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2 - 젊음 유통기한

노화의 상징. 흰머리 고찰

by 홍마담
어머, 흰머리


거울을 보며 귀를 덮고 있던 옆머리를 넘기니 흰머리 한 가닥이 빠끔 튀어나와있다. 단지 새로 산 귀걸이가 예쁜가를 확인해 보려던 참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 전개에 심장이 콩콩 울려댔다.

칠 년 전, 스물다섯 때였다. ‘숏 컷으로 쳐보려고요.’라고 말하는 내 머리 뒤,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던 디자이너 언니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소녀처럼 맑게 외쳤다.

“어머, 흰머리”

그것이 내 인생 첫 흰머리의 발견이었다.

“새치인가 보다. 그냥 뽑아주세요.” 심드렁하게 대답한 내게 디자이너는 말했다.

“언니, 이건 가위로 짧게 잘라줘야 해요. 아셨죠? 절-대 뽑으면 안 돼요.”

‘절-대’라는 말에 전문가로서 날릴 수 있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나는 네, 하고 전혀 감정을 싣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봤자 새치 한 가닥인데 뭐.

그 후로 아주 가끔씩 미용실에서나 어쩌다 내 정수리를 보고 있던 친구들이 실한 삼이라도 발견한 심마니처럼 ‘어, 흰머리!’ 하고 외칠 때가 있었으나 딱히 신경 쓴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응, 그냥 뽑아줘. 한 가닥인데 뭐.’

몇 년 전 미용실 디자이너의 ‘흰머리는 짧게 잘라야 한다.’는 조언은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둥둥 떠다니는, 전혀 공감가지 않는 아포리즘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거울에 비친 흰머리는 분명 단순한 새치가 아니다. 한 가닥이 아닌 것이다. 빠끔히 모습을 드러낸 흰머리 한 가닥을 뽑기 위해 옆머리를 들추니 한눈에 흰머리 세 가닥이 태연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반대편 옆머리를 들추어보니, 이 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댔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족집게를 찾아 흰머리들을 뽑아내버렸다. 혹시라도 형광등 불빛에 반사됐던 게 아닐까 생각했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몇 년 전 디자이너 선생의 조언이 떠올랐지만 뿌리를 남겨둔 채로 자른다는 건 왠지 꺼림칙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들이 내 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소멸시키고 싶었다. 지금 난 흰머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긴 돌연변이야. 뽑아버리고 스트레스 관리만 잘하면 다신 안 나지 않을까. 오 분 간 족집게라는 강력한 무기에 장렬하게 뿌리까지 뽑혀 나온 흰머리는 척 봐도 열 가닥이 넘어 보였다. 그러나 확인 차 다시 한번 옆머리를 들추고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들추는 대로 계속 나오면? 그 충격은 내 심장이 버텨낼 수 있는 강도를 넘어서고야 말 것이다.

[주연아 너 상희 결혼식 갈꺼?]


대학생 시절 초밥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M 언니의 카톡이었다. 성격이 잘 맞아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울려 놀곤 했는데, M 언니의 ‘결혼’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기점으로 각자의 삶의 지향점과 공감대가 홍해 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적마냥 자연스레 갈라져버리더니 만남과 연락 역시 뜸해지다 못해 이제는 새해 첫날이나 경조사 때, 그렇게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가야지 왜 뭐야 언니 안가게?]


[애기 봐줄 사람 없어서 아마 난 못갈듯? ㅠㅠ에휴 아쉽고 미안하네. 내 부조금 너한테 전달해줄게. 부탁해!!]


미안한데 말은 바로 했으면 좋겠다. ‘못 갈 듯’이 아니라 안 올 거면서. 이러니까 사람들이 먼저 결혼한 사람이 장땡이라고 하고 여자들의 우정은 깃털보다 가볍다면서 폄하하지. 눌러도, 눌러도 계속해서 튀어 오르는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뾰족한 생각들이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가 싶더니 책상 위 뽑아둔 흰머리들에 다시 눈길이 갔다.

[맞다 언니 흰머리 많이나?]

카톡을 보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나? 장난 아니지. 애기 낳고 진짜 심각해졌어. 앞머리 걷으면 아예 허옇다니깐. 난 염색 두 번씩 해. 전체 염색하고 또 흰머리 나는 부분 하고.]

아, 나는 아기도 안 낳았는데. 심장이 다시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언니ㅠㅠ 나 클났어. 요새 흰머리 난다. 친구들은 아직 났다는 애 없는데. 나 스트레스 받오ㅠㅠ]

[당첨이지 뭐, 흰머리는 유전이야!!]

어쩜 이리도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일까. 당첨이지 뭐? 무슨 말을 저렇게 성의 없이 한담. 마지막 느낌표 두 개가 그렇게 밉상으로 보일 수가 없다. 얄미운 M 언니에게 답장을 하는 대신 포털 사이트에 ‘흰머리’를 검색해본다.

[질문자] 흰머리가 자꾸 나요!

클릭.

[태양신답변] 흰머리는 유전적 요인과 노화로 인한 모발 속 멜라닌의 부족이 원인으로, 따로 치료법이 없습니다. 정 신경이 쓰인다면 염색을 하시면 됩니다.

유전.

지구 상의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유전 법칙을 거스를 수 있을까. 어렸을 적부터 근육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아빠의 뱃살과 결코 적당하다고 할 수 없는 엄마의 작은 키는 언제나 나의 일 순위 근심이자 관심사였다. 두려움에서 기인된 관심 덕일까. 물려받은 유전자를 완벽히 극복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 운동을 취미로 삼고 즐기게 된 데에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간절한 의지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됐으리라.

그러나 유전형질에 대한 관심사에서 흰머리만큼은 예외였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집에서 셀프 염색을 했고, 엄마 역시도 두 달에 한 번쯤은 미용실에 다녔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의 흰머리를 닮을까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왜일까. 내게 있어 흰머리는 유전형질보다는 그저 전형적인 노화의 증상이라고 여겨져 온 까닭이었다.

노화.

누구나 겪는 자연의 이치. 이것은 내게 유전의 문제와는 명백히 다르게 다가온다. 부모님의 흰머리가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던가. 노화가 부모님의 문제일 땐 안타깝긴 해도 쉽게 수긍이 가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된다면? 아직 삼십 대 초반, 노화가 나의 일이 될 것이라곤 결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노화는 내게 있어 비현실적인, 아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득히 머나먼 미래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 몸에서 방금 전 뽑혀 나온 흰머리를 보라.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노화의 흔적이 아닌가.

흰머리 고민에 대한 태양신의 해답은 너무나도 단순 명확하다. 그것은 인생의 다른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비하면 별 것 아닌 문제인 것 같다. 그 명쾌한 해답, 흰머리를 충분히 감출 수 있다는 염색이란 답변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시원한 해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흰머리에 담긴 고민의 무게가 그리도 가벼운 것일까. 그 고민의 당사자가 과연 유전과 멜라닌 부족이라는 흰머리의 원인과 염색이라는 허무한 답변을 원했던 걸까. 어느 날 문득 불쑥 튀어나와 있는 흰머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뽑아내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결국 포털사이트에 직접 질문을 올리기까지의 했을 그 당사자의 심정을 헤아려본다면.

장담컨대 흰머리는 인생의 어두운 진실을 담고 있는 대단히 무거운 문제다. 그것은 여전히 청춘이라고 자부하는 나의 자존심에 핵 펀치를 마구 날려 버리는 아주 큰 타격이자, 부정할 수 없이 인생의 내리막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노화의 첫 번째 단계에 진입했음을, 마침내 늙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탄인 것이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흰머리들을 마구 헝클어 떨어뜨렸다. 어째서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던 것일까. 눈앞에 턱 하니 놓인 노화의 흔적에 파닥파닥 요동치는 심장은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K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저녁이었다. 즐겨가던 주꾸미 맛집이었다. 언젠가부터 단기적 스트레스는 매운 음식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던 나였다. 대체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던 걸까. 낮부터 위장을 따갑게 만들 화끈함이 그리웠다. 지글지글 먹음직스럽게 볶아지고 있는 철판 주꾸미를 보다 이내 자세를 고쳐 꼿꼿이 세워 앉고선 K를 비장하게 바라본다. 오늘의 만남이 얼마나 사소하지 않은지, 얼마나 중요한지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었다.

“야, 나 우울해. 지난번엔 내가 너 위로해줬으니까 이번엔 너가 나 좀 위로해줘라.”

“뭔데. 법에 저촉되는 것만 아니면 상담 가능하다. 너, 설마…?”

응, 나 설마 유부남이랑 사랑에 빠졌어.라는 대답을 기대하기라도 한 걸까. K의 눈빛이 웬일로 반짝반짝 빛난다. 상기된 표정을 보아하니 호기심이 꽤 어려 있는 눈치다.

“농담할 기분 아니고, 나 흰머리 오늘 열 개 뽑았어.”

“난 또 뭐라고. 염색하면 되지 뭐. 그건 됐고, 나 저번 주말에 소개팅했는데 어떤지 얘기 좀 들어봐 봐. 너가 판단해줘.”

얄미운 건 M 언니뿐만이 아니구나. K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이 분명하다. 내가 지 실연했을 때 얼마나 내 일인 것처럼 신경 써줬는데 어찌 자기 일 아니라고 내 고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수 있는지. 나쁜 년. 심각하지 않은 반응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게 뭐 그리 수선 피울 일이냐는 식의 태도는 솔직히 서운하다.

그나저나 울고불고 눈물을 짜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죽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만 실연의 아픔을 어느새 극복했는지 소개팅에서 새로 만난 남자 얘기를 하는 K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다. 뭐, 이별과 회복을 떠나서 친구임을 감안하지 않고 보아도 꽤 미인이긴 하다. 얘가 원래 이렇게 이마가 톡 부풀어 예뻤었나.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어딘가 달라졌다. 시술? 아니면,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K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 가르마 바꿨어. 이미지 좀 달라 보이지.”

“어, 약간 달라 보였는데 가르마 때문이었네. 난 가르마 바꾸면 어색하던데, 계속 이 쪽 가르마 타서 머리가 다른 방향으로 눕혀지지도 않아.”

“어, 나도 계속 이 쪽으로 탔었거든? 근데 사실 거울 보니까 언젠가부터 머리 앞 쪽이 휑하더라고. 그래서 바꿨어. 나 샴푸도 바꿨어! 미용실 샴푸로.”

“미용실 샴푸? 비싸잖아. 어후, 난 못 사.”

대답을 하며 다시 보니 K의 머리 앞 쪽과 가르마 주변이 휑해진 느낌이 든다. 어머 어떡해, 하면서도 내심 안도감이 든다. 그래. 탈모보다야 흰머리가 수천 배는, 아니 수억 배, 수조 배는 더 나은 것이다. 그래도 머리 휑한 대머리 할머니보다야 백발 할머니가 세련된 것이다. 머리통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보다야 흰머리라도 꽂혀있는 편이 훨씬 보기 좋은 것이다. K보단 내가, 내가 훨씬 사정이 나은 것이다…!

“야, 홍주연. 너도 건성이냐. 웃으니까 눈가에 주름진다야. 그렇게 웃지 마.”

나의 완벽한 패다.




사회적으로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구나.’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친구가 결혼할 때, 새로 만난 모임에서 ‘언니, 오빠’가 아닌 ‘누구 씨’라고 불릴 때, 여행을 갔는데 다들 대학생일 때, 처음 보는 아이들이 ‘이모’라고 부를 때, 회사에서의 업무 실수가 더 이상 사회초년생의 귀여운 실수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러나 노화가 시작됐다거나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단연코 없었다. 애도 낳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신경 써서 꾸미면 아직도 타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전성기만은 못해도 남자들의 대시가 아주 폭삭 사그라진 건 아니다. 신체기능이 크게 퇴화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들보다 운동신경이 있다 자부해왔던 나다. 수영도 금세 중급반으로 올라가지 않았나. 게다가 왕년 댄스동아리 리더답게 아직까지도 웬만한 인기 방송댄스며 걸그룹 댄스쯤이야 곧장 따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친구들은 이것저것 시도하는 내게 ‘으휴, 적당히 좀 해라. 네가 무슨 아직도 십 대, 이십 댄 줄 아냐?’하며 면박을 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야! 나 아직 청춘이라고!” 하고 반박하며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은근한 우월감을 즐겨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흰머리라니. 주름이라니.

나이 듦이야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순수한 자연의 이치인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나 역시도 나의 노년은 누구보다 기품 있고 우아한 멋쟁이 할머니의 모습일 것이라 상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에 대해 고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매우 막연한 먼 미래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화. 그 달갑지 않은 손님은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찾아온다. 살금살금, 천천히, 아주 고요하게. 그러곤 오늘처럼 불시에, 느닷없이 제 모습을 드러내며 기어코 벼락같은 충격을 던져주고야 마는 것이다. 결코 반길 수 없는 그 손님이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올 줄, 그의 맹렬한 기습공격에 어떠한 방어도 못한 채 이렇게나 허둥대고 있을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왜 청춘은 언제나 내게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왜 나만큼은 더디게 늙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져왔던 걸까. 오만했던 내게 흰머리가 말하고 있다. 젊음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아. 나이 든다는 게 이렇게나 서럽고 서글픈 거였냐고, 나이 듦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나만 이렇게 힘든 거였냐고 있는 힘껏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시간은 흘러가고, 스멀스멀 젊음은 빠져나가고, 노화의 징표인 흰머리는 자라고 있겠지.

서늘하다. 서른둘의 우울한 밤이 저물고 있었다.



[아줌마] 아줌마. 리즈시절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인가.
[인스타염탐]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은밀한 비교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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