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15 - 30대 소개팅

우리는 왜 서로에게 반하지 않는가.

by 홍마담
“주연아. 한 번 만나볼래?”

Y였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소개팅 제안이 Y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벌써 이년 가까이 연애 중인 W와 아직 지난번 소개팅 실패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K가 소개팅 후보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개팅 대상자로 내가 선택되었다.


“아니, 내가 예전부터 그 우리 회사에 진짜 괜찮은 부장님 있다고 했잖아. 완전 젠틀하고 매너 쩐다는. 그분이랑 진짜 친한 동생이라는데 완전 추천하신대.”


‘소개남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라는 내 마음의 소리를 읽기라도 한 것일까. 소개팅 상대에 대한 보장이라도 하듯 Y는 상대편 소개팅 주선자인 그 부장이 회사에 흔치 않게 존재하는 품격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답은 않고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자 W가 거들었다.


“야 그래 홍주연, 그냥 한 번 만나봐. 그 정도 분이 추천하신다면 정말 괜찮은 남자일 것 같은데?”


“음….”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꽤 즐겨왔던 내가, 학창 시절 미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내가 Y의 소개팅 제안에 이토록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벌써 솔로 1년 차. 물론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것도 아니었다. 삼십 대 소개팅. 그 언어에는 결혼과 같은 현실적 문제에서 오는 어쩐지 당연한 무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굳이 이렇게까지 인위적 만남으로 이성을 만나야 한단 말인가.


방 3개, 화장실 2개, 남향, 로열층, 역세권. 흔히 보는 부동산 전면 유리에 부착된 ‘오로지 팔리기 위해’ 적혀있는 특징들을 접할 때 종종 나는 그 매물의 처지를 가슴 깊이 생각하곤 했다. 주선자에게 평가되고 걸러지는 첫 번째 필터링, 은밀하지만 다소 냉정하게 매겨지는 등급,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조건 중 몇 가지의 기준이 충족돼야 비로소 시작되는 만남 등을 생각해 보라. 그것과 부동산 매물의 처지가 어찌 비슷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소개팅이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그러한 인위적 룰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는 그간 몇 번의 소개팅 제안을 사양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연애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이런 인위적 만남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연애 상대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감나무 밑에 누워 저절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서른둘의 여성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보편적인 삼십 대 여성에게 일상을 흔들어놓을 사랑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우연히, 불쑥 찾아온다는 것은 그 어떤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에도 쓰이지 않을 삼류 소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래. 해보지 뭐. 나는 이것이 썩 유쾌한 승낙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게 유의하며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주류회사 다니고, 우리보다 나이 세 살 많고, 잠실 쪽 산대. 주연아, 그럼 너 번호 넘긴다?




‘괜찮은 남자는 유부남이거나 게이’


이 문장을 처음 접했던 십 년 전쯤에는 결코 이 말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십 대 때의 내게 ‘괜찮은 남자와의 만남’은 굳이 찾아다니며 노력하지 않아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얻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이십 대의 평범한 여자들에게도 이성의 관심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런 관심의 홍수 속에서 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은 ‘나의 선택의 문제’라고까지 생각했으니 그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그 문장이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하는 명문이었는지를 깨닫고 있었다. 나는 점차 관심의 중앙에서 주변인으로 밀려나고 있었고 ‘괜찮은 남자’ 역시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만남의 실패들, 얼마나 많은 ‘하자 있는 남자들’이 있었던가.


선택의 폭은 좁아지다 못해 찌부러져 아무리 매의 눈을 하고 주변을 살핀 들 내 마음을 쏟을 만한 ‘괜찮은 남자’는 찾기 어려웠다.


‘우연한 만남’으로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이제 마치 감나무 밑에 누워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적어졌다.


남들은 잘만 만나는 것 같은데 어째서 내 주변에만 하자 있는 남자 투성인 걸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안목의 수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가 Y의 소개팅 제안을 ‘덥석’ 혹은 ‘흔쾌히’ 까지는 아니지만 ‘마지못해’ 받아들이고야 만 것은 오히려 삼십 대의 만남에 있어 소개팅이라는 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만남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어쩌면 소개팅이란 내가 마음을 쏟을 만한 ‘괜찮은 남자’로 보장된 사람과의 만남. 실패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일지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소개로 인사드립니다. 김민석입니다.]


역시 필터링을 거친 덕일까. 다행히 아주 간결하고 담백한 문자였다.




아무리 소개팅을 자주 겪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나이쯤 되면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암묵적인 적당한 소개팅 매뉴얼이라는 것이 생긴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남녀가 처음으로 상대를 알아가는 자리였다, 잘만 풀린다면 연애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서로에게 연애하기에 결격사유가 없는 괜찮은 이성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주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먼저 만남 시각은 토요일 네 시 반으로 정했다. 이 정도면 꽤나 무난한 선택이다.

요새는 애매한 시각에 만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인연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일어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 빨리 만나 해가 쨍쨍 떠 있을 때 서로의 뒷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민망하고, 그렇다고 저녁 늦게 만나 밤늦게 헤어지자니 첫 만남에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되진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다음 날 몰려올 피로감이 부담스러웠다.


오후 네 시 반. 약간 이른 듯한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고 헤어지기에 그런대로 괜찮은 시각이었다.


다음으로 소개팅 장소는 논현역 3번 출구 앞. 이것 역시 나쁘지 않다. ‘논현역’이나 ‘강남역’, 혹은 ‘홍대입구’ 정도의 지역을 첫 만남의 장소로 선택하는 것은 아무리 집이랑 가깝다 한들 ‘미아사거리’나 ‘연신내’, ‘월곡역’에서 만나는 것 보다야 명백히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가.


소개팅 시간과 장소는 정해졌다. 이로서 상대를 만나기 전부터 넘어야 할, 은근히 신경 쓰이는 첫 번째 관문은 무사히 통과한 셈이었다.


이어서 두 번째 관문. 소개팅 참가자로서의 나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질 차례였다. 어떤 만남이든 간에 첫인상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거의 결정짓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한번 새겨진 첫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삼십 년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번 만남은 다른 만남도 아니고 무려 소개팅이다. 한 번의 실수로 첫인상을 망치게 된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관계가 끝날뿐더러 그에게 내 이미지는 매력 없던 소개녀 3 정도로 영영 박혀 버릴 것이었다. 물소개팅 남은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선자 또한 나로 인해 쌓아왔던 평판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나뿐 아니라 Y를 위해서라도 첫눈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최대한으로 신경을 써야 할 일이었다.


외모. 당연히 첫인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외모다. 사실 수지처럼 예쁘면 뭘 어째도 통과다. 그러나 타고난 외모는 어쩔 수 없고 나는 수지가 아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스타일링이었다.


안 그래도 30대 여성의 소개팅에는 결혼을 염두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결연한 분위기를 풍기기 딱 좋았다. 누가 봐도 샵에 들렀다 온 듯한 모습은 자칫 작정했다거나 안달 난 이미지로 비칠 수 있었다.


오버는 금지다.


패션 매거진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패션피플 느낌의 의상이라든지,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공주풍 드레스라든지, 타이트한 원피스, 메탈 장식 등의 섹시한 스타일링은 자칫 너무 과한 이미지를 심어주거나 심리적인 거리감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너무 노력한 것 같진 않지만 그럭저럭 세련돼 보이는. 소개팅의 정석 스타일링 컨셉을 따르는 편이 가장 무난하지 않겠는가.


이 나이쯤 되면 상황에 맞는 옷들이 척척 옷장에서 꺼내질 것 같은데, 옷장을 열 때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입고 다녔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옷이 없다는 것은 삼십 년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고심 끝에 친구들 결혼식 때 이미 몇 번 입었던, 유행을 타지 않으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세련돼 보이는 베이지색의 원피스에 심플한 블랙 펌프스 힐을 선택했다. 머리는 밑으로 묶어 뒤로 늘어뜨렸고 액세서리는 귀에 딱 붙는 작은 귀걸이만 착용해 과해 보일 수 있는 스타일링은 피했다. 어쨌거나 이만하면 비호감의 인상을 주진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토요일 오후 네 시 이십 분. 논현역 3번 출구 앞에 다다르자 시야에 소개팅 남자 후보로 보이는 몇몇의 남자들이 보였다. 이 중 대체 어떤 남자가 나의 소개팅 상대일까.


카톡 프로필에 아무 설정도 해놓지 않았던 오늘의 소개팅 남 김민석 씨. 어떤 사진도 어떤 대화명도 없다는 것은 다행히 허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는 뜻일까. 아니, 어쩌면 숨기는 게 많은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어떤 남자일지, 어떤 취향을 지녔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발 첫 만남에 절로 탄식이 나오는 외모와 옷차림은 아니기를 바라며 나는 슬쩍슬쩍 출구 앞에 서있는 남자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모두 처음 보는 남자이지만 이 중에서 누군가는 어쩌면 나와 연인이라는 관계까지 발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긴장한 탓일까. 입술이 마르고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 후보들 중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슬랙스를 받쳐 입어 깔끔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내게 목례를 했다.


“식사 안 하고 오셨죠? 예약해 둔 곳이 있는데, 바로 가시죠.”


고맙게도 그가 미리 예약해 둔 음식점은 예상했던 대로 파스타와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잘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고 요새 말로 상견례 프리패스상까지는 아니지만 결혼 적령기의 지인이 ‘이 사람, 나랑 결혼할 사람이야.’라며 소개한다면 ‘아~’할 정도의, 썩 무난한 인상의 남자가 내 앞에 앉아있다. 사실 첫 만남은 늘 안면근육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어색하지만 상대가 맘에 들지 않는 상황보다 불편한 것은 어색한 침묵 이리라. 소개팅 참가자로서 우리는 서로 이 상황쯤이야 익숙하다는 듯 무난한 소개팅 대표 메뉴, 오일 파스타와 시저 샐러드를 주문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한다.


“주연 씨, 카톡으로는 말투가 좀 딱딱해서 차가운 분일 것 같았는데 실제로 뵈니까 인상이 되게 부드러우시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들으시죠?”


아니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인상이 부드럽다는 소리는 삼십이 년 인생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이 사람은 시력이 안 좋거나 눈썰미가 꽝인 걸까, 아님 원래 이렇게 입에 발린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는 스타일일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이처럼 가벼운 칭찬과 농담을 곁들이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려 애쓰고 있다는 점. 갑자기 내 앞에 있는 이 무난한 인상의 사내가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네. 민석 씨도 인상 좋으세요. 맞다, 주류회사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술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부러워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


나 역시 사전에 내게 주어졌던 아주 약간의 정보들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얘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어디서 수강료를 내고 배운 것도 아닌데도 나는 마치 어떤 드라마에서 쉽게 볼 법한 보편적인 소개팅 녀로서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다. 대화는 진부하지 않게, 그리고 질문을 활용하며 최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라. 아, 호감을 상승시키는 엷은 미소는 필수다.


“하하.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술은 잘 못 해요.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는데, 학생 때 처음 우연히 술 마시고 꽤나 고생을 했거든요. 그 후로는 잘 안 마시게 되더라고요.”


그는 은근하게 본인의 유학생활을 대화 안에 녹여내며 내게 자신에 관한 몇 가지의 정보를 던져준다.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고 한국의 괜찮은 대학 졸업. 그리고 현재는 주류회사의 과장 직함을 달고 있는 그. 아마도 그는 부모님의 물질적 관심과 전폭적 지원 아래 부족함 없이 성장했으리라.


눈을 감고 그를 떠올려보려 하면 얼굴의 어떤 특징도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냥 무난한 인상으로 보였던 그의 얼굴이 이제는 궁핍과 어려움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할 것 같은,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은 이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에게 몇 가지 정보들을 슬쩍 던져준다. 나름대로 건전한 라이프 스타일, 그나마 보통의 사람들이 괜찮다고 여길법한 장점들. 그리하여 만일 우리의 관계가 진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딱히 문제가 없을만한 사람임을 어필한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거나 반대로 이 사람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도에 대해서는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참 유행했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중간평가로 여겨지는 도시락 데이트를 떠올리며 최선을 다할 뿐.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의자녀’ 등극까지는 안 되더라도 누구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해 밥을 혼자 먹게 되는 굴욕만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주선자도 걸려 있고,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나온 자리. 결코 가벼운 만남은 아니다. 적어도 허무하게 까이고 싶진 않다.


시간 안에 최대한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기 PR을 하는 것이 오늘 만남의 미션인 듯,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 시간 동안 우리는 상대방이 기분 좋게 여길만한 서로에 대한 칭찬과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각자의 PR에 집중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문제없이, 아니 오히려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로 오늘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오늘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건실하게 살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술과 담배를 즐기지도 않았으며, 외국에서 오래 지내 나름 깨어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떤 결함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는 남자임에 틀림없었다.


Y가 말한 대로 확실히 보장된 남자였다. 왜 Y의 신임할 수 있는 상사가 그토록 추천했는지도 나는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와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그 모습이 쉽사리 그려지진 않았다.




씻지도 않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괜찮은 여자’로 보일 법하게 행동하는 소개팅 매뉴얼에 따라 나 역시도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연극 무대가 끝나고 막이 내린 후의 연극배우의 심정이 이럴까. 생각보다 지나친 에너지 소모 탓인지 피로감이 확 밀려 들어왔다.


[주연 씨. 오늘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한 번 봬요.]


때맞춰 소개팅 남의 카톡이 도착했다. 그는 정말로 오늘의 만남이 즐거웠을까. 여전히 비워진 프로필 사진 탓인지 그의 감정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중에’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애매함이 묻어있었다.


어쩐지 어렴풋하고 희미했던 어떤 사실이 점점 또렷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알고 있다. 한 번의 만남이 더 주어져도 스파크가 튀듯 서로에게 빠져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왜 우리는 서로에게 반하지 않는가.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은 조건들로는 부족한 걸까. 자신도 모르고 있던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던가. 아니, 서른이 넘어 기준이 더 까다로워진 걸까. 나 자신도 모르게 눈이 높아진 건 아닐까.


글쎄. 소개팅은 ‘괜찮은 이성’으로 보장된 사람과의 만남, 실패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인 것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그 역시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Y의 신임할 만한 직장 상사가 추천할 정도로 건실하고, 예의 바르며, 사회적으로 능력까지 갖춘, ‘괜찮은 남자’인 것 또한 맞았다.


그러나 결격사유가 없고 많은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조건과 꼭 맞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엔 낭만적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예상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만남의 과정, 어디선가 여러 번 본 것 같은 장면으로 채워진 시간 속에서 과연 우리는 상대방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을까.


마치 모래시계를 엎어둔 것 같은 세 시간의 정해진 시간.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소개팅 녀’와 ‘소개팅 남’의 역할로 위험부담 없는 안전한 매뉴얼을 따르며 과연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요새 유행하는 소개팅 앱의 광고처럼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연애 또한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 최적화된 상대를 추려 만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합리적 방법이 과연 사람의 감정까지 재단할 수 있을까.


몇 번의 필터링과 조건의 맞춤, 안전한 매뉴얼을 따른 만남은 최악의 인연을 막아줄지 모르지만 그것이 최선의 인연이라는 보장은 없다. 낫 배드는 말 그대로 낫 배드 일뿐, 결코 베스트가 될 수 없다. 결격사유 없는 ‘괜찮은 이’와의 무난한 만남은 그저 괜찮고 무난한 경험만을 안겨줄 뿐이다.


오랜만의 소개팅은 정말이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정이 억제된 무난한 역할 놀이 속 우리 서로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난 연애들이 그랬듯 여전히 내게 연애란 아직은 낭만적 교감과 동의어란 사실이 아닐까.


이런 만남조차 끊길까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래. 맞다. 그러나 어쩐지 허무함을 가져오는 공허한 만남의 반복. 나는 그것이 더 두려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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