, 또 외면하고 싶지만 말이다.
그러니 K의 소개팅 남이 던졌던, ‘K 씨, 이 나이에 밀당이나 튕기는 거, 진짜 아니지 않아요?’라는 말은 우리를 단지 그 남자의 귀차니즘을 거부하는 오싹한 성격을 탓하는 데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불편하지만 맞닥뜨리게 되고야 마는 바로 그 고민의 지점으로 인도한다.
삼십 대 여자는 쉬워도 되나요?
“그때, 주연이랑 나랑 얘기할 때 그랬잖아. 남자들이 이제는 사귀자는 말도 필요 없는 줄 안다고. 더 가볍게 생각한다고.”
“어, 인정. 너네도 알잖아. 나 그 연하남이랑 잠수남.”
그래, W의 말이 맞다. 나는 몇 번의 그런 케이스들을 떠올려보았다. 모든 일상을 다 팽개치고 몇 주 간이나 막무가내로 대시해오던 리얼 러버, 진정한 사랑꾼 같던 연하남이 알고 보니 오래 만난(결코 헤어질 생각 없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거나, 첫 만남에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런다’며 무례한 요구를 하더니 내가 거절하자마자 그 호감은 어디다 잡숴먹었는지 곧바로 잠수를 타던 남자. 이것은 비단 나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제 막 남자를 어떻게 알게 되잖아? 이 남자들이 사귀자는 말을 안 해.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 이거야. 그러면서 성적 욕망을 드러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 왜냐? 우리가 그걸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아니, 아니 뭐, 받아들일 수도 있지. 원하면 먼저 요구할 수도 있는 거고. 물론 나도 꼭 무슨 여자들이 성적 욕망도 없고, 기다렸다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닌데. 내 말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지하게 만날 생각도 없으면서 단지 쿨한 이미지만 기대한다는 거, 그건 진짜 기분 더럽다니까. 아, 야 K, 너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기분 나빠 말고. 그건 그 남자가 진짜 이상한 거고.”
W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나는 연하남과 잠수남을 떠올리면서 W의 저 연설은 단 한 문장, 한 단어도 지적할 게 없는, 모든 것이 명백하게 옳은 99점짜리라고 생각했다. K를 위로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에서 딱 1점이 빠진.
“W, 너는 남자 친구도 있는 애가 그런 경험은 또 왜 그렇게 많이 하셨어. 팜므파탈이야? 뭐야?”
“야, 아니야. 나는 항상 남친 있다고 밝혀. 근데 그런 애들은 내가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걸 크게 문제라고 생각도 안 하는 거지. 내가 쿨하게 받아줄 줄 알고. 개자식들이지. 아, 갑자기 빡친다. 그냥 소주 먹자고 할 걸. 2차 갈래?”
분위기를 풀어보려 던진 Y의 장난스러운 농담은 실패했다. 그간 쌓였던 것이 많았는지 W는 아주 진지하게 개자식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나도 생각했다. 그냥 술 마시자고 할 걸. 종로 보쌈 맛있는데. 그 개자식들도 안주 삼아 마셨음 딱인데.
“아니, 맞아. 나도 그 날은 정말 내가 원해서 간 거라니까. 아, 근데―, 아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날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만나는 여자 있던 거 아니야? 야, 나 지금 생각하니까 갑자기 의심스러워. 걔 여자 있었던 것 같아. 아, 내가 왜 사귀자고 했지? 미치겠다. 하, 내가 진짜 쉬워 보였나?”
“너는 여자가 무슨 그런 말을 쓰냐. 너무 그렇게 너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니까. 곱씹을 필요도 없다니까.”
‘누가누가 더 개자식을 만났나.’ 한껏 뜨거워지던 개자식 배틀은 ‘혹시 나 쉬운 여자로 보인 것 아니야?’라는 K의 자책으로 한 순간에 차가워지고 만다. 말은 하지 않아도 나는 느끼고 있다. 다들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저 자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K의 비참한 감정에 대해 말이다.
“야, 우리 이십 대 때는 이런 고민은 안 하지 않았냐?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우리가 비록 우리 주변을 죄다 휩쓸었을 정도로 잘 나가던 왕년의 스타급은 아니었지만, 그런 평범한 우리에게도 이십 대의 사회와 삼십 대의 사회는 결코 같지 않았다.
사회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미묘하게 건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례한 요구가 거절당하자 바로 잠수를 탔던 그 ‘잠수남’처럼 지나치게 호감을 드러내면서 첫 만남에 무례한 요구를 한다거나,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더라도 서서히 잠수를 타며 관계를 정리하는 케이스들을 나는 주변에서 꽤 많이 보고 겪었다. 특히 서른이 지나는 그 시점부터 말이다. 대체 그들은 왜 조심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한 몇 번의 무례한 케이스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나서 나는 그들이 상대의 여자에게 매력을 느껴 자연스럽게 호감을 갖기 이전에, 삼십 대의 여자에게 ‘금기가 깨진 여자’로서의 만들어진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십 대 내내 금기시 해오던 여자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성적 실천이 자유로운 쿨한 여자로서의 이미지 말이다.
일상을 내팽개치고 내게 몇 주 간이나 대시했던, 사랑꾼인 줄 알았던 연하남은 정말로 사랑꾼이 맞긴 했다. 우연히 보게 된 그의 SNS 속 ‘진짜 연애’를 하는 수많은 사진들은 그가 내가 아닌 ‘진짜 여자 친구’의 리얼 사랑꾼임을 증명했으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인정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래. 그는 나에게, 그리고 삼십 대 여자의 ‘쿨한 여자’의 이미지에 호기심과 로망을 가졌을지언정 나와 진지하게 연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미묘한 협박과 폭력의 세상에 던져졌음을 깨달았다. 수동성이 미덕이 되고 성적 주체성이 금기시되었던 이십 대에서 탈출하면서 새로 진입한 삼십 대의 사회는 내게 얼마간 성적 주체성을 인정해주는 듯했지만 동시에 여자로서, 그리고 연애 상대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쉬운 여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협박을 해댔다.
보이지 않는 무지막지한 폭력의 세상 속, 관계에 있어서 약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삼십 대 여자는 조급하고, 또 안달 나 있을 것’이라는 편견과 ‘삼십 대 여자는 금기가 깨진 쿨한 여성’ 일 것이라는 편견들 속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룰들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그들이 보이는 호감에 ‘어떤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경계하기, 욕망에 응답하더라도 ‘세 번은 만나보기’, 호감을 가져도 겉으로는 철벽을 치고 방어의 울타리를 두르기, 만만해 보일만한 틈을 보이지 않기와 같은 ‘나는 쉬운 여자가 결단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룰’들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룰을 세우고 깐깐한 제한을 설정한다고 한들, 사회가 씌우는 ‘쉬운 여자’의 굴레에서 완벽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K처럼 남자가 나를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전긍긍한다든지, 누군가를 만날 때엔 내가 쉽게 보일 수 있는 어떤 여지를 남기진 않았나 하는 자기 검열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유부녀가 되거나, 아니면 그 세계에 관심을 끄는 것뿐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다. 삼십 대면 쉬워도 돼요?
결국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체 이런 한심한 고민은 누가, 왜 쓰는 거야?라고 반응했던 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했고, 서점 매대에 진열돼 있는 연애 코치들의 조언에 관한 책을 슬쩍 집어 들곤 누가 볼 세라 조심스레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 있게 제시한 답은 풀이해 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그렇게 안 보이면 되잖아. 네가 그렇게 행동을 안 하면 되잖아.’
약자가 되고, 쪼그라들다 못해 나의 자존심과 자존감마저 바짝 찌그러지고 뭉개지는 것 같았다.
아, 세상은 우리에게 왜 이리 무례해진 걸까?, 아님 내가 세상에 예민해진 걸까?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소주를 마실 걸.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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