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K가 진짜로 이별했다.
일 년 하고도 육 개월 동안의 요란한 연애였다. 아니, 아니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열정과 흥분을 유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쩌면 흔하디 흔한 연애였는지도 모른다.
K와 그의 연인은 그 흔하디 흔한 연애의 과정 동안 여느 흔한 커플이 그렇듯 아주 여러 번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고, 위태롭다가 견고 하다가를 반복했다. 그녀는 자주 ‘아, 이제 그만 둘 거야.’라고 말하곤 며칠이 지나면 ‘어쩌지, 나 정말 사랑하나 봐. 진짜 못 헤어지겠어.’라고 얘기하곤 했다.
"진짜 헤어지면 말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지겨울라 그러니까."
나는 몇 번이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얼마 후, K가 진짜로 이별했다.
K의 연인은 노래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싱어였다.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이름 있는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타를 꿈꾸는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처럼, 그도 부질없는 기대를 놓지 못한 채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한물 간 그 어떤 것들처럼, 꽤 알려진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있던 자부심은 그의 무명의 시간들에 미련을 채웠다.
십 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노래도,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 못한 보통의 삼십 대 중반의 남성이 되어있었다. 그는 주말엔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불렀고, 주로 아마추어들이 공연을 하는 작은 홀에서 가끔 노래를 했다. 나의 눈에는 세상 물정에 어둑한 한량이자 몽상가 같았던 그를 K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라 칭했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와의 데이트 비용을 대부분 부담했다.
‘야 인마, 결혼은 현실이야.’라고 이러저러한 조건을 따지는 것이 인생의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양 부르짖는 다수의 서른의 의견과는 다르게, 그럼에도 K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신념에는 큰 지지를 보냈다. 현실에 항복하지 않은, 늙어버리지 않은, 청춘의 생생한 사랑은 왠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냥 현실에서 떨어져 사랑만 할 것 같던 그녀가 서른둘이 되었을 때, K는 그와 결혼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연인은 그것이 싫었다. 불균형의 관계였다.
불균형의 관계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와 K와의 오랜 친구 W는 ‘고장 난 시소 같아.’ 하며 자주 얼굴을 찡그리며 말하곤 했다.
"남자는 너무 가벼운데, K가 너무 무거워. 안 그러냐, 주연아."
연애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나와 주변인들의 그 수많은 연애사를 통해 알게 된 진리가 하나 있다면 타인의 조언은 연애의 그 순간만큼은 언제나 개소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결코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연애에 대한 오지랖이 친구의 권리이자 의무인 양 참견했다.
"야, 너 정말 힘들어 보여. 정말 괜찮냐."
친구들의 말에 K는 날카롭게 반응하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K를 진심으로 걱정하면서도, 그녀와 비교한 자신들의 안정된 상황에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걱정을 가장한 우려에 본인들의 연애에 대한 우월함이 담겨있다는 것을 모를 나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러한 몇 번의 반복된 대화 끝에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었고, K는 한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고장 난 시소 같은 관계의 불안정함과 반비례하게, 그녀는 견고했다. 그녀의 사랑이 그랬다. 여전히 그녀는 데이트 비용의 구 할을 부담하고, 친구들 모임엔 나오지 않았고, 그의 연인을 사랑했다.
다소 황당하게도 어느 날 남자는 ‘서로 나이가 있으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애는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 K는 내게 말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잘된 것 같은데, 어차피 그 남자, 너랑 결혼할 맘도 없었잖아. 넌 결혼하고 싶었다며. 차라리 다행이다 야.’ 나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술 마실까?"
내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나 안 되겠어. 나 정말 헤어질 거거든. 헤어질 건데, 그 사람 얼굴 보고 직접 얘기해야겠어.”
전화기 너머 들리는 K의 목소리에 복잡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래도 괜찮겠냐고 세 번을 물었다. ‘응.’ 마침표만큼의 확고함이 느껴져 나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집에 가면서 꼭 전화해."
K는 이십 대에도 요란스러운 연애와 이별을 했다. 사랑을 하는 누구나가 다 그렇겠지만 유독 그녀는 온 세상에 딱 단 둘만 존재하듯 사랑하곤 했다. 스물둘에 만난 한 남자와의 연애 기간 동안, K는 자주 학교 수업과 친구들과의 모임에 빠졌다. 당연히 연락도 잘될 리 없었다.
수원에 살던 K는 연인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연인이 사는 부천까지 택시를 타고 가 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야, 도대체 택시비가 얼마냐? 그냥 내일 연락해!’ 친구들의 만류는 아무 소용없었다. ‘다시 만나기로 했어.’ 그녀는 천진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사랑이 전부였던 때였다. 일 년이 지난 스물셋, 그 요란한 사랑의 끝에 그녀는 수원에서 부천까지 여덟 번이나 택시를 탔다. 여덟 번의 기다림 중 단 한 차례도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CC였던 그녀는 휴학을 했다. 친구들은 또 한 번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했지만, 스물셋이 감당할 수 없는 이별에 그녀의 세상은 무너져 버렸다. 서른둘, 또 한 번의 이별을 그녀의 세상은 버틸 수 있을까.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한지 한 시간 후쯤, K에게 전화가 왔다.
"그 집에 있던 내 물건들, 챙겨서 나왔어. 정말 헤어지는 거냐고 물었거든. 그니까 그렇다고 하길래 나도 그러면 알겠다고 했어."
K는 그 주 토요일, 나를 만났다. 즐겨가던 신사동의 한 곱창 집이었다. ‘야, 진짜 잘했어. 못 헤어질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게도 그녀는 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아니,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다시 만나고 싶을 것 같다고, K는 말했다. 그날 우리는 소주 4병을 마셨다.
이년 전, 서른이 되던 해에 W가 이별을 했었다. ‘이별했는데 파티라도 해줘라.’ 그녀의 말에 친구들은 곧장 모였다. 신사동 곱창 집이었다.
“예전에는 헤어지면 한 발자국도 디딜 수도 없었거든. 근데 지금은 그래도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면 괜찮아지는 것 같다니까. 아 역시 서른의 연륜.”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카톡에 W의 상태가 ‘알 수 없음’으로 떴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새벽에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을 했다며 웃었다. ‘나 정말 아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니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로도 두 번 더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을 했다.
서른이 되어도, 이별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집에 잘 도착했다고, K는 내게 카톡을 했다. 씻느라 핸드폰을 늦게 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참고 있구나,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싸이월드에 접속을 했다. 지금은 한물 간, 왕년에 잘 나갔던 소셜 네트워크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이십 대의 모든 감정을 집합시켜놓은 나의 역사였다. 비지엠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ost, 사진첩의 대문은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이었다. 다이어리에는 제발 나를, 이 아픔을 알아달라는 몸부림의 글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글들이 유치하다거나 우습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십 대에 내가 겪어왔던 사랑과 이별의 감정에 공감했다. 한 사람의 세상이 내게 밀려 들어와 가득 차 있다 빠져나갔을 때, 그것은 늘 썰물이 빠져나간 풍경만큼이나 그것이 들어차 있을 때의 자취를 얼마간 남기고 갔고, 나는 늘 남겨진 자국에 무뎌질 수 없었으므로.
다만 지금은 내 감정의 분출 전에 이성이 관여할 수 있는 잠깐의 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SNS에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글은 자제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K는 그 이후로 단 한 차례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집에 있던 내 물건들, 챙겨서 나왔어. 정말 헤어지는 거냐고 물었거든. 그니까 그렇다고 하길래 나도 그러면 알겠다고 했어.”
“잘했어.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맥주 한 캔 원 샷 했어. 여기 씨유 있잖아. 나 지금 지하철 역 가는 중이야. 집에 가서 연락할게.”
삼십 대의 사랑은 다른가.
여느 이십 대가 그렇듯, 나 역시도 나이가 들면 절로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반복되는 경험에 단련되어 웬만한 자극엔 끄떡없는 높은 감정의 역치를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녔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연속일 뿐이고, 내일의 나도 역시나 오늘의 나의 연속일 뿐이다. 세월의 힘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았고, 그만큼 나는 무뎌지지 못했다. 사랑은 늘 나를 바보로 만들었고, 헤어짐은 언제나 나의 세상을 무너뜨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택시 대신 지하철을 타고, 술을 진탕 마시면 핸드폰을 꺼두고, SNS를 비공개로 돌리지 않을 정도의, 이성을 붙잡을 손톱만큼의 미묘한 힘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른이 넘어 얻을 수 있었던 작은 수확이 아닐까.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어쩌면 우리도 매일 아주 조금씩은 달라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관대한여자] 직장, 은근한 폭력의 세계. 예민함은 죄악인가.
홍마담쌀롱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VI-WRQYPQFToxaq4Nn0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