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14 - 절교

절교. 영원하리라 믿었던 우정 서약의 파기.

by 홍마담
[야. E 곧 애 낳는대]


순댓국밥집이었다. 생리 이주 전만 되면 도저히 넘치는 식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럴 때면 밤이건 새벽이건 간에 혼밥으로라도 식욕을 잠재워야만 분출하려 하는 짜증을 다스릴 수 있었다. 주로 칼칼한 스타일의 국밥이나 낙지볶음, 닭발 등의 매콤한 것들이 생리 전 혼밥의 주 메뉴로 선택되었다.


[야. E 곧 애 낳는대]


미리 다진 양념이 풀어져 나온 순댓국이 식탁 위로 오르자마자 때맞춰 도착한 W의 카톡은 나와 W와 함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E가 곧 엄마가 될 것이란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근데 애가 안 내려와서 제왕절개 해야 된다나 봐.]


연달아 도착한 W의 카톡은 E의 출산이 단지 마냥 설레거나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는, 내게 공감을 은근하게 요구하는 걱정과 우려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떤 답을 해야 할까 만들어지지 않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굴려보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나는 결국 답장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것은 나와 E가 공식적으로 절교한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혼밥이 결코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혼밥은 물론 혼등교, 혼하교, 심지어 혼화장실까지도 용납되지 않던 시절. 모든 것을 친구와 꼭 함께 해야 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 시절의 우정의 가치를 과연 어떤 문장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감히 데카르트의 말을 빌려 표현하건대 ‘나는 친구가 있다. 고로 존재한다.’ 정도의 문장은 돼야 그 우정의 깊이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하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하는 그 관계는 그러나 생각보다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시작된다. 우연히 같은 반에 배정이 되어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든지, 우연히 같은 모둠이 되었다든지, W와 나, 그리고 E처럼 체육시간 2열 종대로 맞춰 선 줄에서 엇비슷한 키로 인해 우연히 함께 앞, 뒤, 옆자리에 서게 되었다든지 하는 매우 사소한 이유로 말이다.


키가 엇비슷하다는 우연한 공통점뿐이었던 사소한 시작의 관계는 그러나 결코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친구라는 관계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관계의 사소하지 않음을 증명할 ‘삼총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진부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그 당시 핫했던 카메론 디아즈와 드류 베리모어, 루시 리우의 기막힌 지성미와 죽이 척척 맞는 환상의 파트너십을 의식한, 썩 괜찮은 이름이었다.


작은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여진 그 관계는 순식간에 불어나 단단히 뭉쳐진 몸집을 내보이며 이제 더 이상 우연이 아닌, 단순할 수 없는 사이임을 증명해대곤 했다.

그러한 증명의 행위, 삼총사의 우정콤보를 발동시키는 다양한 공유의 행위들이 있었다.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일상의 공유에서부터 ‘있잖아…’로 시작하는 첫 남자 친구, 첫 키스와 같은 비밀 이야기들의 공유, ‘사실은…’으로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복잡한 가정사의 공유와 같은 것들 말이다.

연대와 단합의 행위도 있었다. 내게 고백한 두 명의 남자 중 누가 남자 친구로서 괜찮을까 고민했을 때에도, 외박의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거짓의 시나리오에도, 그리고 인생의 물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학 선택에까지 항상 삼총사의 멤버들이 권한을 가지고 참여했다. 그것은 카메론 디아즈와 드류 베리모어, 그리고 루시 리우, 그녀들이 한 팀이라는 사실에 딴죽을 걸 수 없는 것처럼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관계를 농밀하게 만드는 그러한 행위들이 불러온 유대감과 강한 결속력은 우리에게 ‘진짜 우정’, ‘진짜 친구’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변치 않을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영원한 사랑을 서약하는 신랑 신부처럼, 우리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평생에 걸쳐 가장 견고한 사이일 것임을 맹세했다.


그 때의 우정 서약서가 존재했다면 아마도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제일의 지지자이자 파트너로서 우리가 평생 동안 만날 모든 관계를 통틀어 서로에게 가식 없이 솔직하고, 어떠한 이해관계도 얽혀있지 않은 채, 가장 믿을 수 있으며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일 것을 맹세합니다.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은, 이만큼 순수한 날것의 ‘진짜 친구’를 지금이 아닌 시절에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가족만큼의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 그 누구보다 단단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존재. 그리하여 인생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야말로 그녀들은 당시 나의 세계의 전부, 삶의 의미나 마찬가지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던 셈이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 위에 우리는 켜켜이 우리의 진짜 우정을 쌓아갔다.

가족보다 가까운 내 편. 그것이 당연하게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진짜 친구’, ‘삼총사’의 관계에 서서히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다. 졸업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단순히 법률상 미성년에서 성년으로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목표를 가진 채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제야 동일하지 않은 나의 취향이 점차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돈가스와 파스타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나의 최애 음식은 사실 국밥 종류라는 것, H.O.T. 오빠들의 노래보다 실은 쿵쿵 가슴을 울리는 비트가 강한 힙합을 들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 나와 유독 잘 맞는 술은 맥주보단 소주라는 것에서부터 남자를 만날 때 까무잡잡한 피부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것들까지도.


항상 함께였던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또한 각자 조금씩 달라졌다. 그 전과는 다르게 스스로 결정해야 할 주체적인 선택이 확대되면서.

나와 W는 같은 대학교에, 우리보다 조금 더 치열했던 E는 다른 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고 속박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각자가 꿈꿔왔던 청춘의 것들에 몰두했다.


나의 청춘의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었다. 새로운 만남, 자유로움, 즐김. 나는 신입생 때부터 내내 댄스부 활동에 빠져 지냈다.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는 것에도 적극적이었으며 미팅도 여러 번 했다. 사실상 공부는 뒷전이었던 셈이었다. 숨 막혔던 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의 묵혔던 한이라도 풀 듯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에 반해 E에게 있어 청춘의 이미지란 교환학생 준비, 취업 스터디, 각종 공모전과 아이디어 경진대회와 같은 것들이었다.


점차 우리를 묶어주던 공통 관심사,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었던 라이프스타일은 어긋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H.O.T. 의 팬이고, E는 젝키의 팬인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와 E의 대화를 이루는 테마들, 그리고 의견까지도 점점 틀어지고 있었다.


만남의 횟수와 연락의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인지하고 있었다. 서서히 삼총사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그토록 견고했던 관계가 연약한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것이 시작될 때에 비해 결코 우연적이지 않았다. 젠가의 나무블록을 하나씩 빼내다 보면 결국 무너지고야 마는 것처럼, 그토록 견고했던 우정을 이루는 블록들이 하나 둘 빠지며 우리 관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삼총사의 모임에서 당시 미팅으로 만났던 남자 친구와의 갈등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을 때 E는 어떤 공감표현이나 조언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대학생 벤처 창업에 대한 주제였다. 그 순간 화끈거리는 열감이 온몸에 퍼져 나감을 느꼈다. 위험한 자리의 블록 하나가 빠지는 순간이었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우정의 서약이 흔들리고 있었다.

공통점이 없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도통 맞지 않는 대화 주제와 각기 다른 가치관. 그것은 우리 관계의 거리가 더 이상 예전만큼 가까울 수 없다는 것, 예전처럼 모든 것을 함께하는 만남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나와 도통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E와의 대화가 예전만큼 편하지 않았고 그것은 E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토록 자신 있게 확신했던 ‘진짜 우정’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우리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한 달에 한 번에서 계절마다 한 번,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만남의 횟수는 적어졌다. 더 이상 우정콤보를 발동시키는 공유의 행위, 연대와 단합의 행위는 없었다. 다만 순수할 때 만나 쌓아온 관계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의 만남이 존재했을 뿐. 그마저도 맞지 않는 모양의 조각을 억지로 끼워둔 것 처럼 서로에게 편안함보다는 상처를 남기는 만남이었다.


부케는 대학교 동기가 받기로 했다고, 어느 날 E는 그녀의 결혼을 무미건조하게 알려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우정 서약이 파기되었음을 선언했다.




나는 한때는 영원할 것 같았던, 내 세계의 전부였던,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했던 친구 E와 그렇게 우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후련하기도 했다. 맞지 않는 옷, 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던져버린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감당할 수 없는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긴 세월 퇴적암처럼 쌓인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를 때, 조각조각 파편처럼 박혀있던 추억이 준비 없이 빼내어질 때, 그럴 때면 내내 잠잠하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곤 했다.


그러다 온 몸이 텅 빈 듯 공허한 마음이 지속되기도 했다. 마치 그 시절이 내게서 통째로 송두리째 뽑혀 나간 것처럼.


왜 나는 너와 이별해야만 했을까.


나는 몇 번쯤 잊히지 않는 E의 번호를 눌러봤었다. 친구라는 관계. 그 마법의 이름이 주는 특권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메시지를 보내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관뒀다.


우리는 여전히 진행형인 연속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십 대, 그 익숙한 짧은 토막의 상대만을 진짜의 모습이라고 착각한 채로, 어른이 되어가는 상대를 지켜봐 주고 존중해 주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로 치유될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긴 채.


다시 되돌아간다면 E와의 관계를 그르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아슬아슬한 관계를 다시금 시작한다는 것은 젠가가 무너져 널려있는 토막들 위에 다시 나무토막을 얹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한 번 깨진 컵은 다시 붙일 수 없다는 명언은 비단 사랑문제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야, 홍주연 언제까지 쌩깔 거냐]


이제야 의도를 드러내는 W의 카톡을 보면서 [어 영원히]라는 답장을 쓰다가 내가 순대를 모두 건져 뒤집어 둔 밥뚜껑 위에 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떠올랐다. 순댓국밥의 순대를 건져내 제일 마지막에 먹는 것이 실은 E의 버릇이었다는 것이.


서른이 지나고 다양한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많은 관계가 모래알처럼 손 틈새로 빠져나갔다. 나는 사그라드는 무미건조한 관계들에 얼마간 익숙해졌고 더 이상 우정을 감히 데카르트의 말을 빌려 표현하지 않게 되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여전히 무뎌지지 않는 관계는 존재한다는 것을.


얼마 전, 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설산 위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우습게도 네가 떠올랐다. 잘 지내냐고, 나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요란했던 사랑이 끝난 후 혼자 오롯이 견뎌내야 할 고통의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달았듯이 네가 떠난 후 우묵히 파인 자리에 남겨진 그리움 또한 온전한 내 몫으로 남는다는 걸,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우정 서약은 파기되었고 영원할 것 같았던 너는 내 곁에 없다. 그러나 한 때는 가족보다 가까웠던, 한 때는 애인보다 사랑했던 네가 내 안에 쌓아두고 간 것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많을 수 있겠다고, 정말이지 사소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순대를 집어삼키며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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