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프롤로그

by 홍마담
“삼십 대가 되면 어때요?”


부쩍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던 터였다. 누구는 아침마다 홍삼진액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더라, 누구는 노니 원액을 몇 통씩이나 주문했다더라.

“야, 우리도 이제 건강에 신경 쓸 나이라니까? 꼭 챙겨 먹어야 해.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삼 년 전 결혼한, 우리 무리 중 유일한 기혼녀 Y였다.


“야. 우리 아직 서른둘이야, 그 정도는 아니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건강에 신경 쓸 ‘나이’라는Y의 말에 괜스레 발끈하고야 말았다. 어이없어. 바싹 늙은 노인네처럼 나이 타령은. 우리가 뭐 아줌마이기를 해, 중년이기를 해.

우습게도 그날 밤은 왠지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반신욕이나 할까 싶어 욕실에 가 거울을 보니 탄력 없이 앙상한 몸의 내가 서있었다. 건강에 신경을 쓸 나이라는Y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르면서 짜증과 답답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다이어트, 몸매 관리 등을 검색해보다 결국 집 근처 수영장까지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퇴근을 하고 가야 하니까 넉넉히 아홉 시 타임이 낫겠지,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나는 그날 밤 바로, 기어이 월·수·금 주 3회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십 년 전이지만 학부 시절에 나름대로 댄스 부 리더도 했던 나였다. 워낙 몸 쓰는 것에는 자신 있었는데 자유형, 배영까지는 수월하게 넘어가더니 평영에서 턱 하니 막혀버렸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개구리처럼 발을 차대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나 싶기도 하고 왠지 머쓱해져서 “아, 앞으로 잘 나가질 않네요.” 하고 고개를 뒤로 돌려 멋쩍은 듯 웃었다. 민망함과 작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웃음이었다.

이십 대 초반, 아니 중반쯤 됐을까. 말갛고 흰 얼굴이 앳돼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내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 주 정도가 더 지나니 앳된 얼굴의 남자와 일상 이야기도 나눌 정도가 되었다. 평영 발차기에서 함께 고전하던 것이 친밀해지는 계기가 됐다. “어제는 일이 있어서 수업에 빠졌어요. 진도 많이 나갔어요? 이번 주 주말 자유 수영은 나오세요?”




“아, 궁금한 게 있어요.”

그 주 주말, 자유 수영이 끝난 후 갈증을 달래러 간 카페였다. 맞은편에 앉은 희고 앳된 남자의 입술이 오물거렸다.

“삼십 대가 되면 어때요?”


뭐지. 장난을 치나 싶어 곧장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놀랍게도 정말 알고 싶어 보이는 순수한 궁금함이 담긴 눈빛이었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현실인가, 순간적으로 아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삼십 대의 삶이 궁금할 정도로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딱히 나이에 대해 의식하며 산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때엔 삼십 대가 되면 작은 오피스텔에서 중형차를 끌면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아주 잘 풀리면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오는 이선균과 채정안처럼, 서른에 그런 부티 나는 라이프와 연애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했었다. 그러나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수많은 동화는 사실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처럼, 수많은 드라마들 또한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만들어낸 ‘판타지’라는 것 또한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생각보다 하루하루가 별 다를 것 없이 지나갔다. 일 년은 짧았다. 그렇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물처럼 흐르고 그 일 년들이 모여, 단지 나의 생물학적 나이가 삼십 대가 된 것이다. 삶이 어느 한순간 극적으로 변하는 일은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인들 중 아무도 겪지 않았다. 중형차는커녕 소형차도, 아니 스쿠터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전세도 월세도 아닌 부모 기숙. 그게 서른둘의 나였다.


“똑같아요. 스물일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잘생긴 사람을 보면 가슴 뛰고 설레고요, 헤어지면 아직도 엉엉 울고요. 인간관계는 지금까지도 어렵고, 부모님한테는 지금도 혼나요. 요새 서른이 뭐…”

요새 서른이 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저는 아직도 애 같은데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나는 답했다. '저는 아직도 애 같은데요.' 찌질하게 느껴질까 싶어 결국 그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생산성 없는 여러 문장들이 나와 그 사이 테이블 위를 핑퐁핑퐁 오갔다. 깊이 스며들지 못한 그것들은 금세 휘발되어 기억해내려 해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앳된 얼굴의 남자가 오물거리며 내뱉었던 ‘삼십 대가 되면 어때요?’라는 질문뿐이었다. 참나, 뭐가 삼십 대는 어떠냔 말이야. 무슨 노인네 보듯이 하냔 말이야. 니나 나나 똑같지. 뭐 그렇게 차이 난다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무심코 바라본 거울, 그 안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게 뭐야?

턱밑으로 둥글게 처진 살들, 훤히 들여다보이는 넓은 모공과 거친 피부, 윤기 없이 푸석거리는 머릿결, 반짝거리는 생기를 잃은 눈빛. 나와 눈이 마주친 거울 속 그것은 누가 봐도 영락없이 나이 든 나였다.

그때였다. 파노라마처럼, 여태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장면들이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같은 동에 사는 꼬맹이가 나를 두고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 작년 생일 선물로 똑같은 유산균 스틱을 세 개나 받았던 것, 종합검진을 받은 후 영양제를 늘리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던 W, 결혼 적령기의 여자는 부담스럽다며 이별통보를 받은 K의 눈물, 건강을 챙길 나이라 야무지게 말하던 Y, 그리고 방금 전 만났던 희고 앳된 얼굴의 남자의 ‘삼십 대가 되면 어때요?’라던 순진무구한 질문까지.

갑작스레 공포감이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내 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이 사정없이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이제야 서른둘이라는 ‘나이의 현실’에 맞닥뜨리고야 만 것이다.

나, 괜찮은 걸까.

파닥파닥. 곧 횟감이 될 물고기처럼, 그렇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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